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르샤하, 그림에 마음을 투사해 읽는 검사

이걸 브래드 피트가 만들었을리는 없는데

by 고민베어 이소연

석사과정의 첫 학기를 풍미한 로르샤하 검사 공부가 막바지다. 이렇게 치열하게 공부한 적도 드무니 (함께 공부를 도모하는 좋은 스터디원들을 만났기 때문. 혼자 하면 반도 안 했을 듯.) 머릿속의 지우개가 출동하기 전에 얼른 흔적을 남겨놓으려고 한다.


로르샤하 검사는 로르샤하(로르샤흐?)가 만들었다.

로르샤흐가 누구냐면, 브래드 피트의 전생?

왼쪽이 로르샤흐, 오른쪽이 브래드피트. 미쳤다 똑같다 환생한 게 틀림없어.

뭔 헛소리인가 싶지만 사진을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이렇게 잘생긴 헤르만 로르샤흐는 예술도 하고 싶었고, 의사도 하고 싶던 이였는데, 결국 정신과 의사가 되어서 그림으로 심리검사를 만들었다. 검사를 처음 맞닥뜨리면 이게 뭔가 싶다. 얼렁뚱땅 아이가 장난친 것 같은 데칼코마니 같은 잉크 얼룩으로 심리평가를 한다니, 이게 되는 건가 의문부터 든다. 게다가 저작권이 이미 만료되어서 인터넷에 엉터리 로샤 검사도 돌아다닌다. 객관식 테스트로 결과가 1분 만에 나오는, 완전 엉터리다.


이런 그림으로 하는 검사다. 이미지 노출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해서 최대한 작게(?) 넣어봤다. 그치만 위키백과에도 다 노출된 마당에 뭐. (출처 : 로르샤하종합체계워크북)

이런 와중에 임상 장면에 앉아 검사를 한다고 해서, 과연 결과가 신뢰로울까? 미국에서는 많이 사용하지 않는 추세라고 하는데, 유독 한국인들은 왜 이런 투사검사를 좋아할까?


이는 한국인들이 세계에서 종교를 가장 좋아하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 아닐까 싶다. 한국인들은 모호하고 신비로운 것을 좋아한다. 현실에는 답이 없으므로, 내가 모르는 비현실에 매달린다. 내가 모르는 곳은 지금보다 나은 것이 있을 것 같으니까. 몇 푼 벌어 해외여행에 돈을 쏟아붓고, 아메리칸드림을 안고 이민을 가는 것과 비슷한 것 같다. 이야기가 샜지만 여하튼 미국 임상보다 국내에서 로르샤하 검사를 더 선호하는 것 같은 분위기다.


그래서 더 궁금해졌다. 이 신비로워 보이는 검사가, 과연 결과는 신뢰로울까?

이에 대한 답은 '상황에 따라 다르다' 다. 무책임한 답 같지만 가장 정답이다.


로르샤하 검사는 특정 자극에 대한 반응의 통계자료를 쌓아놓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비슷한 대답을 한 사람들의 그룹을 찾아주는 방식으로 결과를 낸다. 사실 모든 검사가 마찬가지다. 지능검사만 보아도 통계지표에서 양극단에 있으면 천재 혹은 지적장애로 보니까. 이런 통계적 구조화에도 불구하고 채점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수도 있고, 검사자가 대답을 이끌어내는 과정에서 오류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 많이 경험하고 노련한 검사자들이라야 검사라는 도구를 기반으로 예술적이고도 주관적인 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는 말이다. 좋은 검사자일수록 로르샤하 검사는 더 좋은 도구가 된다. 전설의 칼도 누가 쓰느냐에 따라 그 힘이 달라지듯이.


좀 더 평준화된 효용성을 위해서라면, 로르샤하 검사와 여러 가지 심리검사를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고 한다. 그리고 다른 검사 결과들과 함께 비교하면서 볼 때 가장 효율적이라고 본다. 투사적 검사 자체가 '검사'라는 공격에 대해 좀 더 마음을 열고 대답하도록 고안된 모호한 도구이다. 그러므로 다른 딱딱한 검사들로 푹푹 찌른 뒤 내담자가 좀 지치고 마음이 풀어졌을 때 진행할 때 효과적이라고. (내용출처;쉽게 풀어 쓴 로르샤하, 성태훈) 그렇기에 로르샤하 검사 단독으로 결과가 신뢰로운가라는 질문은 질문 자체의 접근이 적절하지 않다는 것이다. (모호한 검사에 대해 단정적이지 않은 설명을 하려니 문장이 길고 요상해진다. 심리치료할 때 슈퍼바이저 교수님이 자주 혼내시던 얘긴데...... "그렇게 단정적인 어투를 쓰지 말라고!")


"그렇게 단정적인 어투를 쓰지 말라고!"

그렇다. 심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단정 지어 1+1처럼 명확한 답을 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이가 좀 더 들어서 공부할 때 더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내담자를 평가할 때도 마찬가지다. 이론적인 공부도 물론 기본이지만, 세상을 더 많이 살아보았을 때 검사도구를 통해 더 많은 것이 보인다. 애초에 정신질환을 진단하기 위한 도구로 개발되었지만, 정상인들도 이 검사를 통해 마음을 투사해 볼 수 있고, 현재의 문제를 직시하게 하는 거울이 된다. 그러니까, 로르샤하 검사는 거울과 같은 도구일 뿐이다. 누가 어떻게 이것을 잘 사용해서 처음 만난 내담자의 마음을 활짝, 더 깊게 열어보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결과의 퀄리티는 인간에 대한 애정의 깊이와도 같다.



그러니까,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이라니.

애정의 깊이,라고 하니 드는 생각인데, 상담사례들을 수없이 다루고 지켜보면서 나는 하나의 사례가 짐짓 지겨워져서 읽고 듣다 곧 지쳐버린다. 그럼 난 사람을 좋아하지 않는 것인가, 그럼 심리학을 계속해야 하나에 대한 의심을 해왔다.


결국은 생각하건대, 이것은 계속해서 새로운 자극을 탐하는 나의 성격적 결함(?) 때문이다. 그래서 내게는 일반 상담자들의 루트와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좀 더 빠르고 효과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새로운 방식의 상담(이라기보다 플랫폼이라고 칭하는 것이 맞을 듯)을 오래도록 고민하고 있다.


그래도 사람은 사람으로 치유되기에, 가장 깊이 위안받는 것은 의미 있는 관계 형성인 것을 잘 안다. 내가 만들고자 하는 플랫폼의 최종 목적지는 그곳이 되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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