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눈앞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은 부모를 본 아이. 그래서 아빠 냄새가 묻은 옷을 빨지 않은 채 껴입고 부둥켜안고 사는 아이. 눈을 감고, 아빠 품을 상상하며 낡아빠진 아빠 옷에 파묻혀 하루를 보내는 아이.
아픈 엄마 대신 혼자 밥과 김치만 차려먹으며 이런 밥상도 너무 행복하다고, 엄마만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하는 아이.
학대당하고 버림받아 할머니와 폐지를 줍고 문도 지붕도 제대로 없는 무너져가는 컨테이너에서 오들오들 떠는 아이.
십 수 번의 대수술을 받고도 엄마 마음이 아플까, 자기는 아프지 않다고 웃어주는 아이.
그토록 보지 않으려고 외면하는데도 어느새 아이들의 이야기는 내 눈앞에 와있다. 돈이 많아서 다 도와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보지만 또 돈으로 해결할 수만은 없는 일들이다. 내가 낸 몇 푼의 돈이 그들의 삶에 일말의 변화라도 줄 수 있을까 생각하면 또 속상해진다.
이렇게 아프고 아픈 상황들을 만들어놓고 하늘은 또 그들의 연민으로 슬픔에 잠긴다. 찰나에 불과한 순간들이라 슬픔에 잠길 틈도 없다고, 그래서 부러 잠시 우리 곁에 내려와 슬퍼하고 돌아간다.
나는 그들에게 외친다. 아이들만은 아프지 않게 해 달라고. 아이들만은 지켜달라고.
하지만 인간의 세계는 톱니바퀴와 같다. 아픈 아이가 아픈 어른이 되고, 아픈 어른이 아이들에게 상처를 준다. 아이들을 아프게 한 어른은 다시 아이로 태어나 그만큼의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이미 시작된 일. 이미 돌아가버린 톱니바퀴를 무력하게 바라본다. 무력하다, 무력하다, 나는 아직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세계를 순회하며 공연하는 콜드플레이를 보며 나는 나의 무력함을 한탄했고, 세계인을 춤추게 하는 리아킴을 보며 나의 무능력함을 타박했다.
저 톱니바퀴를 해결하려면 모조리 부숴버리는 수밖에 없다. 톱니바퀴가 존재하는 지구라는 땅도 함께. 그래도 그중에 톱니가 닳아 없어져 빼낼 수 있는 것들은 골라내야 하니까. 그것이 앞으로의 일이다.
인간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있다. 우리 인간의 눈에는 파괴와 멸망이지만, 우주의 시선에서 보면 사람이 죽고 태어나는 것과 같은 별의 죽음과 생성. 지구별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한다.
그러니까, 우리는 그때까지 고통을 떠안아야 하는 것이다. 존재하는 방식이 이것밖에 없다고 굳게 믿으면서. 그래야 함부로 죽지 않을 테니까. 아이들의 고통을 무력하게 바라보면서, 함께 아파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