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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안 Apr 27. 2021

어머니, 떡볶이에 건강이 웬 말입니까

멸치 육수 찬성파 vs 안티 멸치 육수파



“영아, 냉장고에서 재료 좀 꺼내 줘.”

“어, 말해봐.”

“고추장, 고춧가루, 간장, 대파, 어묵, 멸치...”

“어묵이랑 멸치. 멸, 멸치? 잠깐만. 엄마 떡볶이 하는 거 아니야?”

“그래. 국물 떡볶이로 하려면 육수 내야지. 멸치로 시원하게.”      


지난주 일요일이었다. 4달간의 긴 회사 프로젝트를 끝내고 맞이한 첫 휴일. 일요일은 내가 요리사(의 탈을 쓴 보조)를 자청한 나와 엄마가 부엌에서 대치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논쟁의 화두는 떡볶이에 넣을 재료였고, 그 중심에 멸치가 있었다. 아니 더 정확히 말하자면, 떡볶이의 감칠맛은 어디서 나오는가. 바로 이것이 문제였다.      


멸치 육수 찬성파의 입장은 다음과 같았다. 주말에도 얼굴 한번 보기 어려웠던 지난날. 수많은 야근으로 익숙해진 야식에 건강까지 상했을 터. 그런 딸이 4개월 만에 건넨 첫마디가 ‘떡볶이’라니. 드디어 자신이 나설 때다. 음식의 맛과 딸의 건강을 모두 사로잡을 떡볶이를 만들어주겠노라. 30년 넘게 한 가정의 식사를 책임져온 그는 확신에 찬 논조로 말을 이어갔다. “음식의 참맛은 육수요, 육수의 근본은 멸치다. 남해산 햇멸치가 들어간 국물로 밖에선 절대 맛볼 수 없는 최고의 떡볶이를 선사하겠다.”라고.    

 

30년이 빚은 요리에 대한 전문성, 그리고 진한 모성애까지. 감성과 이성이 오가는 찬성파의 입장에 흔들렸는가? 이제부터 안티 멸치 육수 파의 의사를 표명하겠다.


어머니, 떡볶이에 건강이 웬 말입니까. 어차피 상사에게 깨질 대로 깨진 몸뚱어리. 건강한 음식 재료로 이어 붙인들 다음 프로젝트 때 또 부서질 몸입니다. 그럴 바엔 먹을 때라도 행복을 느끼는 게 중요하죠. 고추장과 MSG가 어우러진 극강의 맵짠 소스, 쫄깃한 밀떡과 고소한 치즈의 조화. 오동통한 소시지와 라면 사리가 주는 풍부한 식감까지. 떡볶이의 감칠맛은 제 건강을 망치러 온 저의 구원자들에게 있습니다. MSG, 밀가루, 치즈, 그리고 육가공품. 말라비틀어진 멸치가 힘겹게 짜내는 감칠맛이 아니란 말입니다. 멸치 육수엔 그저 비릿함만이 존재할 뿐이죠.     


안티 육수 파의 주장이 펼쳐지는 사이, 설탕을 매실액으로 바꿔치기하려는 엄마의 손을 포착했다. 멸치도 용납할 수 없는데 매실액이라니. 시큼한 떡볶이, 당신은 상상할 수 있는가? 백종원은 인정하지만, 슈가 보이는 받아들일 수 없는 엄마에겐 음식에 관한 뚜렷한 건강 철학이 있다. 특히 국물 요리에 관해서는 재료 본연의 맛으로만 승부를 봐야 한다는 철칙. MSG와 같은 화학조미료 없이 오직 채소와 고기, 그리고 간장이나 소금 같은 기본 소스만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서도 설탕은 최소화로.     


자타가 공인하는 대장금. 요리 실력이 출중한 엄마의 모든 요리를 좋아하고, 그의 음식 철학 또한 존중한다. 하지만 떡볶이만큼은 예외다. 왜? 떡볶이니까. 나 역시 떡볶이를 건강과 연결 지어보자면, 그것은 치유에 좀 더 가깝다. 고단한 육체는 혀를 강타하는 강렬한 맛에서, 허한 마음은 지방이 꽉 찬 속 재료에서 회복된다. 고로 떡볶이는 음식 카테고리에만 포함될 수 없는 그 이상의 것이다. 인생을 치유하고 사람을 구하는 떡볶이야말로 진정한 건강 치료제다. 그러니 그것은 존재 이유에 맞게 ‘본연’의 맛을 잃어선 안 된다.

      

“솔직히 엄마 떡볶이는 진짜 아니야. 그냥 라면 수프나 다시다 넣자. 그럼 분식집 떡볶이랑 맛 똑같다니까?”

“야, 너는 32년 동안 엄마 음식 먹고 컸거든? 이게 아주 바깥 음식 자주 먹으니까 엄마의 고마움을 모르지.”      


엄마는 무슨 부모님의 은혜를 국물 떡볶이 앞에서 얘기해?


그는 돌연 엄마의 사랑을 앞세워 속상함을 드러냈다. 요새 외(外) 국물을 많이 먹어 입맛이 바뀐 딸에게 서운했던 걸까. 재료 선택부터 손질까지 엄마의 마음으로 가득 찬 떡볶이. 그 유일무이한 엄마표 떡볶이를 여느 분식집의 것에 비교했다. 다수를 유혹하는 분식집의 떡볶이와 오직 나만을 위한 엄마의 떡볶이가 비교되고 만 것이다. 애초에 분식집 떡볶이가 먹고 싶었으면 나가서 사 먹으면 됐을걸.     


32년 산 몸의 2/3를 채운 엄마의 음식도 서운했나. 그의 자양분을 먹고 큰 세포들이 여기저기서 마음을 찔러댔다. 쿡쿡, 떡볶이 자체만 보지 마. 쿡쿡, 네가 부엌에 들어오기 전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봐. 부엌에 들어오기 1시간 전, 나는 오랜만에 엄마의 얼굴을 마주 보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전까진 같은 집에 있어도 그의 존재를 잊고 지냈다. 주말에도 방 안에 틀어박혀 일에만 집중하거나 잠을 잘 뿐. 사실 그때도 엄마는 똑같았다. 매번 방문을 열어 나의 배고픔을 걱정했고, 스트레스받는 딸을 위해 간식까지 꼬박 챙겨주었다. 나에게서 좋은 대답을 듣지 못하더라도 꼭 묻는 말도 있었다. “영아, 괜찮니? 몸 생각하면서 해.” 그렇게 4개월 간 지속되던 흑화 모드가 봉인 해제된 날, 나는 엄마를 찾아 떡볶이가 먹고 싶다 했다. 인사말도 생략한 채 그저 자신이 도와줄 테니 같이 요리해 먹자고. 칼질도 무서워하는 딸이 말이다. 어요엄(어차피 요리는 엄마가)이겠지만 엄마는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요리하며, 만든 음식을 함께 먹으며 대화할 딸을 주저 없이 반겼다.      


등을 돌린 채 말없이 양파를 손질하는 엄마에게 다시마를 건넸다.      

“육수 낼 때 무도 필요했던가? 멸치 머리는 내가 딸게.”

“육수 싫다며. 그냥 물에다 해.”

“엄마! 백종원 아저씨 떡볶이 레시피를 잠깐 봤는데, 이분도 멸치 육수가 떡볶이의 핵심이래. 역시 전문가끼리는 통하는 건가.”     


백종원 아저씨의 힘을 빌려 엄마에게 미안함을 전했다. 멸치 육수 파의 편이 생긴 엄마의 목소리가 그제야 세워진다. 그는 멸치 육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것저것 들어간 재료 속, 올곧게 자기 자리를 지키는 멸치 육수의 위엄. 자신의 고유함을 잃지 않되 다른 맛과 조화도 이룰 줄 아는 게 육수의 힘이다. 마치 복잡한 현실에서도 자신을 잃지 않고 생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깊은 맛을 위해 무와 양파를 추가로 넣은 후 최종 육수를 완성했다. 여기까지 하면 해피엔딩이겠지만, 엄마는 육수에 심취해 ‘국무울’ 떡볶이를 만들었다. 넘쳐난 국물을 해결하겠다고 채소를 더 넣는 바람에 양은 4인분으로 늘었고. 덕분에 세상 어디에도 없는 고유한 엄마의 사랑을 듬뿍 먹을 수 있었다. 여전히 비릿함은 느껴졌지만, 그건 곁에 내어준 다른 반찬 맛에 숨기면 그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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