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와 학생이 동등하다'는 허상 (1)'교사와 학생이 동등하다'는 허상 (1)'교사와 학생이 동등하다'는 허상 (1)
4월 2일 중학교 3학년 수업 시간, 학생이 교과서를 던지며 욕을 했다. 교실은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나는 침묵 끝에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라고 했지?"
학생은 한층 더 커다란 목소리로, 또박또박 욕설을 반복했다. 질문과 대답이 이어질수록 수렁에 빠졌다. 길고 긴 실랑이가 이어졌다. 마무리를 짓기 위해 "끝나고 교무실로 오세요."라고 말하자 냉큼 "싫어요."라는 답이 날아왔다.
화가 나서 손이 떨렸다. 이 상황을 지켜보는 수십 개의 눈동자가 내게 꽂혔다. 모두가 앉아있고 나 혼자 서 있는 이 구조에 압박감이 몰려왔다. 별별 생각이 엉키고 엉키다 새카매지는 와중에 '태연하자. 울면 끝이야.'라고 되뇌었다. 터져나오는 감정을 꾹꾹 눌렀다.
아직 수업을 시작한 지 10분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맥락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자세한 상황은 적지 않겠다. 당시 나는 그 학생과 나의 발언을 천천히 차례대로 메모했다. 그리고 준비한 수업을 끝까지 마무리했다. 그 학생은 내내 엎드려있었고, 나는 의식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자주 입술을 깨물었다.
종소리가 울리고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교실문도 나서기 전에 학생 몇몇이 몰려와선 나를 안았다. 그새 쓴 응원의 쪽지들이 내 손에 쥐어졌다. '선생님, 힘내세요', '선생님 사랑해요'와 같은 글씨들 앞에서 더욱 서러워졌다. 간신히 웃음짓고 교무실로 돌아와 자리에 앉았다. 그제야 굳은 몸을 느끼며 눈을 감았다. 심호흡을 한 뒤 새 문서를 열어 경위서를 작성했고 학생부장님께 교권위를 열고 싶다고 말씀드렸다. 그 아이를 대할 땐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게 과연 옳은 건지, 내가 받은 상처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도무지 마음 정리가 되지 않는데 다음날 또 그 반 학생들 앞에 서야 했다.
교권위를 열겠다고 해놓곤 교권위가 무엇의 약자인지도 몰라서 퇴근 후에야 관련 규정을 찾아보았다. '학교교권보호위원회는 교원의 교육 활동 보호에 관한 사항을 심의·자문하는 기능을 한다'라고 쓰여 있었다. 절차는 빼곡했다.
다음 날 출근해선 그냥 넘어가자고 변덕을 부렸다. 우리 학교는 신설 학교라 교권위가 조직되어 있지 않다. 즉, 내가 스타트를 끊으면 새롭게 추가되는 일이 많아지며, 안 그래도 한 명이 감당하는 업무가 비정상적으로 많은데 교권위까지 열어야 하는 게 죄송했다.
마주 앉은 학생부장님께선 나의 생각을 차근차근 들어주셨다. 다쳤을 때 바로 치료하지 않으면 상처가 깊게 남는다고, 교권보호위원회를 열어야 한다고, 업무량은 내가 걱정할 게 아니라고 강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그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선 내 책상에 커피 우유를 두고 가셨다. 다른 선생님께선 상담을 알아봐 주시기도 했다. 별일 없는 척 밥을 사주신 분도 있다. 움츠러든 나보다 더욱 화를 내주시기도 했다.
결국 교권위를 열기로 했다. 이처럼 좋은 선생님들이 곁에 계셨기에 분노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다.
치솟는 분노 다음에 가장 먼저 휘몰아치는 감정은 부끄러움이다.
애초에 내가 잘못한 게 아닐까? 다르게 대응할 수 있지 않았을까? 나라서 만만했을까? 다른 선생님이라면 어땠을까? 그날의 대화를 끊임없이 복기하고 스스로의 미숙함을 자책했다.
작년에 비슷한 사례로 교권위를 열었다는 선생님께는 좀 더 솔직할 수 있었다.
"사과를 받아주기 싫어요."
아이가 사과를 구하면 어른은 용서를 해야 하며, 심지어 "사과하러 와줘서 고맙다"라고 말하는 게 어른스러운 어른이라는 사실이 너무 싫었다. 나도 상처를 받았다고, 나도 싫은 사람은 싫다고 펑펑 울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내뱉고 나면 또 부끄러움이 몰려왔다. 어른스러운 어른이지 못한 내가 부끄러웠다.
학생이 수업 중에 욕을 하는 것도, 대화중에 침을 뱉는 것도, 그러면서 "쌤한테 뱉은 거 아닌데요? 감기 걸린 건데요? 라고 태연스럽게 말하는 것도 교직 생활을 하다 보면 흔히 겪는다고 하셨다. 경고를 하고 넘어가거나 무시한다고들 하셨다. 나는 그럴 수가 없었다. 없었던 셈 칠 수가 없었다.
그 학생은 사과를 하러 왔다. 학생부장님이 타일렀을 것으로 짐작했다. 나는 애써 미소 지으며 "알겠어."라고 말했다. 도저히 다른 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 학생은 그다음부터 교실에서든 복도에서든 천연덕스럽게 말을 걸어왔다.
근데 나는 그게 얄미웠다. 나는 여전히 힘든데 용서받은 것처럼 마음 편해진 그 아이가 얄미웠다.
그리고 그 학생을 얄미워하는 내 마음이 더욱더 미웠다.
(2편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