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권 침해와 심리 상담 지원 사례(2)
많은 선생님들께서 "가장 힘들었던 아이가 결국 가장 애틋해지더라"라고 말씀하셨다. 난 그게 싫었다. 뻔한 화해 서사와 아름다운 마무리가 싫었다. 나에게 상처를 준 아이는 그냥 지워버리고 싶었다. 좋은 사람과 좋은 순간만 기억하고 싶었다.
그러나 한 학기를 마무리한 지금, 결국 학교교권보호위원회(교권위)에서 마주앉았던 그 아이가 정말 애틋해져 버렸다.
교권위는 방과후에 개최되었다. 피해 교원과 침해 학생 분리에 따라 내가 먼저 회의실에 들어섰다. 교감선생님부터 학생부장님과 동료 선생님, 학부모 위원이 둥글게 앉고 나는 홀로 맞은 편에 앉았다. 학부모 위원은 '학생에게 정신적 피해를 받은 상태로 다른 아이들을 가르치면, 다른 아이들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요?'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열심히 대답했다. 그게 무례한 질문이었다는 건 나중에야 깨달았다.
회의실을 나서자 대기하던 그 학생과 마주쳤다. 짧은 순간이었다. 학생은 반사적으로 꾸벅 고개를 숙이곤 웃었다. 민망한 듯한, 어쩔 줄 모르는 웃음이었다.
나는 그 웃음을 알았다. 사과하는 방법을 몰라서 눈치껏 웃어보이는, 나도 많이 지었던 웃음이었다. 그 아이는 내가 나온 회의실로 들어갔다. 그 아이도 여러 어른이 빼곡히 앉은 곳 맞은편에 홀로 앉았을 것이다.
일주일에 네 번 들어가는 수업은 이어졌다.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교과서를 펼쳤다. 그러나 아무렇지 않은 게 아니라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라는 걸 느꼈을 것이다. 나는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어른이라고, 교사라고 감정을 모두 받아낼 수 없다는 걸, 자신의 말과 행동이 분명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는 거라는 걸 티냈다.
고요하게 책을 읽는 도서관활용수업이 취소된 날, "자, 수업합시다!"라는 나의 말에 공부하기 싫은 아이들은 "도서관 가고 싶어요!"라고 아우성이었다. 그 아이는 대뜸 "나는 국어 수업하는 게 좋은데?"라고 말했다.
갑자기 손을 들고 발표를 하기 시작했다.
엉뚱한 페이지였지만 나의 판서를 삐뚤빼뚤 따라 적었다.
학기말 성적을 확인하곤 머쓱한 듯 다른 아이들의 점수를 기웃거리며 "쌤, 2학기 때는 제가 진짜 보여드릴게요."라고 말했다.
경계심을 풀지 않은 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두드렸다.
한 달 후쯤, 한 번 더 사과하러 와서는 민망한 듯 웃으며 "저 요즘 국어 수업 열심히 듣고 있어요."라고 말할 때 나는 하기 싫던 그 말을 해버리고 말았다.
"고마워."
진심이었다.
문제의 그날, 수업을 다시 이어가며 말했었다.
"나는 교사고 여러분은 학생이기 이전에 우리는 모두 한 명의 인간이에요. 나는 여러분을 학생으로서 존중한다기보단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요. 그리고 여러분도 나를 선생님으로 존중하기보다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존중해주었으면 좋겠어요.
자, 들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노래를 추천해줄 사람? 노래 한 곡을 듣고 수업을 계속해봅시다."
우리는 조용한 교실에서 4월에 어울리는 버스커버스커의 <벚꽃엔딩>을 들었다.
나는 학생을 '미숙한 인간'으로 보는 관점을 싫어했다. 교사와 학생은 인간 대 인간의 만남이어야 한다고 믿었다. 어른은 '성숙한 사람'이고 아이를 '미숙한 사람'으로 보는 관점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우리는 동등한 인간으로서 관계를 맺어야 했다.
역설적이게도 그러니까 학생에게 욕설을 듣는 순간 더욱 화가 났다. 한 명의 인간이 한 명의 인간에게 욕을 하는 행위를 이해할 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에게 욕을 했다면, 욕을 한 인간이 잘못했다고 생각했다. 그 후로 이어진 대화는 옳고그름을 따지는 것 같지만 실상 기싸움이었다.
그런데 어쩌면 나는 '미숙함'이라는 것 자체를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교사도 인간이고 학생도 인간인 것은 맞다. 그러나 나는 그 아이보다 두 배를 살았고, 그만한 시간을 더 경험했으며, 여러 시행착오를 통해 배워왔다. 분명 교사는 '조금 더 성숙한 인간'이고 학생은 '조금 덜 성숙한 인간'일 확률이 높다. 학생이 미숙한 것은 개인의 부족함 때문이 아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학생도 성숙해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우리는 완전히 동등하게 싸울 수 없다.
내가 어른이며 교사임에도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처럼, 학생 또한 어리며 미숙한 존재임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는 동등한 인간이지만, 동등하게 성숙한 것은 아니다. 그것을 인정하자 한창 크고 있는 아이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