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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빛나 Nov 23. 2019

소리를 보았다

두통이 있어요, 엄마, 거울에 내가 비치질 않아요. 첫 번째 소리가 깨졌던 날에도 같은 말을 들었다. 두 번째 소리였다. 소리가 내동댕이 쳐졌다. 나와 꼭 닮은 소리는 떨어지면서도 울상을 짓지 않았지. 높게 묶은 머리를 풀었다. 시야를 가린 머리카락 사이로 작게 조각난 소리가 보였다. 굴곡이 아름다운, 것이었다. 파동이 이는 순간을 포착한 소리. 소리의 왼쪽과 오른쪽, 밑과 위를 주웠다. 손이 닿을 때마다 꿈틀거렸다. 이건 어쩌면 나의 잘못. 나의 잘못이기 전에, 조각상이 생각을 하려 든 소리의 잘못. 소리는 더 이상 두통을 가질 수 없다. 거울에 비치는 자신을 가질 수도 없다. 소리를 볼 수 없다.



 첫 번째 소리는 전시 도중 죽었다. 체다 치즈와 방울토마토가 올려진 카나페를 먹고 있을 때였다. 엄마, 하는 소리를 들었다. 아니, 봤다고 하는 게 맞겠지. 입에 서둘러 카나페를 욱여넣고 벌떼처럼 기다리는 꽃다발을 하나둘씩 받아들었다. 소리는 자꾸만 날 불렀다. 작업실에서 그렇게 당부를 했는데 말을 듣지 않았다. 첫 번째 소리는 실패였다. 꽃 냄새가 코를 찌르고 사람들의 소리가 귀를 막고 거울 앞에 손을 뻗고 있는 소리가 시선을 뺏었다. 소리에게 문제가 있다는 말을 남기고 사람들 틈에서 벗어났다. 소리의 허리에 손을 얹었다. 일정하지 않은 굴곡을 쓰다듬으면 소리를 만질 수 있어요. 청각의 시각과 촉각. 계획은 그랬다. 조각상에게 인격을 심어줄 생각은 없었다. 거울 속에는 두 명의 소리가 있었다. 파동으로 범벅이 된 소리와, 그저 사람인 소리. 사람인 소리는 조각상 소리의 엄마. 첫 번째 소리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조각상은 조각상으로만 남아야 했으니까. 존재를 타당하게 만드는 게 엄마의 도리였다.



 두통이 있어요, 엄마, 거울에 내가 비치질 않아요. 소리는 빠른 속도로 되뇌었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뻔뻔한 말을 반복했다. 거울에 비치지 않는 건 당연한 소리. 두통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엄마는 너한테 맞는 말만 해. 내가 언제 너한테 도움이 되지 않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니? 소리의 머리는 딱딱했다. 까만 진주가 박힌 눈 속에 내가 보였다. 그런 눈으로 바라보지 않았으면 해서 소리의 머리를 뒤집었다. 너는 어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만.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어, 넌. 처음부터 이렇게 될걸 알고 있었어. 빗자루과 쓰레받기를 집어들었다. 첫 번째 소리는 거울로 손을 뻗고 있는 포즈 때문인 것 같고. 두 번째 소리는 왤까. 왤까…. 하며 소리의 조각을 쓸어담았다. 소리의 까만 눈동자를 마주했을 때 알았지. 웃는 표정을 줘서 그렇다.



 소리는 적응을 한다. 공간과 사물들에 영향을 받는다. 소리가 잘 나아갈 수 있게 공간과 사물과 사람을 적절히 배치하는 게 도리. 나, 소리는 이미 조각상들이 인격을 가지는 것에 적응을 한 지 오래였다. 처음 조각상과 얘기를 한 것은 초등학생 때였다. 엄마의 손을 꼭 잡고 물비린내가 디퓨저 향처럼 퍼져 있는 미술 학원에 갔을 때. 머리가 곱실한 두상 조각상이 여기 있고 싶지 않다고 속삭였고, 나는 (엄마의 말로는 그림을 잘 그리게 생겼다는) 두 손으로 조각상을 크레파스와 물감으로 떡져 있는 바닥에 내던졌다. 엄마는 연신 허리를 숙이며 죄송하다 했고, 모두가 보는 앞에서 나에게 큰 소리를, 질렀지. 너는 어쩜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짓만. 태어났을 때부터 그랬어, 넌. 엄마 고생만 시켰어. 소리는 적응을 한다. 엄마의 소리에 적응을 했다. 나는, 말도 안 되는 짓만 하는 소리. 지금까지의 소리들은 모두 실패했으니 세 번째 소리를 만들기로 한다.

 뼈대를 만들고 신문지로 형태를 잡았다. 큰 근육 덩어리와 작은 근육 덩어리를 나눠 진흙을 붙였다. 태교가 중요하지. 유투브에서 클래식 모음집을 재생했다. 듣는 게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했다. 나, 소리가 엄마 뱃속에 있었을 때는 아마 다양한 욕설을 들었을 텐데. 우는 소리도 간간이 듣고, 자책의 말도, 생겨나지도 않은 심장을 붙잡고 가만 들었을 텐데. 그런 태교의 영향을 받아서 나, 소리가 됐다는 거야. 나는 적어도 울거나 욕은 안 하잖아. 세 번째 소리가 대략적으로 완성되었다. 섞고, 깎아 나가며 소리를 단단하고 자세하게 만들 차례이다. 이제 질감을 추가할 거야. 둥근 조각칼로 너를 깎아내거나, 날카로운 칼로 민감한 부분을 살려낼 거야. 소리를 말렸다. 세 번째 소리는 눈을 감고, 두 팔로 어깨를 감싸고 있었다. 이렇게 얌전한 소리는 성공할 수 있을까. 입도 앙 다물고 있으니까, 완벽한 성공이 될 수 있을까. 엄마는 모르겠어.



 소리가 잘 나아갈 수 있게 공간과 사물과 사람을 적절히 배치하는 게 도리. 지금까지의 소리들은 그렇지 못했으니까, 세 번째 소리만큼은 잘 퍼져나갈 수 있게 머리를 써야 했다. 천장에 커다란 거울을 붙이자. 세 번째 소리는 정자세로 눕혀 두자. 소리에게 위협이 되는 것들은 모두 창고로 치워 버렸다. 고통을 느꼈을 조각칼과 같은 것들. 조각상이 조각상으로만 남으려면, 이렇게 소리를 사람 취급하면 안 되는데. 그러나 그것은 소리의 몫. 소리가 짊어져야 하는 무게. 엄마의 몫이 아니지. 가만히 누워 있는 소리의 옆에 모로 누웠다. 곁눈질을 해 천장에 붙어 있는 거울을 보았다. 정적이 흐른다. 지금까지의 소리는 아무 말 없이 얌전히 살지 않아서 실패한 걸까. 엄마가 죽고 나서야 말을 잘 들을래? 내가 널 어떻게 하면 좋겠니. 그 말에 고개만 젓던 소리들. 팔을 뻗어 조각상의 어깨를 쓰다듬었다. 나는 과연, 나를 어쩌면 좋을까. 나는 고개를 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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