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어요
"그건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됐어요"
어느 날 나는 박애주의자가 되었다. 눈을 떠보니 나는 모두를 사랑하지만, 누군가를 특별히 사랑하지는 않는 사람이 된 듯했다. 20대 동안 몇 번의 연애를 겪고 나서였다. 어쭙잖은 트라우마라던지 무기력에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정확히는 삶의 구성이 심플해지고 나서부터라고 할까.
누군가는 물었다.
"원래 박애주의자는 둘 중 하나 아닌가요? 모두를 엄청나게 사랑하거나 모두를 조금 사랑하거나. 문란하거나 금욕적이거나"
"그렇다면, 금욕적이겠네요"
"네. 그래서 힘들 거 같아요"
박애가 힘든 이유는 금욕도 있지만, 엄밀히는 균형 때문이다. 모두를 똑같은 질량과 밀도와 무게로 사랑해야 한다. 그게 말이 쉽지 행하기가 참 어려워서 불편한 사람도 포용해서 사랑해야 하는 경우도 많다. 나의 그릇을 넓혀가야 하는 문제다. 물론 그 반대도 존재한다. 사랑을 몰아서 주고 싶지만, 그 마음을 모두 담을 수가 없어서 감하는 케이스. 그때는 또 절제가 필요하다.
참 피곤하게 사는 거 같다. 좌로든 우로든 결코 치우쳐선 안 된다. 좁고 협착한 길이다.
벚꽃이 만개할 때 즈음엔 항상 마음이 뒤숭숭하다. 활짝 핀 꽃만큼이나 나도 사랑을 꽃피워야 할 거 같은 마음이 불쑥 올라온다. 하지만 좀처럼 설렐 일은 전혀 없다. 애초에 누군가에게 특별하지 않으니까. 그게 박애주의자가 안게 되는 본질적인 딜레마다.
더군다나 세상의 모두가 박애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마음 쓰는데 인색하지 않은 그 사이 어딘가의 적정선도 잘 찾아야 한다. 중심이 단단해야 박애 노선이 중간에 흔들리지 않는다. 지금의 흔들림이 단순한 흔들림으로 끝나지 않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길….
비록 아무도 알아주지 않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천하는 삶은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