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이라는 이름의 괴물들과 맞서야 했던
스무살, 첫 사회생활이었고 처음으로 맞서 싸워보았던, 깨진 유리파편같은 날들이었다.
주먹질로 고등학교를 자퇴하고 대학 캠퍼스를 자유롭게 누비다 들어간 회사는, 그에게 감옥같았을 것이었다. 그에겐 대장놀이가 적성이었지만 상사에게, 클라이언트에게 머리를 조아려야 했고, 그 억압된 분노를 표출할 곳이 필요했다. 주말마다 그는 대학생들의 동아리로 다시 돌아와 대장질을 했고, 마음에 안드는 아이들은 숙청했다. 그 중의 한 명이 나였다. 많은 아이들에게 그랬듯 교묘하게 따돌렸고, 짓밟았다.
어른들은 왜 나를 미워했을까
생각해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윗사람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초등학교 2학년 때부터 모든 선생님들에게, 어른들에게,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상사에게 눈엣가시였다. 신기하게도 동년배의 친구들에게는 열심히 공부하는, 작고 조용하고 색깔없는 아이였다. 지금도 초중고 동기들을 만나면 다들 똑같은 말을 한다.
"그 꼬맹이? 쪼끄맣고 귀여운 게 애기 같았는데
네가 사장님도 하고 진짜 신기하다, 신기해"
그러니까, 유독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았다. 지금 표현으로 하자면 나는 선택적 침묵을 하는 아이였다. 원래도 말을 많이 하지 않았지만 어른들 앞에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
돌아보면 나는 세상이 잘못되었다고, 모든 어른들이 잘못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린 내 눈에 세상은 핏빛이었다. 서로 탓하고, 싸우고, 빼앗기 바빴다. 고통 속에 몸부림치면서 불같이 화를 내는 모습은 스크린 속 영화처럼 보였다. 그래서 대답하지 않았다. 어떻게 대답하는 것이 좋은 것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들은 늘 곤두서서 무엇이라도 빼앗기 위해 하이에나처럼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고, 나는 줄 것이 없었으니까.
대신 가만히 쳐다보며 어른들이 왜 저렇게 불행한지 생각했다. 무엇이 그들을 괴물로 만들었는지 생각했다. 나에게 대체 뭘 원하는지 알고 싶었다. 그 말간 눈빛이, 감히 어른들의 속을 들여다보려는 호기심이 그들을 화나게 만들었을까.
반면 아이들은 나만 빼고 다 즐거워보였다. 새벽이슬을 머금은 풀꽃처럼 해맑은 얼굴들에는 어른들의 불행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저런 투명한 마음들도 결국 어른이 될텐데, 어떻게 결국 괴물이 되어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러니까, 세상이 도대체 이해가 가지 않았다. 천사가 괴물이 되어가는 이 세상이.
어른들에게 미움을 받았지만 맞서 싸워본 적은 없었다. 고등학교 때, 술 마시고 출근하길 밥 먹듯 하고, 친구들을 성추행하는 담임 선생님을 향해 반항을 했지만 '공부를 하지 않는' 소심한 반항이었다. (20여년이 지난 지금도 가끔 편의점 앞에서 퇴직한 노년의 담임을 본다. 파란 편의점 테이블에 혼자 구부정하게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그의 눈동자는 새빨갛게 충혈되어 있고, 코 끝도 빨갛다. 그 시절의 어른들이 내게 여전히 괴물처럼 보이듯, 우리도 아이들에게 괴물일까.)
고작 6살 많은 선배가 어른 괴물이 되었다
스무살이 되었고, 6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 동아리 선배가 괴물이 되었다. 괴물은 아직 말간 눈을 가진 대학생 아이들을 표적삼아 공격했다. 그러니까 지금은 알 것 같다. 사회가, 직장이 사람들을 괴물로 만들었고, 사회생활에 첫 발을 디딘 나는 괴물과 마주쳐 살아남기 위해 맞서 싸워야 했고, 온 몸에 가시를 곤두세워 나를 보호해야 했다는 것을.
하지만 온 몸에 가시와 무기를 장착하기에 나는 너무 어린 나이였다. 무기를 만들 줄도 몰랐고, 휘두를 줄도 몰랐다. 대신 내 뱃속에 돌덩이가 들어와 앉았다. 그 돌덩이는 밤만 되면 뱃속을 굴러다녔다. 그 돌덩이의 이름은 불안이었다. 불안이 굴러다닐 때마다 내 몸도 같이 움직여야 했다. 가만히 앉아있으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터질 것 같아서 어떻게든 돌덩이와 같이 움직여야 했다. 불을 끄고 누우면 불안의 돌덩이는 커져서 나를 집어삼킬 것 같아서, 불을 켜고 컴퓨터를 켜고 다른 세상에 들어가 있어야만 했다. 그렇게 불면이 시작되었고, 나는 이 돌덩이를 꺼낼만한 방법을 찾아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