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여고 앞 횡단보도에서 만나!

6년 간 묵혀둔 이름에게

by 영글

6년 동안 부르지 못한 이름이 있다.

정현. 그녀는 내 생애 가장 어두웠던 터널을 함께 통과한 시절의 친구였다.


우리가 처음 만난 건 2015년 봄, 당시 다니던 교회 청년부에서였다. 같은 모임에 배정된 우리는 그곳에서 처음 서로의 배경을 알게 됐다. 'N 년 차 예비 경찰.' 나와 한 살 터울이었던 정현이의 자기소개였다. '고등학교 영어 강사이자, 임용고시생.' 이것은 나의 소개. 두 문구는 그 시절 우리의 전부를 담아낸 이름표였다.


고시생. 어쩌면 그 서글픈 유대감 때문이었을까. 우리는 만난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마치 십 년은 알고 지낸 사람들처럼 빠르게 가까워졌다. 정현이 특유의 호탕한 성격은 관계의 거리를 순식간에 좁혔고, 웃는 지점과 분노의 온도가 같았던 대화 코드는 그마저 남아 있던 낯섦을 지워버렸다.


거울 앞에 선 것처럼 나를 닮은 친구를 알게 된 후로, 돌아오는 일요일마다 나는 정현이에게 주말 하루를 몽땅 내어주었다. 그 애정은 주말을 넘어 평일로도 이어졌고, 결국 주 7일 내내 연락하는 사이가 되었다. 노량진과 집, 독서실과 교회. 단조로운 궤도를 시계추처럼 오가던 고시생은 주변에 나와 그녀뿐이었으니 어쩌면 우리는 서로에게 유일한 숨구멍이 될 운명이었는지도 모른다.


"A여고 앞 횡단보도에서 만나!"

이 말은, 우리의 만남을 알리는 신호였다. A여고는 집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나의 모교였다. 학교를 기준으로 앞 단지엔 내가, 뒷 단지엔 그녀가 살았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거리였다. 그 가까움을 핑계 삼아 우리는 낮이고 밤이고, 쉬는 시간마다 서로를 불러 동네를 걸었다. 이때 필요한 준비물은 5천 원. 아파트 단지 길 건너 상가에 입점한 쥬씨에 들러 아바주스(아보카도 바나나 주스) 두 잔을 사기 위한 자금이었다. 그리고는 그대로 근린공원으로 향했다. 그곳엔 우리의 숨은 아지트, 정자가 하나 있었다. 평일 오후 두세 시쯤엔 공원을 이용하는 주민들이 없어, 정자의 주인은 늘 우리 차지였다. 문턱에 걸터앉아 하늘을 올려다보며 걸쭉한 주스를 쭈욱 들이키면, 그간 쌓인 공부 스트레스가 삽시간에 가라앉곤 했다.


정자 안에서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5일장처럼 늘어섰다. 오랜만에 열린 장도 아닌데, 할 얘기는 왜 그렇게 많은지. 깔깔대는 소리로 시장은 언제나 와글와글했다. 첫 대화는 보통 가볍게 몸을 푸는 준비운동으로 시작한다. "공부 잘 돼가?" 따위의 무의미한 안부 대신, 좋아하는 강사 성대모사나 필기감 좋은 펜에 대한 품평회 같은 것들. 재미와 실용이 뒤섞인 이야기로 대화 열기의 파고가 높아지면, 어김없이 위기와 절정이 찾아온다. 그때부터는 본격적인 신파극이 시작된다. 부모님과 한 지붕 아래 살며 눈치를 피하는 법, 경찰과 교사가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것 등. 기쁨과 슬픔이 널을 뛰며 이야기는 그날그날의 감정에 따라 매번 다른 결말로 흘렀다.


이야기의 대부분은 따끈한 최신 소식이 아니었다. 어제, 몇 달 전, 혹은 몇 년 전 각자의 일기장 구석에 묻어둔 기록들이었다. 번듯한 직장인 친구들에게는 차마 꺼내지 못했던 마음의 파편들이 오직 우리 사이에서만 새로운 소재가 되었다. 그렇게 한바탕 감정을 쏟아내고 나면, 정현이와 나는 두고두고 기억날 웃음과 쓸 만한 위로를 챙겨 각자의 자리로 다시 돌아갔다.


그 후 몇 달이 흘렀을까. 정현이는 그 해 준비했던 시험에 낙방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그리고 그해 12월, 나 역시 두 번째 도전에서 고배를 마셨다. 맞이하고 싶지 않았던 겨울 방학이 시작되던 날, 정현이는 나를 집으로 불렀다. 부모님이 제주도로 내려가 하루 종일 놀아도 된다는 희소식과 함께, 거실에는 소주 세 병과 보기만 해도 얼얼한 닭발이 준비되어 있었다. 그날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다만 딱 하나, 지금까지도 또렷하게 남는 말이 있다. "언니, 나 이번이 마지막 기회인 것 같아. 정말, 제대로 해보려고."


호탕하던 정현이에게서 처음으로 느낀 결연함이었다. 그 말에는 진심이 깊이 박힌 만큼, 옅은 물기마저 묻어 있었다. "그래, 최선을 다해보자."라는 나의 대답을 끝으로 우리는 새해를 맞이했다.


해가 바뀌어도 우리 관계는 함께 이어졌다. 다만, 만남의 주기가 눈에 띄게 줄었다. 나는 인천 본가를 떠나 서울 언니네에서 머물며 노량진 생활에 집중했고, 정현이는 해양경찰이셨던 아버지를 따라 제주도 관사로 내려가 유배 생활을 보냈다. 우리의 관계는 이제 휴대폰을 기준으로 서울과 제주도로 나뉘어 이따금 카톡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였다.


경기도를 시험 장소로 택한 정현이는 시험 몇 달을 앞두고 다시 인천으로 올라와 막판 스퍼트를 냈다. 그리고 드디어, 우리에게 가장 낯설었던 단어가 담긴 카톡 메시지가 도착했다. "언니 나 합격했어!!ㅠㅠ 내가 쏠게. 우리 만나자!"


텁텁한 미세먼지가 유난히 짙던 초가을의 어느 날, 노량진역 안에서 그녀의 소식을 읽었다. 휴대폰의 밝은 화면 위로 반짝이던 문장을 바라보다가, 나는 이상하게도 눈물이 차올랐다. 왜였을까. 이 눈물은 어디서 흘러들어온 걸까. 그날은 마침 오랜만에 인천 본가로 내려가는 날이었다. 하반기 모의고사 성적이 마음에 들지 않아, 엄마 밥이나 먹고 오자고 스스로를 달래던 날이기도 했다. 엄마가 보고 싶어서였을까. 그럴 나이는 아니지. 그래 맞아. 모의고사 점수가 안 좋았잖아. 그 때문이다. 그것 때문이어야 했다.


좋아하는 정현이와 대화를 해야 하는데 눈물이 자꾸만 쏟아졌다. 마치 오래 막아두었던 둑이 한순간에 무너진 것처럼. 우리 사이에는 늘 재미난 이야기만 넘쳐났는데, 이렇게 다른 것도 쉴 새 없이 쏟아질 수 있다는 사실이 낯설었다. 그게 왜 하필, 눈물이었을까. 나는 결국 20분이나 기다렸던 1호선 인천행 급행열차를 타지 못하고 보내야 했다. 아무 의자에나 앉아 한참을 숨 고른 뒤, 그녀에게 답장을 보냈다. "정현아 너무너무 축하해! 역시 될 줄 알았어 :) 아이고, 그런데 어쩌지? 내가 시험이 막바지라 지금은 시간을 내기가 쉽지 않네ㅠ 시험 끝나고 겨울에 꼭 보자!" 구구절절한 미사여구에 느낌표와 이모지로 노력을 덕지덕지 붙인 축하 인사였다. 곧장 '응원한다'는 답장이 돌아왔지만, 나는 더 이상 답 하지 못했다. 그리고 세 번째 시험이 끝난 뒤인 2017년 1월. 나는 정현이를 다시 만났다. 불합격 소식과 함께 취업 노선으로 방향을 틀었다는 새로운 계획을 손에 쥔 채로.


정현이가 경기도의 어느 파출소로 발령받았다는 소식을 끝으로, 우리 사이에는 기약 없는 공백이 생겼다. 나는 직장인 친구가 한 명 더 늘었다는 사실을 견뎌내기 위해 취업 노선에 더욱 매진했다. 그 후로 갈지(之) 자 커리어를 거치며, 그토록 바랐던 직장인이 되어갔다.


2023년 봄. 나는 직장을 따라 서울 살이를 시작했다. 관악구 신대방동, 6평짜리 작은 원룸을 겨우 구했지만, 첫 자취라는 사실에 신이 나 본가에서 짐을 한가득 들고 나왔다. 침대와 옷걸이만 놓아도 꽉 차는 방을 취향이 묻어나는 나만의 아지트로 만들고 싶어서였다. 우습게도, 방은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졌지만 외로움은 오히려 더 커져갔다. 어느 날은 6평이 60평이 된 것처럼 크게 느껴지기도 했다. 부모님의 품을 떠나 모든 걸 혼자 감당해야 한다는 부담이 외로움의 형태로 변질되는 듯했다. 거기에 더해, 직장 관계에 이골이 나 마음 편히 정 붙일 곳 하나 없다는 현실은 나를 더욱 작고 여린 사람으로 만들었다. 독서실 1인 책상에서 하루 열여섯 시간을 버티던 시절과는 또 다른 종류의 외로움이었다.


어느 주말, 여느 때처럼 혼자 저녁을 해결하기 위해 집 앞 단골 라멘집에 찾아갔다. 뜨끈한 사골 국물로 가득 찬 배가 금세 불편해져 산책이 하고 싶어졌다. 가게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보라매 공원이 있어 자연스럽게 발길을 공원 쪽으로 옮겼다. 밥을 먹는 것도, 산책을 하는 것도 뭐든 혼자 하는 게 당연해진 삶. 횡단보도 앞에서 파란 불을 기다리는 짧은 찰나, 또다시 외로움이 스멀스멀 차올랐다.


'A여고 앞 횡단보도에서 만나!'

어디서 외쳤는지 모를 형태 없는 외침이 머릿속을 관통했다. 신호등이 파란 불로 바뀌면, 너털웃음을 지으며 느릿느릿 나를 향해 걸어오던 정현이가 반대편에 서 있을 것만 같았다. 6년 동안 잊고 지냈던 이름이 이렇게 불쑥 생각날 수 있는 건가. 어제 부른 것처럼 자연스럽게 떠오른 그 이름을 진짜 부르고 싶어졌다. 공원으로 걸어가는 동안 카톡 친구 목록에서 정현이를 찾았다. 프로필 사진을 보니 분명 정현이었다. 다행히 번호는 예전 그대로인 듯했다. 보라매 공원을 채운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시선을 휴대폰에 푹 묻은 채 오래된 이름에게 조심스럽게 메시지를 보냈다.


정현아, 주영 언니야. 잘 지내?
너무 오랜만이네.
보고 싶어서 연락했어.


미사여구 없는 간결한 메시지였다. 그것보다 더 하고 싶은 말은 없었다. 그리고 한 시간쯤 걸었을까. 주머니에 넣어둔 휴대폰이 가볍게 울렸다. 정현이에게서 온 답장이었다. '언니이이이잌!!!! 언니야말루 어캐지내ㅠㅠㅠㅠㅠㅠㅠ' 6년 만에 닿은 그녀의 인사였다. 그 뒤로 우리의 카톡 대화창은 호들갑스러운 말들로 순식간에 채워졌다. 그리고는 곧장 만날 약속을 잡았다. 5월 20일. 정현이는 청첩장을 손에 쥐고 나타났다. 여전히 호탕한 모습 그대로, 조금 더 늠름해진 어른이 되어.


우리는 '시절인연'이라는 이름표를 내려놓고, 새로운 끈으로 다시 관계를 잇고 있다. 이제는 새로운 친구도 함께한다. 정현이를 꼭 닮은 주니어다. 여기에 더 놀라운 사실 하나. 나는 지금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파주로 이사한 부모님 댁에서 지내고 있다. 그 아파트 단지 앞 횡단보도를 건너면 바로 보이는 작은 마트 뒷 단지에 정현이가 산다. 돌고 돌아 이번에도 우리는 이웃이 되었다. 역시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만날 수 있는 거리다.


"코코마트 앞에서 만나!"

새로워진 신호로 정현이에게서 카톡이 왔다. 오늘 저녁, 재택근무를 마치면 그녀와 저녁을 먹을 예정이다. 6년 동안 미뤄두었던 무수한 밥 약속과 공원을 함께 거닐 시간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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