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먹거나 참거나의 문제 아닌가요?
아기는 태어난 순간 무력한 존재다. 혼자서는 먹고, 싸고, 잘 수도 없고 매 순간 위험에 노출된다. 이 때 엄마가 그 역할을 대신한다. 그래서 아기는 끊임없이 엄마를 찾는다. 엄마가 있어야 안전하기 때문이다. 엄마가 엉덩이만 들썩이면 불안이 몰려오므로 엄마 치맛자락을 붙잡고 놓질 않는다. 당연히 엄마가 없는 시간에 더 보채고 엄마를 찾는다. 심리학에서는 엄마를 ‘주양육자’라고 호칭한다. 양육을 제공한다면 꼭 엄마가 아니라도 된다는 뜻이다. 할머니가 될 수도, 아빠가 될 수도, 보모가 될 수도 있다. 주양육자가 충분한 안정감과 안전감을 주지 못할 수록 아이는 불안을 더 쉽게 경험한다. 이 불안은, 아이가 더 자라면서 회피 등 다른 형태로도 나타날 수 있다.
아기는 자라면서 일어서고 걷고 손으로 뭔가를 쥐고 먹고 하는 일련의 행동들을 통해 통제감을 경험한다. 이 때 어른들은 본능적으로 과하게 박수를 치고 칭찬하고 좋아한다. 그러니까, 이런 반응, 성취에 대한 인정은 꼭 있어야 하는 반응이다.
상호작용이 되는 나이가 되면, (아직 언어는 안될지라도) 어른들에게 ‘이리 와’, ‘여기 앉아’ 하는 식으로 자기자신뿐만이 아닌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경험해본다. 아이가 처음 통제감을 획득할 때 인정받지 못하면 아이는 혼자 세상을 맞닥뜨리고 행동 하나하나를 할 때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다. 아주 아기일 때 가족들이 준 인정은 어른이 되어 스스로에게 주는 인정과 같다. 그 때 기억으로 수많은 일에 자기 확신을 가지고 하나하나 행동해나간다.
아기일 때 칭찬하고 인정해주지 않은 가족들이었다면, 아기가 자라서 청소년이 되어도 계속해서 같은 반응을 할 가능성이 높다. 어떤 성취에도 별 반응도, 칭찬도 없을 것이다. 삶을 통해 오랜 기간 학습해 온 통제능력의 부재는 서서히 스며들어 그대로 고착된 채로 한 사람의 어른이 된다. 이렇게 스며들듯 축적되는 경험 외에, 학대받거나 자신이 막을 수 없는 충격적인 사건을 경험하는 경우에도 당연히 세상에 대한 통제력을 갖지 못하게 된다.
인정받아 본 경험이 없는 아이는 자라서 무엇가를 해내도 스스로 그 성취를 인정하지 못한다. 끊임없이 새로운 일을 찾아다니고, 겉으로 완벽해보이는 사람들만 좇는다. 나는 스스로 인정하기에도 아직 부족하니까.
섭식문제는 여기에서 일어나기 쉽다. 먹는 문제 또한 자신의 과도한 기준에 맞춰 통제하고자 하므로. 세상 어떤 일보다 내 몸과 먹는 일을 통제하는 것이 더 쉬우니까. 혹은 그 어떤 것도 이뤄내지 못하는 무능력한 자신이 인정받는 길은 날씬해지는 것 뿐이니. 한국사회는 뚱뚱하면 미련하고, 날씬하면 자기관리를 잘 하는 능력자라고 이야기하니 말이다.
먹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에 억눌렀을 때 폭발하거나 뒤틀려버린다. 먹는 것에 대한 본능이 강하면 폭식하게 되고, 그보다 억제력이 강하다면 거식이 된다.
시작은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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