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은 생각으로 만들어졌으니
불안이라는 돌덩이를 물리적으로 꺼내는 방법
뱃속에 굴러다니는 돌덩이를 의식하지 않으려고 한시도 쉬지 않고 사람을 만났다. 대학생이 친구들을 만나면 술을 먹는다. 그러니까 매우 자주 술자리에 갔다. 의미 없는 대화를 하고 깔깔거리고 멍청하게 시간을 보내는 것이 너무도 좋았다. 그곳이 내가 있을 자리 같았다. 하지만 대학생 신분을 벗어나면 더 이상 이렇게 놀 수 없을 것 같아서 더 모임을 쫓아다녔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놀았다. 취업준비 따위 해 본 적이 없었다. 여전히, 뱃속의 돌덩이는 불안이라는 이름으로 거기 있었다.
불안은 감정이다. 그런데 술자리를 다니다가 그 불편한 감정을 제거하는 방법을 알게 되었다. 우연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들 그렇게 시작한다고 한다. 술을 먹고 불편해진 속은 저절로 구토를 유발했다. 그때 알게 되었다. 구토한 후 찾아오던 쾌감을. 자유를. 모든 불안과 불편한 감정들이 소멸한 듯한 '없음'의 세계를. 내가 없어지면 괴물들도 사라졌다. 그러니까 나는 선택한 것이다. 세상을 바꾸고 괴물들을 변화시키보다 내가 사라질 것을.
민감한 아이가 세상살이를 버티는 방식
나는 민감자다. 세상의 모든 자극이 남들의 두 세배로 다가온다. 영화관의 사운드가 너무 커서 귀가 찢어질 것 같아 영화상영시간 내내 귀를 막고 영화를 보아야 하고, 영상이 너무 거대해서 눈을 반쯤 가리고 있는다. (그래서 영화는 보지 않는다.) 오케스트라의 악기 하나하나의 소리가 한꺼번에 들리는 것이 괴롭고, 김밥이나 비빔밥, 피자같이 여러 가지 맛이 섞여있는 자극들을 싫어한다. 좁은 공간에 많은 가구와 물건이 있으면 참지 못한다. 그런데 그 모든 자극들이 일시적으로 사라지는 방법을 알게 된 것이다. 모든 자극을 뱉어내고 감각이 둔해지는 그 찰나에 잠시나마 나는 온전히 혼자 있을 수 있었다. 온전히 내가 될 수 있었다.
점점, 토하기 위해 술을 먹었다. 안주를 집어먹고 술을 먹어서 속이 안 좋아지면 집에 갔다. 말없이 사라지기도 했고, 비가 오면 친구 우산을 집어 들고 조용히 집에 갔다. 그래서 내 술버릇은 '집에 가는 것'이 되었다. 그런 친구들이 꽤 있었으니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혼자 집에 얼른 가야 하니 취하도록 마시지는 않았다.
원래 위장이 좋지 않았다. 어릴 때는 김치와 밥 외에는 먹을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깡마른 아이였다. 걸핏하면 체했고, 배가 아팠다. 조금만 많이 먹으면 늘 구역질이 났다. 술 먹고 구토하는 것이 버릇이 되자 먹토가 쉬워졌다. 술도 필요 없었다. 원래 많이 먹지 못하므로, 남들만큼만 음식을 먹으면 이미 위 크기의 임계치를 지나 저절로 구토할 수 있었다.
알코올중독만큼이나 지독한 중독
최근 알코올중독에 관한 영상을 보았다. 한 알코올중독자가 '미치도록 먹기 싫은데 미치도록 먹고 싶다'라고 표현했다. 하루종일 '어떻게 하면 먹지 않을까'를 고민하고 '오늘은 절대로 먹지 말아야지'하고 다짐한다고 했다. 그리고 집에 돌아가 혼자가 되면 다시 술을 사러 나간다고, 술을 마시고 나면 마음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그래야 하루가 끝난다고.
이 패턴은 폭토나 먹토와 무섭도록 똑같다. 섭식문제는 중독기제로 작용한다고 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다.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으로 술이나 폭토를 사용하는 것이다. 다이어트 때문에 먹토가 시작되었다 하더라도 이 행동이 만성적이 되어 빠져나올 수 없는 이유는 이 중독적인 기제 때문이다. 섭식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알코올이나 담배에 중독되는 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감정을 다스릴 만한 다른 강력하고도 손쉬운 대체행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명랑한 은둔자]라는 책의 저자인 캐럴라인 냅은 평생 거식증, 달리기, 알코올 의존증을 벗어나려 애쓰다 결국 마흔둘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다. 그녀의 삶의 관통하는 하나의 단어를 꼽자면 '중독'이다. 결국 죽음에 이르게 한 폐암의 원인인 담배, 강박적 달리기와 다이어트, 알코올, 거식증과 그 증상 중 하나인 먹토까지, 그녀는 다양한 중독을 반복하면서 삶을 이어온다. 여기서 모순적인 것은 이 중독적 행동들이 모두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욕구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살을 빼고, 먹지 않고, 외로움을 참고 버티는 이 강박적 통제가 결국 행동문제가 되어 튀어나온다. 그래서 다른 각도에서 보면 굉장히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브라운대학교를 우등으로 졸업할 만큼 우수한 인재였고, 지적인 저널리스트였다. 과도한 다이어트와 자기 통제에서 시작된 먹토가 어떻게 삶을 엉망으로 만드는 중독행위로까지 이어지는지 보여주는 삶이다.
알코올중독에 관한 영상에서, 치료자는 알코올중독이 '죽어야 없어지는 병'이라고 표현했다. 섭식문제도 마찬가지다. 음식은 어디에나 널려있고, 스트레스는 항상 튀어 오르며, 감정은 늘 널뛴다. 민감할수록 재발할 가능성은 더 높다. 해결 방법은 민감도를 낮추거나, 스트레스 원인을 제거하거나, 감정을 다스리는 건강한 방식을 개발하는 것뿐이다. 완전히 없애는 길은 없다. 최대한 재발하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최선의 방식이다.
알코올중독만큼 지독한 중독이 시작되었다. 준비 없이 어른의 세계에 내던져진 나는 여린 나를 지키기 위해 잘못된 방법을 선택하고 말았다. 빠져나오기 그토록 어려울 줄 알았다면 시작하지 않았을, 그 길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