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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달토끼 Mar 24. 2020

만성위로 사회

(feat. 위로 없는 위로 글)




요즘 서점가의 에세이 코너를 살펴보면 몇 해 전부터 지속적으로 ‘위로’라는 키워드가 상당히 자주 언급된다. 심지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책들은 거의 사람들에 대한 위로를 주제로 하다 보니 나도 책을 쓰면서 위로를 에세이 주제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심각한 고민도 했었다.


이미 여러 해를 지나서도 꾸준히 위로에 관한 책이 사랑을 받는 걸 보면 거품 같은 유행이 아닌 현대사회를 관통하는 하나의 메가 트렌드로 자리 잡은 게 분명하다. 자기 개발서와 에세이 부문에서 위로라는 키워드는 어느새 출판 흥행의 보증 수표가 됐달까. 위로를 주제로 한 모든 책이 인기 있는 건 아니지만 잘 팔리는 책은 대부분 위로를 메인 주제로 하더라. 그 원인에 대해서 조금만 생각해보면 충분히 납득할 만하다.



에세이의 주 소비층은 2030 세대인데 나 또한 N포 세대로 대변되는 그 유명한 90년대생이다.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로 태어나 학창 시절부터 줄 세우기와 경쟁에 익숙해질 대로 익숙해진 세대. 그 숨 막힘은 성인이 되고 나서도 고스란히 이어져 또다시 취업난이라는 물결에 몸을 싣게 되었고 그 결과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인 취준생들이 탄생했다. 이렇다 보니 직장에 취직을 하고 나서도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게 현실이다. 멀리서 찾을 거 없이 베스트셀러 코너에 위로뿐만 아니라 바로 옆에 ‘퇴사’에 대한 키워드도 맛집인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힘든 현실 때문에 위로받고 싶은 마음 자체를 비난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나는 위로가 너무 만연한 사회에 조금 염증을 느낀다. 핵심은 이게 개인 차원의 ‘인내’만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에 대한 염려다. 사람들이 ‘위로’와 ‘자존감’, ‘퇴사’에 관한 책을 읽으며 최대한 버티기를 한다고 해서 현실이 달라지는 것은 아니다. 끈기와 인내는 필요하지만 경계해야 하는 것은 위로라는 달콤한 포장지에 감싼 채로 본질을 외면하게 만드는 현실에 있다. 시스템이나 제도적인 차원의 도움도 분명히 필요하다. 그것을 차치하고 위로만으로 무언가를 극복하는 건 일시적인 미봉책에 불과하다.




위로의 효과가 떨어지면 언젠가는 ‘나는 그냥 이대로 살련다’라는 포기하는 마음이 올라오게 된다. 본인의 중심이 단단한 상태의 자기 확신과는 조금 미묘하게 결이 다른 약간 ‘될 대로 돼라’라는 심정. 최근 에세이들도 이런 무기력한 심리를 겨냥해 히트를 치는 게 대부분이다. 냉정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자기 확신과 자기 합리화는 엄연히 다르다. 이것이 심해지면 간혹 “노력하는 삶은 귀찮다. 게으르고 나태한 나도 어떻게 보면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발생하게 된다. 나라고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건 아니지만 글쎄. 그냥 적당히는 의사 표현했으면 좋겠다. 다들 좋은 모습만 보여주려는 강박에 정작 필요한 말은 하지 못하는 느낌이랄까. 할 말은 원만하고 세련되게 하면서 자기 의사 표현할 줄 아는 게 진짜 사회생활 잘하는 거더라


자책하거나 무조건 참아서 곪아 터지기보다는 “나는 이런 점은 부족하지만 이런 노력을 했고, 이 정도는 타인이나 사회도 어느 정도는 수긍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아봤으면 좋겠다.” 정도만 돼도 훌륭하지 않을까. 결국 자신의 권리와 가치는 자기가 찾는 거다. 물론 정답은 없겠지만 말이다. 나는 누군가를 감히 위로할 수 있을 만큼 삶의 식견이 풍부한 사람도 아니고 그런 걸 은근히 수줍어 하지만 이 말만은 해주고 싶다.



“충분히 잘해왔다고”

세상살이란 게 참 만만하지가 않고, 커서 보면 무서운 것도 많기에 지금까지 온 자체도 충분히 잘한 거다. 그러니까 주저앉지 말고, 격렬하진 않아도 되니까 무기력하진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이 아깝다. 소중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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