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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뽀미누나 Jan 15. 2023

더 글로리 리뷰

누군가의 영광에 열광하는 이유


  어린 동은이 걸어온다. 몸과 영혼이 부서진 상태로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말한다. “오늘부터 내 꿈은 바로 너”라고 말이다. 만약 내게 인생을 걸고 해야만 하는 복수가 있다면 어떨까? 더욱이 그 복수가 ‘학교 폭력’과 결부된 경우에는 그 강도와 심정이 더 처절해진다. 

  넷플릭스 시리즈 ‘더 글로리’는 어릴 적 당한 학교 폭력으로 인해 온 인생이 송두리째 무너진 한 여자가 치밀하게 준비한 복수극이다.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 배우의 만남 등의 수식어로 방영하기도 전에 한창 화제였고, 이 기대를 보란 듯이 증명하듯 엄청난 반향을 이끌었다. 넷플릭스 비영어권 주간 톱 10에서 콘텐츠 1위를 달성했을 뿐 아니라 오는 3월 시즌 2 공개를 앞두고, 각종 패러디와 뜨거운 반응이 연일 이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누군가의 처절한 더 글로리(영광)에 열광하는 것일까?      


현실을 닮은 더 글로리      


  ‘더 글로리’에 등장하는 참혹한 학교 폭력 장면 중 특히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었던 장면이 있다. 일명 ‘고데기 장면’, 이 장면에서 생살에 뜨거운 고데기를 가져다 지지며 웃는 가해자들과 참을 수 없는 뜨거움에 울부짖는 피해자의 모습이 나온다. 이는 실제 2006년 5월 청주의 한 중학교에서 벌어진 학교 폭력 사건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이밖에도 드라마 속 가해자들은 범죄를 저지르고 난 뒤에도 아무런 제한 없이 자신의 꿈을 이룬다. 박연진은 현모양처, 이사라는 화가, 전재준은 골프장 사업, 최혜정은 승무원 등 지위와 부를 축적할 수 있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떵떵거리며 살아간다. 

  현실도 드라마와 크게 다르지 않다. 국내에서 발생한 여러 학교 폭력 사례 역시 가해자가 14세 미만 촉법소년이라 처벌이 제한적인 경우가 많았다. 오히려 해당 법률을 악용한 가해자들의 학교 폭력 사례가 더욱 교묘해지고 잔인해지는 아이러니한 현실이다. 

  피해자들은 끝없는 고통 속에 몸과 마음에 멍을 지닌 채 살아가는데, 이를 보호할 법과 제도가 없다는 것이 답답하다. 드라마는 현실을 핍진성 있게 묘사하고, 신랄하게 문제점을 폭로한다. 실제로 드라마 방영 이후 학교 폭력 방지를 위한 관심과 캠페인이 늘었다고 하니, 이는 작품의 선한 영향력이라 볼 수 있다.      


  보편적이면서도 불편한 감정복수      


  “여기까지 오는 데 우연은 단 한 줄도 없었어.” 가해자 연진 앞에서 피해자 동은은 일그러진 냉소로 답한다. 고통에 얼룩진 제 삶을 포기하려던 차에 동은은 다시 새 삶을 꿈꾸며 복수를 결심했던 것처럼 말이다. 복수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보편적이면서도 불편한 감정이다. 물론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권선징악을 싫어하는 이는 없다. 

  하지만 오랜 기간 복수를 꿈꾸는데 가장 어려운 점은 계속해서 증오심을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온전히 제 삶에 집중하기도, 긍정적인 발전도 어렵게 만든다. 장기간 누군가를 미워하고 파멸시키기 위해 제 모든 에너지를 동원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라, 많은 이들은 복수를 용서라는 명목하에 포기한다. 가해자보다는 오히려 피해자인 제 삶을 위해, 스스로 괴롭지 않기 위해 말이다. 

  드라마 속 주인공 동은은 그런 사람을 위로하듯 통쾌한 복수를 선사한다. 드라마는 현실의 문제를 꼬집고 그 억울함과 슬픔을 대변해 보란 듯이 복수하는 바탕을 만든다. 이 속에서 시청자들은 짜릿한 쾌감과 대리만족을 느낀다. 현실에선 쉽게 행하지 못하는 복수를, 작품 속 주인공을 응원하고, 이입하며 실행하는 것이다. 촘촘히 짜인 복수의 전개는 작품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학교 폭력 피해자들이 가장 상처를 많이 받는 말이 있다. “그래서 너는 아무 잘못이 없어?” 김은숙 작가는 작품을 만들며 “그렇다. 아무 잘못이 없다.”라고 대신 항변하고 싶었다고 한다. 작품에서 주인공의 성실한 복수는 가해자들의 삶에 위협이 된다. 실제로 이 작품을 통해 어딘가에 숨어 있을 가해자가 반성하고, 피해자가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을 수 있기를. 

  예술에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영향력을 끼치는 힘이 있다. 이 작품과 일련의 과정이 사회에 경각심을 불어넣고, 우리가 더 나아가 우리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가는 힘으로 작용하길 바라본다. 그것이 우리가 누군가의 영광에 열광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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