우리 회사는 INFP, INTP 안 뽑아요
MBTI, 그게 대체 뭐길래?
모든 것이 이 질문 하나로 시작되었다. 심리학 전공이니 접해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약 20년 전쯤, 대학생 때 호기심에 학교 검사실에서 검사를 한 적이 있는데, 굉장히 당황스러웠던 기억만 남아있다.
"결과지 한 번 읽어보세요. 이 결과가 맞는 것 같으세요? 만일 안 맞는 것 같으면 유형을 다시 찾아보셔야 해요. 비슷한 것 같아요?"
지금 생각하기에 검사 진행자가 조금 서투르셨던 것 같다. 약간 흥분한 표정으로, 엉덩이를 들썩이며 반쯤 일어서서 얼굴을 과하게 가까이 들이대고 말씀하셨으니까. 뭐라도 더 하고 싶으셔서 안달복달하며 질문을 퍼붓는 검사자를 보며, 안 그래도 내향적인 나는 말문이 막혀서 얼굴이 빨개진 채 쭈뼛거리다 결과지를 들고 나왔다.
그리고 요즘에서야 갑자기 MBTI가 유행이 되어 난리가 났다. 그런데 심리학 학계에서는 MBTI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란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MBTI 검사는 엉터리라고 비용을 지불하고 전문가에게 받아야 한다는 말도 있다. 그런데 전문가 과정이 또 임상심리사와는 달라 무슨 전문가를 가리키는가 의아하다. 학위와는 별개의 교육으로 8시간씩 4번 정도 받으면 검사를 진행할 수 있다. (겨우?) 물론 강사과정은 좀 더 많은 강의(최소 11회)를 들어야 한다.
이 앞뒤 없는 정보들은 뭔가. 밥그릇 싸움인가? 겨우 이 검사 하나로? 궁금해서 파보기 시작했다. 물론 백만 원 가까이하는 수업료를 지불하며 강의도 듣고 있다.
1. 심리학계에서는 MBTI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다.
임상에서는 심리장애를 치료하는 것을 주목적으로 한다. MBTI는 장애를 진단하는 도구가 아니다. 이보다는 MMPI라는 검사를 많이 사용한다. 반면 상담심리는 장애를 갖지 않은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기에 MBTI를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 상담심리 석사과정에서는 검사도구 자격증을 따도록 권유하는 학교도 있는데, 그중 MBTI도 포함된다.
결과적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라기보다 '임상심리에서 많이 사용되지 않는다'가 맞는 말이다.
2. 인터넷에서 하는 MBTI 검사는 엉터리다.
실제 검사지로 하나 인터넷에서 하나 결과는 같던데요?
전문가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하는 검사와 인터넷에서 공짜로 하는 검사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러니까, '질'이 다르다는 것이다. 내가 대학생 시절 MBTI 검사를 받고 당황스러웠던 것은 앞뒤 설명이 완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영문 기호로 된, 유형만 파악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다만 이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적용하는지에 따라 검사의 효과는 천차만별이 된다.
유형만 아는 것은 MBTI 검사의 최종 목적이 아니다. 유형 판단을 통해 내가 세상을 어떻게 대하는지 이해하고, 어떤 일을 어떻게 할 때 만족감이 높은지, 단점은 어떻게 보완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 목적이다. MBTI는 애초에 긍정적인 목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문제는 유형에 따른 카테고리화가 최종 목적이 된 것이다. 그리고 카테고리 중에서 특정 집단을 비하한다. 우리 회사는 INFP, INTP는 안 뽑아요, 하고 따돌림하기 위한 수단이 돼버렸다.
'우리와 다른 사람'을 비하하면서, 비하하는 행위를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MBTI를 사용하는 상황을 쉽게 찾을 수 있다. 이처럼 사용 목적이 불순한 상황들을 우려해 '전문가를 통하지 않은 검사는 엉터리다.'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3. 전문가 과정이 상담 및 임상심리 학위와는 별도로 운영된다.
애초에 임상이나 상담이 국가자격증이 없는 것이 문제다. 여기저기서 협회 자격증을 남발하고, 이것 저것 다 따야 수련이라도 해 볼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MBTI도 상황이 마찬가지다. 수많은 협회 자격증 중 그래도 제대로 인정해주는 곳이 한국 MBTI연구소에서 진행하는 강의다. 전공에 상관없이, 4년제 학사학위만 갖고 있으면 강의 수료 후 검사 자격을 취득할 수 있다.
비전공자의 경우, 사실 32시간 수업만으로 얼마나 전문성을 갖출 수 있을까에는 의문이 든다. (사람마다 다를 거라 생각한다. 강의 후 주어진 엄청난 양의 자료를 탐독하기만 한다면 전문적이라 볼 수 있겠으나...... 수업만 달랑 들어서는 어렵다.)
수업을 들으면서 만났던 많은 수강생들이 사실 상담과 임상 현장에서 일하고 계신 분들이었다. 그분들이야 오랫동안 공부하셨고 경험도 많으시니 거기에 검사 관련 교육을 하나 더 들었을 때 큰 시너지가 생기리라 생각한다.
결론은, 전문가 과정이 빈약하다고 단정짓기에는 좀 복잡한 문제지만, 상담이나 임상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MBTI검사를 진행하셨을 때가 가장 효과적인 결과물을 내놓는다고 보면 무리가 없을 것 같다.
MBTI가 얼마나 더 오랫동안 사람들의 화두가 될지 모르겠다. 다만 이것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사람의 가치를 돈으로 판단하는 시대를 지나 내면에 집중하는 때가 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여기서 더 나아가 더 가치로운 삶 (못 먹고살던 시대에 추앙하던 물질적 풍요를 넘어)을 탐구하는 때가 오리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