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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수빈 May 08. 2021

고놈의 공부

<공부 공부>

  2017년 12월 중순 즘, 친구들과 영화를 보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다. 00대에서 한 통의 문자메시지가 도착했다. 수시 합불 여부가 발표됐으니 확인하라는 문자였다. 솔직히 합격을 예상하기는 했다. 그럼에도 ‘합격’이라는 글자에 눈물이 울컥 나더라. 기뻐서 운 게 아니라 내가 너무 한심해서 울었다. 길거리에서 창피한지도 모르고 소리 내 한참 울었던 것 같다. 시간 버리고, 돈 버리고, 성격 배리며 얻은 것은 여드름과 살 밖에 없던 내 후회스러운 재수 생활이 머리에 스쳤다. 현역 때 보다 못 받은 수능 성적이 다시 떠오르며 화가 났고, 나 같은 것을 최초 합격시켜준 학교가 쓰레기처럼 느껴졌다. 태어나서 단 한 번도 가보지 못한 곳에서 4년, 혹은 그 이상을 살아내야 한다는 것도 막막했다.

  뒤이어 들려오는 고등학생 때 친하게 지냈던 후배들의 명문대 합격 소식은 더더욱 나를 짓뭉갰다. 전교 3, 4등 한다고 재수 없이 가르치려 들던 부회장 언니는 꼴좋게 00대에 갔는데 말이다. 걔네가 잘해서, 노력해서 얻은 결과임을 알면서도 나는 점점 작아졌다. 내가 열등감에 푹푹 찌든 사람이라는 것도 그제야 깨달았다.


  2018년 2월 끝 무렵, 기숙사에 짐을 넣으려 왔다. 한글과 숫자가 함께 붙은 버스 번호가 낯설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정겨운 사투리가 어색했다. 내가 정말 이곳에 왔구나, 결국은 이렇게 됐구나. 받아들이려 노력해도 현실이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깊은 패배감에 젖어 들뿐이었다.


  입학한 지 얼마 되지 않은 3월, 나는 다른 신입생들과 표정부터 달랐을 것이다. 대학 생활에 대한 기대감과 설렘 따위를 느끼기에는 내 머릿속이 제대로 정돈되지 않아 있었다. 아직도 상황 파악 중이었으며, 여전히 우울했고, 꼬일 대로 꼬여 있었다. 내게 먼저 말을 거는 친절한 동기들의 모습이 살아남기 위해 못내 버둥거리는 아기새들의 몸부림처럼 느껴졌다. 그 혼란스러운 와중에 교수님께서 지도 학생들에게 건네신 책이 바로 이 <공부 공부>다. 당시 나는 ‘공부’라는 글자만 봐도 눈물이 고일 정도였다. 공부란 대학 입시를 위해 하던 공부밖에 몰랐다. 입시 때 좋은 추억을 가진 사람은 당연 거의 없겠지만, 내 당시 생활은 또 남달랐다고 자부한다. 교수님이 주신 책은 책장 깊은 곳에 박아 버렸다.


  과거를 돌이켜보면, 그 누구도 내게 공부를 하라고 하지 않았다. 시키지 않아도 늘 잘 해왔기 때문에 잔소리할 필요가 없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둔 무렵, 큰언니의 서울대 합격 소식은 큰 기폭제가 됐다. 나도 언니처럼 되고 싶었다. 얼굴도 모르는 친척들까지 나서서 언니에게 용돈을 많이 주는 게 부러웠고, 언니의 이름이 적힌 플랜카드가 여기저기 걸린 게 자랑스러웠으며, 엄마 아빠의 환한 미소가 보기 좋았다. 이후 내 공부의 이유는 오직 대학이 됐다. 선생님도 그만 갖다 내라 한 소리할 만큼 책을 읽었고, 200시간이 넘는 봉사활동을 했다. 온갖 동아리와 모임에 가입해 활동했고, 2년 동안 전교 부회장을 맡았다. 이 모든 활동에서 얻고 싶었던 것은 자기소개서의 소재가 전부였다. 신문방송학과보다 입결이 조금 낮은 광고홍보학과나 국문과에 원서를 넣었던 것도 대학 네임밸류를 높이기 위해서 했던 선택이었다. 대학에서 무엇을 배울지 따위는 고려되지 않았다. 나는 잘난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게 좋은 대학교 학생이라는 삐뚤어진 생각만 했다.

  난 왜 공부를 하기 시작했을까? 초등학생 때는 따로 공부를 하지 않아도 수업만 들으면 다들 잘하는 시기니까. 중학생이 돼서는 그때의 자신감에 더해 명문대생인 언니에게 지고 싶지 않은 열의에 불타 있었다. 고등학생이 되자 ‘공부를 못하는 수빈이’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어느새 난 자타공인 모범생이 됐고 그 낙인에서 전혀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공부는 그런 식으로 나도 모르게 나를 짓눌렀다. ‘나를 위해서’가 아닌 뒤쳐지고 싶지 않아서, 남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공부를 해 왔다. 그래, 공부는 평범한 내가 관심받기 위해 딱 좋은 수단이었던 것, 그뿐이었다. 공부에 권태감과 억압을 몸소 느끼기 시작했을 때는 이미 재수를 하던 시점이었다. 공부가 무엇인지 생각하기에는 너무 늦었을 때였다. 내가 했던 유일한 발악은 대학에서 더 좋은 공부를 하자 마음먹고 소신 있게 원하던 과에 지원한 것이었다. 그럼에도 나는 모의고사 성적에 울고 웃었고, 원하지 않은 학교에 입학해 한없이 우울해졌다.

  나는 내 한계를 인정하는데 조금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인의 시선과 내가 만든 기준에 나를 맞추기 위해 노력하기만 했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기 위해 노력하지는 않았다. '모른다', '못한다'고 이야기할 용기가 도무지 나지 않았다. 내 한계를 드러내는 것에 두려움을 느꼈다. 일등주의는 그렇게 나를 갉아먹었다. 책에 나온 구절인, “ ‘나’는 나의 목적이지만 ‘나에게 속한 것’은 나를 돌본다는 목적을 위해 활용하는 수단이다. 수단인 ‘나에게 속한 것’이 목적이 될 때, 목적인 ‘나’는 수단의 노예살이를 하게 된다.”처럼 나는 수단의 노예살이를 하고 있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것이 나의 전부인 양 굴었다.

  책에서는 스승의 중요성도 자주 이야기하고 있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내 주위에는 항상 나를 뭐라도 되는 사람처럼 말씀하시는 분들밖에 없었다. 엄마는 내가 언니보다 머리는 좋은 것 같다고 항상 이야기해주셨고, 고등학생 때 2년 동안 나의 담임을 맡았던 선생님은 아직도 내가 인서울하지 못한 것을 통탄스러워하신다. 좋은 분들은 맞지만, 좋은 스승이었는가는 의문이다. 결국 나를 알아주고 바른 길을 알려주시지는 못하셨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주제넘지만 말이다. 나도 작년 한 해 동안 중학교 1학년 학생들을 가르치며 스승이었던 적이 있다. 지나치게 해맑아 골머리를 앓게 하는 아이들이었다. 덕분에 좋은 선생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 아이들에게 나는 정말 보잘것없고 모자란 선생이었다. 이유도 목적도 모른 채 공부하는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 종용했다. 애들이 목표가 없는 이유는 자유학기제 같은 쓸데없는 제도와 수업 방식 때문이라고 시스템을 욕했다. 공부의 재미를 알려주지 못하고 해야 하는 이유만 잔뜩 늘어놓은 것일 뿐이다. 꽃밭에서 사는 아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도움도 되지 않을 잔소리가 전부였다. 나도 나지만,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공부의 재미를 알려주지 못했다. 내가 중학생이던 때도 그랬고 10년 가까이 흐른 지금도 그렇다. 일주일에 2번, 2시간씩 만나느라 학교 진도에 뒤쳐질 수밖에 없어 항상 복습을 했는데, 아이들은 그 내용을 다 기억하지 못했다. 새로운 것을 배우면 이전에 배운 것은 금방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학교 숙제, 학원 숙제, 과외 숙제 등등 많은 것을 하느라 머리를 비워내고 채워놓고만 반복하는 것처럼 보였다. 당연히 이후에 배운 것도 잘 해낼 리 없었다. 학교는 느린 아이들의 속도를 배려하지 못한다. 학원과 과외는 성적만 목표로 한다. 우리 사회에서 공부는, 아직도 성적만이 답을 보여준다.


  지금의 나는 어떤가? 뭘 느꼈다, 배웠다 해도 솔직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똑순이 이미지에 집착하며 안절부절못하고 좋은 회사에 취업하고 싶어서 뭐든 공부해보려 한다. 그런 이미지와 좋은 회사는 나의 위치를 보여주는 좋은 수단이니까. 내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내 한계에 도전하고 노력하는 것이 잘못된 것일까? 원체 열등감 덩어리로 태어난 터라, 남과 나를 비교하면서 오는 우월감 혹은 좌절감은 내 원동력이라 생각하는 것도 잘못된 것일까? 다 됐고, 오늘 이렇게 내 밑바닥을 토해내며 내가 이렇게 못난 사람임을 드러낼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자기 배려를 위한 첫걸음이었다고 나 좋을 대로 생각해 보련다.

 

 “입학을 축하합니다. 자신을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해방시키는 진정한 공부를 대학에서 시작하기 바랍니다.” 거의 2년 만에야 교수님께서 써주신 이 문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수능 성적이 말해주는 것은 역시 수능 성적밖에 없었다. 해답을 내놓기 위한 공부가 아닌, 좋은 물음을 위한 공부를 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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