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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묘한 삼각관계 : 제주여행, 코로나, 브랜딩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

by 고민베어 이소연
우리의 여행은 언제나 마케팅 공부다.

어떤 브랜드가 눈에 띄는지, 그들은 어떤 상품을 만들어 무엇을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지 샅샅이 뒤져본다. 새로운 것을 발견하면 남편과 의견을 나누고, 그들의 콘텐츠를 찾아 히스토리를 거슬러 올라간다. 어디에서 시작되었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왔는지.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2년 전과 비교해 정말 커다란 변화를 읽을 수 있었다. 수없이 다양한 지역 굿즈들을 만나고, 곳곳의 특성을 살린 오프라인 매장과 상품들이 넘쳐났다. 조금만 과장을 보태면 교토를 찾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었다. (크게 다른 것이라면 교토는 나라에서 추진하는 대형 프로젝트가 주를 이룬다는 것, 한국의 관광마케팅 관련 국가지원 수준은… 아시다시피다. 돈을 안 들이는 것은 아니다. 체계적이지 않고 매력도 없을 뿐.)

그림같은 풍경을 카페와 레스토랑의 일부로 녹여냈다. 다른 장소에서 찍은 것인데 풍경이 같은 줄 이제야 알았다. 왼쪽부터 호텔샌드, 수우동
제주다움으로 제주의 색을 만드는 곳곳
왼쪽부터 올버즈팝업스토어, 산노루, 애월카페거리




코로나가 이유일 것이다.

해외 여행객들이 모두 제주로 몰렸다. 해외에 나가서 쓸 돈을 모두 제주에서 써야 하는데 마땅한 상품들이 없었을 것이다. 브랜딩이, 캐릭터가, 공간이 필요했을 것이고, 돈 냄새를 맡은 업체들이 재빠르게 만들어냈다. 물론 국가기관에서 한 것은 크게 없다. 사기업들이 탄력적이고 발 빠르며 트렌디하다. 카페 하나하나의 건축 디자인들이 감탄을 불러일으킨다. 편의점 간판 하나도 감각적이다. 누가 했을까? 한쿡 사람들, 참 대단하다. 빠르다. 2년 만에 이런 변화라니.


제주하면 돌이지. 벽면마저 제주스럽다. 왼쪽부터 카페 진정성, 디앤디, 잔물결


예전에 왔을 때는 돈 쓸 데가 없어서 먹는 것에 다 썼다. 부모님들도 제주도 문턱이 닳도록 드나드시는데, 매년 감귤 초콜릿만 한 보따리를 사 오셨다. 그놈의 감귤 초콜릿 질릴 때도 됐는데.


그런데, 올해에는 부모님들이 좀 다른 상품들을 사 오셨다. 제주 딱새우라면이라던가, 감귤타르트, 현무암 팔찌, 감귤 캐릭터 비옷과 같은. 양상이 바뀌었다. 부모님의 눈에 들어오는 것은 먹거리 상품이 주였겠지만, 우리가 보는 것과 아이가 보는 시각은 또 다를 것이여서 기대를 안고 출발했다.


디앤디와 도처에 있었던 작은 선물샵들. 수많은 제주 굿즈들을 사진에 다 담아오진 못했다.


초등학생 딸아이에게 출발 전부터 미션을 주었다.

예산 10만 원을 주고, 예산 안에서 상품들을 산 후 용돈 기입장에 목록을 작성하도록 했다. 충동적으로 구입하지 않고 고민 끝에 꼭 갖고 싶은 것만 고르도록 하기 위한 조처였다. 사실 어른들이 사는 기념품보다는 아이들을 위해 지갑이 더 술술 열리기 마련이기에, 제한적인 상황에서 아이들을 타겟으로 하는 상품들에 얼마나 어떻게 반응하는지 궁금했다.

(10만 원이 많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으나, 이 여행 자체가 첫째 아이의 생일 선물이었다. 자신은 필요한 물건이 없으니 대신 함께 여행을 가자던 아이의 요청에 따른 것이었다.)


클래식문구사. 아이는 하나하나 들여다보며 고민 중이다. 디자인 쪽에 관심을 보여 많이 데리고 다니려고 한다.


아이는 캐릭터 책, 양말, 모자, 마스크, 레고, 문구류와 핸드폰 액세서리를 골랐다. 가는 곳마다 한 두 가지씩. 주로 실용적인 아이템들이었고, 그 상품을 고른 이유는 디자인이었다. 그래, 아이들이 예쁜 것은 더 잘 안다.

남편은 클래식한 문구샵에서 정신줄을 놓았고, 나는 그린티 쇼룸, 그리고 미피 캐릭터 용품에 정줄을 놓았다. (나이 마흔에 미피의 표정없는 토끼 얼굴만 보고 있어도 마음이 평화로워지는 것을 어쩌겠는가. 인공향이 전혀 없는, 녹차잎으로만 만든 그린티오일에도 호흡이 발끝으로 가라앉아 차분해진다. 상품이 궁금하다면 산노루 홈페이지로)

이제 돌이 갓 지난 꼬맹이는 뽀로로 파크에서 별나라를 다녀왔다.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각자 취향이 참 다르다. 한 가족 내에서도.


제주는 이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그리고 이것들 안에 제주의 이야기를 꾹꾹 눌러 담고 있었다. 부자연스럽지 않게. 귀엽고 똥꼬 발랄하게.


얼쑤 좋다! 두살배기 인생에 이런 천국이라니요. 이런 거 매일하면 안됩니꽈 어머니.



제주에서의 기억은 캐릭터와 굿즈와 공간들,
그리고 우리의 이야기로 버무려져 새로운 브랜드를 탄생시킨다.
제주 여행이라는 하나의 브랜드를.

아이들이 환영받지 못하는 공간도 많지만, 그래도 가장 지갑이 많이 열리는 세대는 3-40대의 아이 부모들이다.


그래서 제주, 성공적

코로나도 잠잠해지고 해외여행이 슬슬 물이 오르고 있음에도 이렇게 제주가 각광받는 이유는 이런 변화 때문이 아닌가 한다. 멀리 가지 못하는 아이 부모 세대들도, 어르신 세대들도 한데 아울러 만족시켜 줄 수 있는 곳이기에.

여행이란 그런 것이다.

함께 놀 수 있는 놀거리와 볼거리를 통해
각자의 좋은 기억을 공유하는 것.

단순히 새로운 경치를 함께 보는 것만으로는 세대를 넘어 공감하며 함께 즐기기 어렵다.


붉은 노을을 뒤로, 버스킹 하던 드러머

그런 점에서 제주여행은 성공적이었다.


우리는 각자의 반짝였던 기억을 담고 재잘재잘 여행 이야기를 한다. 참으로 부진하던 국내 관광산업이 코로나로 인해 이렇게 달라지다니 아이러니하다. 제주 브랜딩이, 전국의 관광산업에 커다란 영향을 끼치길 바래본다. 같은 상품들에 다른 캐릭터를 얹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조금은 더 풍성해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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