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러니까 무조건 미안합니다
어딘가 존재하던 타인들이 모여 한 생에서 가장 가까운 관계로 타액을 섞으며 잠시 살다가 또 흩어진다. 그리고 너무나도 미워하거나 너무나도 잊지 못하면 다시 가까운 관계가 된다. 이번 생에 남편이 때리고 바람피워 마누라를 속 썩이면 반드시 다시 만난다. 한 맺힌 마누라가 거꾸로 남편이 되어 때린만큼 맞으며 살게 될지도 모르고, 괴롭혔던 마누라가 다음 생에 속썩이는 아들로 태어나 온갖 마음 고생을 시킬지도 모른다.
그것이 억겁의 연이라 한다. 지지고 볶고 미워하고 그래서 그 감정을 풀기 위해 또 만나서 더 지지고 볶고. 인연의 사슬을 끊어내지 못하고 자꾸 연결이 된다. 다른 나라에 가서 좀 살아보고 싶은데 잔뜩 내던져놓은 감정이 있으니 어디 가지도 못한다. 생의 굴레다. 영원히 도망치지 못하는.
뭐, 가끔 동의한다. 내 아기가 잔뜩 애교부리고 뽀뽀해줄 때, 일년에 한 번 정도 컨디션이 좋아서 남들만큼 미각을 느낄 수 있는 밥 한 끼 정도에. 그래도 물리적인 형태가 없는 채 한 가지 생각에 갇혀 우주를 떠도는 것 보다는 좋은 상태라고 한다. 그렇다고 한다. 상대적인 것이니까. 그래도 묵은 감정과 인연을 정리해볼 수 있는 가능성은 있으니까. 모든 것을 다 잊고 또 더 많은 인연을, 숙제를 만들고야 마는 것이 우리의 숙명이지만.
각자 어디에선가 이전 생의 인연없이 만나게 된 우리는 그래서인지 사람들과의 인연이 없다. 내 의지는 아니었지만 친척들조차 연이 이어지지 않았다. 해외에 살거나, 돌아가셨거나. 친구들도 다 스쳐지나갔다. 한 회사에서 2년 이상 있었던 적도 없다. 다시 만나서 풀어야 할 만큼 감정을 섞은 사람이 없다.
그럼 평생 뭐했냐고? 피상적인 관계를 조금씩 유지했었고, 그 관계는 운동이라던가 공부라던가 하는 목적이 있는 관계였으므로 운동하고 공부하고 취미생활하느라 바빴다. 돌아보면 그렇다. 지금은 우리끼리 일한다. 남편과 둘이서만 일해도 바빠서 미칠 지경이다. 벌여놓은 일은 태산이고 시간은 없다.
그러니까, 이제 다 알아버렸는데 남편에게, 아이들에게 서운할 일을 만들지 않고 묵은 감정을 쌓지 않으려니 하루하루가 사과의 연속이다. 하루에 세시간 자면서 공부하고 육아하고 일하느라 힘드니 큰 소리가 절로 나간다. 그리고 하루가 가기 전에 얼른 사과한다. 누구를 위한 사과인지 모르겠다. 여하튼 용서를 구한다.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한 숟가락도 쌓이지 않기를 바라면서.
쌓이지 않게 손을 잡고 진심으로 사과한다. 너의 감정이 녹아내릴 때까지 사과한다. 우리의 연이 얽히고 설켜 우리가 만난 모든 인연과 톱니처럼 박혀 빠져나올 수 없을까봐 일단 사과한다. 내가 다 잘못했다고. 내 탓이라고.
심리학에서도 같은 말을 한다. 문제해결자는 당사자 뿐이라고. 원인이 너에게 있지 않다하더라도 해결할 수 있는 이는 너뿐이니 네가 움직이라고.
할 수 있다면 '미안합니다'보다 '사랑한다'가 낫겠지.
그래서 그냥 사랑만 하다 가자 한다. 사과 한 번 더 하고. 사랑 두 번 더 하고.
어차피 아무것도 아닐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