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빛나 Jun 03. 2016

365 장마 moment

네가 한 모든 포장들을 나는 이해할 수 있다
미안, 늦잠을 자 버렸어-
하고 어젯밤 긴밀히 한 약속에 세 시간을 늦어도 괜찮다
너를 기다리는 사이에, 너를 생각하는 사이에 내가 뱉었던 숨이 온 하늘을 꽉 채워 가만히 눈을 감으면 어디선가 네 목소리와 발자국 소리가 들린다 누군가가 남겼던 흔적을 밟는 것이 아니라 온통 새하얀 곳만 밟느라 네가 걸을 때는 기분 좋은 겨울 소리가 났다
하긴, 너라는 사람은 늘 그랬다 흔적을 녹일까 봐 공간마저 사랑해 버리는 사람 한참을 걷다가 어디선가 멈춰 선다 스피커가 끊겼다 또다른 기억들을 엎었다
이 꽃 이름은 뭐예요?
꽃을 사나 보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꽃은 동백인데

그리고 다시 뽀득, 뽀득하는 기억이 뭉개지는 소리
칠십 번의 발자국이다 이로 보아 네가 나에게 도착하기까지 딱 오십 번 하고도 일곱 번 남았다 무엇을 하며 오길래 그렇게 늦는 거니 무한의 시간이었다 손목시계가 고장 났나 보다 우리의 시공간이 아니라 나의 시공간이었던 것일까

언제 도착했어? 오늘은 달이 참 예쁘네, 노란 게 꼭 x 같아
뭐였더라 x가 뭐였더라 대답 없는 창문을 바라보고 한참을 물었다 뭐였어? x가 뭐였어? x를 존재하게 만드는 소모적 y

꽃은 어딨는 거야, 하고 물어도 너는 대답이 없다 그의 손에는 허연 공기 뿐이었다 생각해 보니 너는 늘 같은 옷을 입고 있었다 내가 이 옷을 좋아한다고 그랬었던가- 하고 곰곰히 생각해 보았지만 종착지는 아니었다 그렇다면 너는

네가 그리워, 하고 안아 버렸다 시간이 지나자 풀썩 안겨 버리는 나의 어깨 슬며시 눈을 감았다 사랑한다 고했다 어디선가 뭉개지는 사랑 소리가 들렸다

아, 달콤한 꿈이었다 추적추적 내리는 빗속에서 깨어나는 나의 황홀이란

작가의 이전글 평화의 대상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