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생각해보면 부모님의 몰랐던 모습을 재발견할 때가 있다. 나에게는 나의 아버지가 그렇다.
나의 본가는 부산이기도 하고 아버지도 워낙 강한 이미지였기에 나는 아버지를 소위 말하는 상남자로 생각했다. 서른이 가까운 나이에 돌이켜 생각해보면 아버지는 오히려 감수성이 풍부하고 굉장히 감성적인 분이시다. 몇 해 전 할머니께 직접 손 편지를 적어 드렸던 아버지의 편지 내용이 무척 서정적이기도 했고….
아버지를 떠올려보면 수많은 기억들이 있지만. 그중 오래전 아버지 모습 하나가 나에겐 빛바랜 흑백의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남아있다.
아버지는 비가 오는 걸 좋아하셨다. 좀 더 정확하게는 비 오는 소리를 좋아하셨다. 당시 나는 유치원생이었고 우리 집은 주택에 살았었다. 비 오는 주말이면 아버지께서는 거실에 누워 지붕으로 튀는 빗소리를 즐겨 듣곤 하셨다. 어린 내가 뭘 하는지 물어보면 아버지는 나지막이 '쉿'하고 손가락을 입에 대셨다.
그러고는 자세한 대답 대신 조용히 창문을 가리키실 뿐이었다. 어린 나는 동그랗게 토끼 눈을 뜨고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아버지를 바라봤다. '창문? 아무것도 없는데….' 잠깐의 정적이 흐른 후 '토닥토닥' 이윽고 지붕 위로 비 튀는 소리가 들렸다. 경쾌하고 청명한 빗소리가 한여름의 공기 가운데 퍼져나갔다. 아버지는 참 듣기 좋지 않냐며 눈을 감고 감상하셨다. 어린 나는 아버지 품에 안겨 빗소리를 들으며 스르륵 낮잠에 빠져들었다.
그 기억 때문인지 성인이 된 지금도 비 오는 날 신발이나 바짓단이 젖는 건 싫어하지만, 실내에서 비 오는 풍경을 바라보거나 빗소리를 듣는 것은 여전히 좋아한다. 회상할 때마다 애틋하고 기분 좋은 기억….
누구나 이렇게 평범한 듯 소중한 사진 한 장을 가슴속에 간직하고 산다. 여러분의 기억 속 나의 옛날이야기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