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학이 되면 교사는 다음 학기를 준비한다. 진도는 어느 속도로 나갈지, 시험은 무슨 단원을 낼지, 수행평가와 지필평가 비율은 어떻게 할지를 정해 평가계획서를 작성한다. 학생들이 관심 많은 수행평가 채점 기준이나 지필평가 서술형 반영 비율도 이미 학기 시작 전에 협의를 끝낸다.
나는 아직 평가계획을 4번밖에 세워보지 않은 저경력 교사지만, 한 번도 교과서 순서대로 진도를 나간 적이 없다. 학기초에는 흥미롭게 활동하며 국어라는 과목을 영업할 수 있는 단원을 배치한다. 예를 들어 1학기 마지막에 위치한 <읽기의 생활화> 단원을 3월의 제일 첫 시간에 끌어와 추천 도서를 홍보하는 독서 달력을 만들고 친구들의 생일, 좋아하는 연예인의 데뷔일을 적어 게시판에 1년 내내 붙여둔다. 시험 직전에는 무겁고 집중이 필요한 단원을 배치한다. 주로 문법 단원이 당첨된다.
그리고 작년과 올해, 중학교 2학년을 맡으며 4월에는 일부러 <공감하며 대화하기> 단원을 배치했다. 당연히 4월 16일 때문이었다.
새로운 단원을 시작하며 칠판에 커다랗게 여덟 글자를 적었다. 올해도 코로나19가 없었다면 4월 16일 국어 시간에 이 판서로 운을 뗐을 것이다.
공감이란 무엇인가
예능프로 <슈퍼맨이 돌아왔다> 영상을 튼다. 민속촌에 놀러 간 고지용과 3살배기 아들 승재가 떠들썩하게 배고프다며 우는 각설이를 만난다. 낯선 아저씨 둘이 울자 승재는 울지 말라며 같이 울어버린다. 오히려 각설이들이 당황한다. "승재도 배가 고파?"라고 묻자 "응!"이라고 답하며 울먹인다.
ⓒKBS
영상을 바라보는 나의 열다섯 살 표정에 미소가 떠오르면 놓치지 않고 묻는다.
"자기 일도 아닌데 우는 승재가 바보 같나요?"
아이들은 아니라고 답한다. "그렇다면 이 영상을 보며 무엇을 느꼈나요?" 여러 대답을 들은 후엔 "승재처럼 다른 사람의 감정을 나도 느끼는 걸 뭐라고 할까요?"라고 묻는다. 원하는 단어가 나오면 고개를 끄덕이곤 PPT 슬라이드를 넘긴다.
共(함께 공) + 感(느낄 감)
다른 사람의 감정, 의견, 주장 등에 대해 자기도 그렇게 느끼는 기분
남자와 여자 중 누가 더 공감능력이 높다고 생각하는지 묻는다. 대부분 여자에 손을 든다. 과연 여자가 공감능력이 높게 태어난 건지, 공감능력은 향상시킬 수 있는 건지 묻는다. 아이들의 대답은 제각각이다.
"이 세상에 혼자 살아갈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요?
단언컨대 어느 누구도 혼자서만 살아갈 수는 없어요. 우리는 함께 살아가요. 그리고 사회를 이루며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기본적인 능력을 배우는 곳이 학교예요.
우리가 오늘부터 배울 단원명이 뭐죠? 맞아요, <공감하며 대화하기>예요. 공감이 외모나 재능처럼 선천적이고 배울 수 없다면 교과서에 실리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는 분명, 공감을 배울 수 있어요."
우리 반에서 공감을 잘 하는 친구가 누구인지 묻는다. 그 친구의 어떤 말이나 행동 때문에 공감을 잘 한다고 느끼는지도 묻는다. 다음 시간에 배울 공감하며 대화하기의 방법 3가지인 '관심 표현하기(그렇구나)', '재진술하기(~해서 ~했구나)', '자신의 경험 공유하기(나도 ~한 적이 있어)'를 간단히 소개한다.
공감은 타고난 것이 아니라 노력이다. → 상대가 어떤 심정일지 헤아려보는 노력
여기까지 설명한 다음 시계를 흘끗 보며 마침 생각난 것처럼 "앗, 그런데 오늘 몇 월 며칠이지?"하고 묻는다. 누군가 "4월 16일이요!"라고 말하면 "4월 16일에 무슨 일이 일어났더라?"라고 묻는다. 아이들은 냉큼 "세월호요."라고 답한다. 교과서 밖의 이야기를 꺼낼 때 아이들의 목소리가 유독 더 커진다.
"그날, 몇 명이 돌아오지 못했는지 아는 사람?"
아이들은 짐작 가는 대로 숫자를 댄다. 맞추는 사람은 한 명도 없다. 나는 칠판에 숫자를 두 개 적는다.
299. 5.
일부러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뗀다.
"299명이 사체로 발견되었고, 5명은 아직도 찾지 못했어요."
선생님이 며칠 전 읽은 책이라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이 쓴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ㅡ세월호의 시간을 건너는 가족들의 육성기록 』책을 꺼낸다. 함께 읽고 싶은 부분을 노란 플래그로 곳곳에 붙여두었다.
그중에서 장례를 치른 후 아이의 흔적을 찾고 싶어 햇빛 아래 옷을 펴고 마침내 머리카락 8개를 찾아 네 개씩 나누어 코팅을 해놓았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인터뷰에서 "세영이가 친구들한테 인기 많았던 것만큼 아빠도 욕 안 먹는 아빠가 되도록 더 열심히 할게. 그러니까 아빠 꿈에 자주 나와줬으면 좋겠다."라고 답하는 아버지의 이야기를 읽는다.
광화문에서 아들 준영이 명찰을 달고 전경과 싸우는데 전경이 "어머니, 저도 준영이에요."라고 말해서 그 전경의 어머니가 시위대와 싸우는 아들을 얼마나 걱정할지 걱정했다는 이야기를 읽는다.
"놀러갔다 뒤진 걸 갖고 왜 그런 거 들고 나와서 서 있는 거야?"라고 한 소리 하는 할아버지 이야기를 읽는다.
그리고 PPT 슬라이드를 넘긴다. 노란 리본 사진과 함께 '말하지 않으면 몰라요.'라는 문장이 있다.
"선생님과 우리 민희가 마주 앉아 대화를 하고 있어요. 민희가 울고 있어요. 선생님은 속으로 우리 민희 어떡해, 슬프겠다 라고 생각하는데 팔짱 끼고 삐딱하게 앉아서 찡그리고 있어요. 그러면 그건, 공감일까요?
공감은 타고난 게 아니라 노력이라고 했죠? 마찬가지로 공감은 표현해야 알아요. 속으로 아무리 공감해도 딴 곳을 쳐다보거나 뒤돌아 서있으면 몰라요. 공감은 표현하는 거예요. 세월호 참사에서도 공감을 표현하기 위해 시민들이 무엇을 달고 다니죠?
(눈치 빠른 아이들은 화면 속 사진을 보고 금세 "노란 리본이요!"라고 외친다.)
맞아요. 노란 리본이에요. 세월이 흘렀지만 당시 유가족, 생존자, 생존자의 가족, 친구, 동료, 이웃들은 여전히 잊지 못하고 있어요. 그런데 지하철이나 길거리에서 노란 리본을 매단 사람을 보면 '저 사람은 여전히 나의 아픔에 공감하고 있구나'라고 고마운 마음이 든대요. 표현해야 알 수 있는 거예요.
여기 보세요, 오늘 선생님이 노란 리본을 가져왔어요. 노란리본공작소에서 자원봉사하는 분들이 만드신 거예요. 필수는 아니고, 혹시 필요한 친구가 있다면 오늘 수업이 끝나고 앞으로 나오세요. 하나씩 나눠줄게요."
나는 미리 신청하여 배송받은 노란리본 100여 개가 담긴 봉투를 슬쩍 들어 보인다.
ⓒ416연대
불을 끄고 캄캄한 교실에서 416공감위원회가 기획한 <사월의 노래>를 듣는다. 시민 90명이 모여 '이제 사월은 내게 옛날의 사월이 아니다. 이제 바다는 내게 지난날의 바다가 아니다'로 시작하는 가사를 합창한다. 몇몇이 울고, 나는 울지 않기 위해 입술을 깨문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좋아하는 황현산 평론가의 『밤이 선생이다』 한 구절을 같이 읽고 싶어요.
ㅡ어떤 사람에게는 눈앞의 보자기만한 시간이 현재이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조선 시대에 노비들이 당했던 고통도 현재다.
미학적이건 정치적이건 한 사람이 지닌 감수성의 질은 그 사람의 현재가 얼마나 두터우냐에 따라 가름될 것만 같다.
선생님은 여러분이 '현재가 두터운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때맞춰 종이 울리고,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오늘도 만나서 반가웠어요!"라고 인사한다. 대부분의 아이들이 교탁 앞으로 나와 손을 내민다. 조용한 아이, 장난꾸러기 아이, 쭈뼛거리는 아이, 신기한 듯 눈을 굴리는 아이, 다양한 아이들을 감지하며 내 손은 노랗게 분주하다.
그 순간, 45분 수업을 통해 나의 마음이 전해졌다고 느껴지는 그 순간 나는 정말 교사가 된 것 같다.
올해는 4월 16일에 온라인 개학식을 했다. 하루 일정이 촘촘해서 필수 전달 사항이 아닌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고심해서 만든 평가계획서도 온라인 개학이 확정되곤 완전히 뒤엎었다. 교사가 학생들을 대면하여 살피지 못하는 상황에서 교과서 진도를 뒤죽박죽 나가면 아이들이 혼란스러워할 것 같았다. 결국 1단원부터 차례대로 수업하기로 했다.
코로나19가 없는 국어 시간을 상상했더니 현재 상황이 더욱 갑갑하다. 새삼스레 일상의 소중함을 느낀다. 내가 시도하던 각종 변화들도 결국 일상이 있어야 가능함을 깨달았다. 일상이 돌아오면 더욱 반갑게 맞이해야지, 교재 연구도 열심히 해야지, 우리 애들이랑 더 재미있게 놀아야지 굳게 다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