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만에 날아올라
먹여살리기 위해서 일했다. 내 삶은 없었다. 식당 아줌마처럼 먹을 것 만들고 설거지하면서 돈을 벌었다. 뼈가 부서지도록 일하면서 늘 뒤에 숨어있었다. 결혼 전에는 그렇게 많은 사람을 만나고 하루도 빼놓지 않고 약속을 잡던 내가, 잠깐 공부하러 간 캐나다에서까지 물건을 팔아대고 교포들 모임을 휘젓고 다니던 내가, 왜 대인공포가 생겼는지 그동안 몰랐다.
시골에 내려와서 그런 줄 알았다. 익숙한 친구들이 없어서, 새로운 사람들 사이에서 적응하지 못한 줄 알았다. 10년의 세월이 지나니 그냥 내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던 것 같았다.
우리 딸아이도 말한다.
예전 친구들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대학 친구가 이 시골까지 찾아와도 모른 척 도망갔다. 그러니까, 나는 원래 관계를 무서워하는 사람이라고 믿게 되었다.
침대에 누워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어울리지 않는 일을 하면서 그래도 만족해보려고 애썼다. 두 딸의 손을 밤마다 꼭 쥐고 누우면 밀려오는 순간적 행복감이 내 삶의 전부라고 애써 위안했다. '이 정도면 행복한거야', '남편, 두 딸, 번듯한 내 브랜드, 집, 건물, 차 두대, 부양할 필요없을만큼 나보다 훨씬 능력있으신 부모님들... 그래, 이만큼 가졌는데 뭘 더 바라겠어' 하면서 행복한 거라고 세뇌시켰다. 그냥 똑같은 일을 기계적으로 반복하면서 먹고 살 만큼만 적당히 벌어야겠다, 하고 생각했다.
웃기는 일은, 그런 생각을 할 때마다 나를 비웃듯이 불행한 일들이 터졌다는 것이다. 아이가 너무너무 아파서, 하루 두세시간도 못자면서 가슴을 쥐어뜯어야 하거나, 아프지 않은 놈은 이유없이 밤낮으로 울고 소리를 지르거나, 남편이 또 다시 아프거나. 그래서 당장이라도 이 가정을 집어치우고 떠나고 싶을 정도로.
현재에 안위하지 말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더 공부하고, 세상에 나갈 준비를 하라는 뜻이었을 것이다.
어떤 고객이 진심을 담아 써 준 리뷰 하나에 내 인생이 통째로 흔들렸다. 그 고객은 이렇게 말했다.
그러니까, 발전없는 삶이다. 종로 3가의 50년된 노포처럼, 주변에 번쩍이는 빌딩들이 들어서도 그 사이에 그렇게 초라하게 늙어갈 모습을 이 고객이 내게 상기시켜 준 것이다. 그냥 그렇게 늙어가라고. 모두가 박차고 일어날 때 계속 그렇게 뒤에 숨어있으라고.
그래서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십년 동안 내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서는 부끄러워서 숨어있었다. 자존감은 바닥에서 짓이겨져 있었다. 아무렇게나 입고, 눈썹은 늘 없고, 머리는 산발을 하고 다녔다. 미용실은 일년에 한 두번 갈까말까 했다. 주말에 옷장을 열어보니 트레이닝복밖에 없었다. 그래도 젊었던 30대가 그렇게 지나갔던 것을 알지도 못했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할지 두려워서 그랬던 것은 아니다. 그래도 나는 온라인에서 잘 포장되어 있었으니까. 내가 나에게 자신이 없었다. 잘 살고 있는 것인지, 꼭 해야만 할 일을 모른 척하고 엉뚱한 데 매달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직면할 자신이 없었다.
내팽겨쳐두었던 이력을 꺼냈다. 예쁜 옷들을, 화장품을 샀다. 사진도 찍어보았다. 나만을 위해 읽던 책들을 다른 사람들을 위한 컨텐츠로 재구성했다. 나만 알고 있었던 것들을 마음으로 전달한다.
나처럼 갇혀있는 사람들을 위해 메세지를 전달하고 있다. 부디 자신을 억누르지 말라고. 가두어두지 말라고.
눈물나게 행복한 날들이다. 나는 날개를 단다. 훨훨 날아올라야겠다. 아이 둘도 이제는 혼자 뛰어다닐 수 있으니, 잠시 두고 다녀야지. 내가 놓아주었을 때 훨씬 더 성장할 아이들이니까.
고민이 있을 땐 고민베어
https://instagram.com/gomin_bear?igshid=YmMyMTA2M2Y=
고민이 있을 땐 고민베어
https://cafe.naver.com/nomor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