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란걸 인지한 것이 첫 번째 기억이라 치자면 내 인생의 시작은 아마도 네 살의 여름 어디쯤 이었던 것 같다. 대부분은 시골에 살며 이리 뒹굴고 저리 뒹굴었던 기억들, 꾀죄죄한 몰골이 아궁이에 들어가 앉은 강아지 같다고 놀려대던 동네 어른들.
도시였다면 엄마없는 애새끼라 몰골이 저런거라고 손가락질 꽤나 받았을 법 하지만 다행히 산골 동네엔 나를 사랑해 마지 않는 할머니, 작은 할아버지 내외, 막내 고모 외엔 살지 않았기에 정서적 타격감 없이 순수하게 클 수 있었던 듯.
서낭댕이라고 불리우는 우리 마을로 들어오는 마지막 입구의 안쪽이 내 세상의 전부였고 친구라면 키우는 바둑이가 전부였던 시절, 서낭댕이 너머에 대한 막연한 동경이 있기도 했다. 자동차, 장난감(특히 화약총), 새우깡, 참라면..이 안에서 흔히 만져볼 수 없는 진귀한 것들이 가득한 바깥세상.
난 그 경계에 서서 항상 누군가를 기다렸다.
아버지, 어머니, 셋째 고모와 사촌 동생들, 라면트럭 아저씨 그게 누구든..저 아래 마을까지 하루 세번 들어오는 버스의 도착시간이 될 때 쯤이면 누가 세상의 경계 서낭댕이 이쪽으로 넘어와 주진 않을까 하는 기대에 몸서리 치곤 했었다.
여전히 내 앞엔 세상의 경계가 있다.
달라진 건 저 경계의 너머에서 누군가 나의 마음을 두드리고 넘어와 줄 사람이 없다는 사실과 그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사실과 오직 나만이 드나드는 곳이라는 것 정도. 경계 너머엔 아주 소소한 즐거움 조금과 대체로 피곤해서 피하고 싶은 일들이 즐비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음은 차치하고라도 스스로 자초한 외로움을 고요한 고독이라 이름 짓고는 문 밖의 것들을 그리워 하는 것을 되려 즐겨버리는 쩨쩨한 인간이 되어버렸음은 조금 슬프고 부끄러운 일이다.
이전의 그리움들은 간혹 예기치 못한 반가움과 환희로 변할 수 있었기에 세상의 경계를 사랑했었다. 적어도 저 경계의 선을 넘어오는 이들은 최소 나를 좋아하거나 아끼거나 듬뿍 애정하는 사람이 대부분이었기에.
경계를 훌떡훌떡 넘어다닐 수 있는 어른이 된 지금은 어떻지.
나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사람들과 섞여 하루를 살고 그렇게 야금야금 갈려지는 삶을 대가로 또 다른 하루를 살기 위한 양식을 얻을 수 있는 세상으로의 경계 그 뿐. 여기 안 쪽 내 세상에서 저기 저 쪽 누가 만들었는지 모를 지독하고 편협하고 이기적이며 자비없는 그 혹은 그들의 세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일같이 저 경계를 열고 그 세상으로 나가야만 하는 것이 당연한 일임을 배운 것 정도가 지난했던 인생에서 얻은 소기의 성과일지도?
내키지 않는 걸음이나마 한 발 떼어 저 너머로 가는 이유가 또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나의 등장을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을 누군가를 찾아내기 위함이라는 거창하고 웅대한 동기가 될 때 까지
버텨보는거다.
어거지로
버겁게 힘들게
그러나 일말의 기대는 소중히 간직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