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가 되어가는 여정.
처음 교육학을 공부하며 새로운 세계에 눈떴다. 온 세상 모든 학문 앞에 '교육'을 붙이면 교육학이 되었다.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교육공학, 교육행정학……. 그중에선 역시 교육심리학이 재미있었다. 나는 파릇한 아이들을 억지로 네모난 학교에 앉혀두는 의무교육이 불만이었고, 인간 심리를 활용한 교육과 동기 유발 이론은 내가 이 판에 들어서는 이유가 되어주었다. 논술 시험에선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말을 자주 인용했다.
"교육이란 양동이를 채우는 일이 아니라 마음 속의 불을 지피는 일이다."
즉, 교육이란 지식을 쏟아붓듯 채우는 게 아니라 아이가 스스로 호기심을 지니고 뻗어나가도록 의욕을 부채질해야 한다는 뜻이다. 전쟁터로 비유되는 교육 현장에서 아이들과 장미꽃을 발견하는 기쁨을 나누고 싶었다.
그러나 1년을 준비한 중등교사임용시험에서 떨어진 후, 나의 불씨야말로 찬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꺼져버렸다. 그토록 밑줄치며 암기하던 학습된 무기력에 잠식되었다. 수험서를 펼치면 잡을 만큼 잡아봤지만 기어코 헤어져버린 연인의 철지난 편지를 읽는 것처럼 먹먹해져서 읽지를 못했다. '안 될 거야'라는 생각만이 맴돌았다.
공부했던 동기 이론 중 인상 깊었던 것이 <귀인 이론>이다. 성공 또는 실패라는 결과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느냐, 즉 무엇으로 귀인하느냐에 따라 동기가 달라진다는 이론이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덕분이라고' 또는 '때문이라고' 말하는 유형은 4가지다. 첫째, 능력, 둘째, 운, 셋째, 과제 난이도, 넷째, 노력. 성공했을 때 '능력이 좋아서', '운이 좋아서', '과제가 쉬워서', '노력을 많이 해서'라고 말할 수도 있고 실패했을 때 '능력이 부족해서', '운이 나빠서', '과제가 어려워서', '노력을 안 해서'라고 여길 수도 있다.
그렇다면 가장 바람직한 귀인 유형은 무엇일까?
결과가 성공이든 실패든 가장 바람직한 귀인 유형은 노력이다. 노력만이 스스로 통제 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능력, 운, 과제 난이도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주어진 것'이지만, 노력은 내가 통제할 수 있다. 따라서 노력에 귀인하는 사람은 성공했을 때 스스로의 성취로 이뤄냈다고 여기기 때문에 성공하면 성공할수록 자존감이 높아진다. 실패한 경우에도 스스로 노력을 더 한다면 충분히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속된 실패에서 그 원인을 '능력'으로 귀인할 때 문제가 된다. 나의 능력 부족으로 실패를 하였고, 나는 어차피 부족하므로 '해도 안 된다'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안 될 것이므로 노력도 줄이게 되고, 따라서 또다시 실패를 하게 되고, 실패가 반복되며 무능력감이 학습된다.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고 한다.
학습된 무기력 상태를 벗어나려면 <자기효능감>을 올려야 한다. 자기효능감이란 '특정 과제를 일정 수준까지 수행할 수 있다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믿음'이다.
그리고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방법이 바로 <성공 경험>이다. 작더라도 자신의 노력으로 성공한 경험이 스스로의 능력에 대한 믿음을 형성하는 것이다. 그래서 계속되는 시험 실패로 무기력에 빠져 있으면 "나가서 운전면허 공부를 해 봐라"라고 말한다. 시험과 전혀 상관없더라도 어느 것이든 '성공 경험'을 쌓으면 그 경험이 바로 자기효능감을 높이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에 시달리고 있을 때, 내가 선택한 것은 한국사능력검정시험이었다. 친구에게 기출문제집을 받아 기출문제집을 풀었다. 중등임용자격시험에 지원하기 위해 필요한 건 한국사 3급이고, 나는 이미 작년에 취득한 상태였다. 그런데 굳이 필요 없는 1급을 따기 위해 시간을 썼다. 매달릴 곳이 필요하다는 듯이 간절한 마음으로 공부를 했다.
그리고 합격이었다.
교육학 선생님께서 해주신 짤막한 이야기 한 토막이 기억에 남는다.
"나에겐 딸이랑 아들이 있어. 아직 애들이 초등학생일 때, 리조트에 놀러간 적이 있어. 리조트에는 커다란 수영장이 있고 수영장 위에는 부표가 떠 있었지. 아들은 수영장에 들어가자마자 부표 위를 통통통 잘 뛰어다녔어. 그런데 운동신경이 부족한 딸은 자꾸만 넘어지고 물에 빠졌지. 그런가 보다 하고 나는 낮잠을 자고 있었는데 시간이 얼마쯤 지났을까, 딸이 아빠 아빠 하면서 소란스럽게 깨우더라구. 빨리 수영장으로 와 보래.
그래서 수영장으로 내려갔더니 딸이 부표 위를 통통통 뛰어가는 걸 보여주는 거야. 뿌듯한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라구.
사실 그렇게 대단한 일도 아니지. 저보다 동생인 애는 한 번에 성공하기도 했고. 근데 딸애는 노력을 해서 이뤄낸 거잖아. 나는 엄청 칭찬을 해 줬지.
이제 딸이 대학생이 됐는데 미국에서 법 공부를 하고 있어. 가끔 힘들다고, 때려치우고 싶다고 전화가 와. 그러면 나는 그때를 이야기해주지.
너 봐라, 어렸을 때 부표 위를 통통통 뛰어가는 것도 못했는데 결국에 해내지 않았느냐. 너는 할 수 있다.
그러면 딸애는 똑같은 레퍼토리에 '그게 뭐야'라고 하면서도 '알았어, 해볼게요 아빠'라고 말해. 이런 성공 경험의 기억이 중요한 거야."
고시 패스도 아니고, 대단한 업적을 이룬 것도 아니지만 부표 위를 통통통 뛰어가는 걸 노력해서 성공했던 기억.
그 기억을 잊지 않고 어른이 된 딸에게 말해주는 아빠. 그리고 그 이야기를 들으면 '맞아, 한 번 해 보자'라는 생각이 드는 딸. 그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다.
내가 한창 공부를 하던 작년, 어느 날 친구에게 전화가 왔고 나는 '못하겠다, 너무 어렵다' 이런 푸념들을 늘어놓았다. 친구는 "넌 할 수 있어. 넌 똑똑하잖아."라고 나를 위로했다. 틀어박혀 공부를 하면서 마음이 비뚤어진 나는 "흥, 내가 똑똑한지 아닌지 네가 어떻게 알아"라고 말했고 그 친구는 답했다.
"난 알아. 넌 똑똑해. 너 화투 짝맞추기 게임도 잘 했잖아. 기억나지?"
상 받은 일도 어디 합격한 일도 아니고 화투 짝맞추기 게임이라니.
그순간 교육학 선생님의 이야기가 겹쳐지며 "그래, 해보지 뭐"라고 말했다.
그리고 합격이었다.
끊임없이 밀려드는 무기력의 파도 속에서 우리는 성공 경험으로 살아간다. 성공이란 비단 돈이나 명예, 업적에 관한 것이 아니다. 내 삶에 나의 노력으로 무언가 이뤄본 기억이다. 그것이 사랑이든 여행이든 부표를 통통통 뛰어간 기억이든 화투 짝맞추기 게임이든.
작은 성공 경험을 기억하며, 그리고 스스로 성공 경험을 만들어나가며 오늘을 살아가길.
그리고 덧붙여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부표를 통통통 뛰어간 기억, 화투 짝맞추기 게임을 잘 했던 기억을
잊지 않고 있다가 그 사람이 힘들어할 때 적절히 말해주는 사람이 될 수 있길.
그렇게 마음 속의 불을 지피는 사람을 꿈꾸며, 공교육 교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