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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Apr 09. 2020

국밥 같은 사람

마음이 허할 때 한 그릇





"딸랑"


가게 문을 열자 청량한 종소리가 손님이 온 것을 맞이했다. 봄의 한가운데인 4월이 됐지만, 밤 11시의 밤공기는 제법 쌀쌀했기에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안경에는 뽀오얀 김이 서렸다. 국밥집 특유의 따스하고 습한 공기가 먼저 마중을 나왔다.


마음이 허해서 야식이라도 먹을까 하고 찾은 국밥집엔 이미 여기저기서 모인 사람들이 벽 쪽 구석 가에 혼자 자리를 잡고 국밥을 먹고 있었다.


"순댓국 하나요"


주인아주머니가  밑반찬과 공깃밥을 내오고 나서 국밥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주변을 둘러봤다. 대학생 정도로 보이는 여자분이 이어폰을 끼고 핸드폰을 보며 소주 2병에 순댓국을 들고 계셨다. 대각선에 남자분도 소주 1병에 순댓국. 맞은편 중앙에 앉은 남자분은 막걸리에 순댓국을 들고 계셨다. 늦은 시간에 나와서 다들 혼자 국밥에 술을 기울이는 걸 보면 마음이 허하든, 속이 허하던 둘 중의 하나인 듯했다.


이윽고 뚝배기에 부글부글하게 끓는 순댓국이 나왔다. 새우젓을 넣어 간을 한 뒤 뜨거운 순댓국을 입 안에 넣으니 구멍 난 마음도 메워지는 것 같았다. 제각기 다른 이유로 가게를 찾은 사람들은 대화 상대는 없지만, 국밥을 호호 불어서 먹으며 허기를 달래고 있었다. 그 풍경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갑자기 문득 국밥 같은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지어 국밥집은 대부분 연중무휴에 24시간 오픈되어 있다.


국밥 같은 사람은 마음이 헛헛할 때 언제든지 찾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나이가 들고 나서 느끼는 건 도움이란 필요한 바로 그 순간에 줘야 한다는 것. 도움에도 타이밍이 있다.


부담 없는 가격에 뜨끈한 순댓국은 마음 쓰기를 아끼지 않으며 뜨겁게 반기고 끝까지 따뜻함을 잃지 않는 사람과 닮았다. 혼자서 먹는 밥은 제아무리 화려해도 외로운 감이 있지만, 국밥은 뚝배기의 뭉근한 온기 때문인지 결코 혼자 먹어도 썰렁하지 않다.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먹을 때 괜히 위로되는 맛이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꼭 우여곡절이 많았던 하루의 끝엔 등장인물들이 국밥에 소주로 마음을 달래는 장면이 많은 것 또한 비슷한 맥락일지도 모른다.


나도 마음이 허할 때 누군가에게 한 그릇 할 수 있는 사람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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