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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Apr 05. 2020

간판 없는 라이브 카페

동화 속에서나 나올 거 같은 가게




그곳과 인연이 된 것은 정확히 2018년 겨울이었다.


모든 것에 지쳐버린 나는 부산에서의 생활을 정리하고 서울로 훌쩍 올라오기로 마음먹었다. 사람은 결국 본인이 익숙한 곳으로 숨는다더니…. 부산이 고향이었던 내가 연고지를 등지고 찾은 곳은 첫 직장을 다녔던 서울이었다. 귀소본능과 유사한 감정일까?


대책 없이 올라올 계획의 일환으로 절친한 동생과 룸메이트를 하기로 얘기가 됐고, 거주지는 당시 그녀의 직장 근처인 신사동으로 확정됐다. 나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것은 고정적인 수입원이었다. 나는 당장에는 아르바이트하는 것으로 마음을 먹고 구인광고를 뒤지기 시작했다. 눈에 띈 것은 라이브 카페 공고였다. 어쿠스틱 기타를 좋아하는 나에게 본인 취향의 음악을 들으며 일할 수 있는 라이브 카페는 상당히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천편일률적인 알바 공고들 가운데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공고였다


"부부가 운영하는 라이브 카페입니다. 테이블이 2~3개인 아담한 곳이며 단골손님들만 오시는 곳이라 조용합니다. 가족과 함께 오기도 할 만큼 건전한 곳입니다. 성실하고 상냥한 분이시면 좋겠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알바 공고들 가운데 상당히 신선하게 느껴지는 공고였다. 구인광고만 봐도 개성이 묻어난달까.


문자로 구인에 관련된 문의를 했고, 어렵지 않게 면접 일자가 잡혔다. 공교롭게도 당시 할머니의 장례 일정이 예정에 없이 생기면서 면접 일자는 자연적으로 미뤄지게 됐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런저런 에피소드가 있었고 그동안 다른 지원자와 면접진행했지만, 최종으로 호흡을 맞추게 된 건 나였다. 그 자체가 인연이지 않았을까 회상해본다.


도산공원 근처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그곳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도산공원 근처에 덩그러니 자리 잡은 그곳은 철저하게 예약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아는 사람만 오는 시스템. 단골손님 혹은 단골손님을 통해서 가게를 알게 된 분들이 손님이었다. 소위 말하는 진상 손님은 없었고 매너 좋은 분들만  손님만 오셨기에 알바 스트레스도 적었다. 더군다나 호텔 아르바이트처럼 경우에 따라 팁을 주는 분도 계셨기에 수입도 좋은 편이었다. 독특하게도 테이블당 양주를 기본으로 시켜야 하는 게 그 가게의 룰이었는데 성수기인 겨울 장사에는 하루에 1~2 테이블은 왔고, 그것만으로도 가게가 충분히 유지될 수 있는 구조였다. 사장님 부부는 욕심내서 무리하게 손님을 많이 받지 않았다.


심지어 술을 파는 곳인데도 장사는 새벽 1시를 넘기지 않다. 손님들도 12시쯤이 되며 다들 집으로 가는 분위기. 사장님 부부는 두 분 다 부모님 세대의 대학가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7080 가수로 음악 방송에도 제법 출연하셨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두 분 다 음악만 하셔서 그런지 동년배의 분들보다 훨씬 순수하시기에 이런 운영 방침을  수 있지 않았을까 다.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셨다. 구체적으론 후추, 치즈, 소금이라는 총 3마리의 고양이를 키우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효리네 민박의 이효리-이상순 부부를 연상하게 하는…. 마치 동화 속에 나오는 가게 같았다.


길에 버려진 고양이를 데리고 와서 키우는 마음이 따뜻한 분들이셨다


우리 부모님과 또래였던 사장님 부부 덕분에 실제로 나는 서울에서 무사히 적응하는데 굉장히 많은 도움을 받았다. 엄마 같은 여자 사장님께 사소한 고민들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하기도 했다. (사장님께는 내 나이 또래의 딸이 실제로 있었기 때문에 좋은 말들을 정말 많이 해주셨다.) 나는 그곳에서 3개월 정도 근무를 했었고 알바를 그만두고 나서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사장님께 안부 문자를 드렸다. 그것이 계기가 돼서 상황이나 타이밍이 맞으면 그 뒤로도 종종 알바를 하기도 했다.


연고지도 아닌 서울에서 정말 말도 안 되게 나의 소울 플레이스로 남은 곳…. 인생은 정말 한 치 앞도 알 수가 없어서 더욱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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