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효자가 아닙니다. 아, 아니라구요. 에헤이~
"가서 트랙터 끌고 올게"
무리를 했다. 조금이라도 더 편하게 일 할 생각에 트럭을 뒤로 물린다는게 진창에 빠져 버린 것이다. 이런 경우엔 트랙터를 가져와서 끈을 매달아 차를 빼야 한다. 4륜이니 대우가 달렸니 해도 1톤 트럭은 한계가 있어. 라는 핑계를 대기엔 그저 이 동네를 잘 모르고 이 과수원의 생리를 모르는 초보 농사꾼의 철부지 변명에 불과하다.
덥고 습하고 힘든 와중에 일어난 일에 짜증을 낼 법도 하건만 아버지는 쉬이 현실을 받아 들이고 트랙터를 가지러 집으로 향하셨다. 죄송스러운 마음 반, 억울한 마음 반으로 "아니 이게.." 를 연발하며 복숭아 나무 뒤에 숨어 연실 담배나 피우는 것 말고는 딱히 할 일이 없다.
우리 가족이 사는 동네는 이 언저리에서도 가장 깊고 높은 동네이다. 외지에서 들어와 농막을 짓고 텃밭을 일구며 소일하는 몇몇 이웃을 제외하고는 순수 토박이로 이동네에 사는 건 우리 가족 뿐인 것이다. 그래도 뒤로 건너로 이웃이 산다는 건 참 좋은 일인데 요즘 가장 핫한 주제는 아무리 봐도 '나' 인 것이 틀림 없다.
내막을 모르는 사람들은 앞 다투어 나를 칭찬하고 격려한다. 힘든 노 부모를 도와 시골일을 할 생각을 했다는게 기특 하단다. 그러면서도 또 놀지 않겠다고 내려 오자마자 일주일도 안 되어 새 직장을 구해서 출근을 한다고 하니 100점짜리 아들이라고 웅성 거린다.
남의 속도 모르면서
여러분, 저는 선생님들 께서 생각 하시는 그런 효자 어름치에도 못 끼는 형 편 없는 인간입니다. 굳이 알려 드리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말이죠.
열심히 하는 건 사실이다.
퇴근하면 피곤한 내색 없이 밖으로 나가 아버지를 도와 드린다. 80 다 된 노인네가 고된 몸을 이끌고 구슬땀을 흘리는데 그 깟 회사일좀 했다가 절반도 안 산 아들놈이 피곤해서 안된다며 집구석에 들어 앉아 있는 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 반은 강제로 하는거다. 상황이 나를 밖으로 내 모는 것이다.
죽을듯이 졸음이 쏟아져도 일단 나간다. 나가서 뭔가 하다 보면 잠은 깰 것이고 정신 없이 일 하다 보면 마무리가 될 것이고 아무래도 아부지 혼자 하시는 것 보다는 빨리 끝날 것이고 그러면 아부지는 체력을 아낄 것이고 체력이 남아 있으니 힘들다고 짜증을 안내실 것이고 그 짜증이 듣지 않으면 어머니의 마음이 평안할 것이며 평안한 어머니의 얼굴을 보면 나는 보람을 느낀다.
그러니 다소 피곤할 지라도 멀쩡한 허우대를 움직여서 조금만 고생하면 모두가 행복한 결말을(하루짜리) 맞이 할 수 있다는 메리트가 있기 때문에 그런 거라고 구태여 말 할 필요를 못느껴서 가만히 있는 것을 그거를~ 사람들은 아이구 저집 아들은 효자니 뭐니 하고 구설방아를 찧어대는 것이지.
사는 사람이 적어 별 거 아닌 일도 소문이 잘 나, 어느집에 누구는 어쩌구 같은 말들이 일파만파 잘 퍼지는 곳이다 보니 내려온지 한달 반 만에 울 아부지는 아들 하나는 잘 키운 노인회장이 되어 버리셨다. 그리고 훌륭한 아들이 되어 버린 나는 앞으로 그 기대에 부응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테지..
삶은 정말 피곤한 여정이다..
아, 트럭은 잘 뺐다.
복숭아 따러 ㄱㄱ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