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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Aug 17. 2023

서울역에서 울어버리다!

  수요일 저녁, 나는 서울역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그날 오후 네 시 전까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 그러나 비행기를 타야 하는 시간이 되자, 연착을 알리는 카톡이 왔고 사람들은 일어섰다가 다시 앉기를 반복했다. 와중에 출입구가 변경되어 흰 와이셔츠를 입은 회사원 무리에 끼어서 반대편 출입구까지 걸었다. 시간을 계산해 보니 연착된 시간에라도 출발하면 아슬아슬하게 대학원 수업에 도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비행기는 또 지연되었다. 나는 서서히 표정을 잃어갔다. 비행기가 출발한 것은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후였다. 나는 선선히 올라탔지만 잠이 하나도 오지 않았다. 서울에 도착하면 수업이 시작되고도 한참 지났을 터였다. 지금 가봤자 수업을 들을 수 있을지 몰랐다. 오히려 수업이 끝난 상태일 수도 있었다. 그래서 나는 되돌아가기를 선택했고, 돌아오는 길에 울어버리고 만 것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한 이유는 단순히 내가 부족해 보여서였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대학원을 선택한 이유는 명료했다. 그만큼의 시간과 돈을 투자하면 노력의 가치가 올라가지 않을까 싶어서였다. 대학원에 간다는 것만으로도 많은 격려를 받을 수 있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에는 그 선택마저 후회스럽게 다가왔다.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연착이라는 상황에 대비하지 않은 내가 원망스럽기도 했다. 나는 왜 이렇게 늘 앞뒤가 없는 걸까. 부산으로 오는 기차 안에서 습관처럼 자책했다.


  부산에 도착해 역사를 나서자 달큰한 미풍이 불었다. 하지만 그 바람마저, 시원함을 기대했지만 미적지근한 물을 마신 것처럼 아쉽게 느껴졌다. 그만둘까 생각했다. 무엇을? 빈칸에는 그 어떤 것을 넣어도 좋을 것 같은 마음이었다. 그랬던 내가, 동기와 이야기를 나눈 후 달라졌다. 다음 주 수업 날, 퀭한 눈으로 강의실에 앉아 수업이 끝나길 기다렸다. 수업이 끝나자마자 같은 수업을 듣는 동기와 지하철역으로 향했다. 그 역시 대학원에 다니는 것을 힘들어하는 사람이었다. 뚜벅뚜벅, 발을 맞춰 걸으며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대학원이 얼마나 힘든지, 내가 지금 얼마나 엉망인지, 어느 정도로 힘에 겨워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역사에 도착했을 즈음, 우리는 싱거운 인사로 헤어졌다. 들컹이는 지하철 안에 몸을 내맡기며, 저번주와 사뭇 다른 내 마음을 알아챘다. 나만 힘든 게 아니었구나. 마음이 가벼웠다. 어찌 보면 혹독하게 들릴 수 있는, '모두가 힘들다'는 메시지는, 하나의 진한 위로로 다가왔다. 아마 역 앞에서 헤어진 그도 똑같이 느꼈으리라. 우리가 힘듦을 나눔으로써 역설적으로 힘듦이 덜어지는 효과가 있었다. 심리학에서는 익숙한 개념이기도 한, '보편성'이었다. 나는 그날 저녁, 서울역에서 울지 않을 수 있었다. 예산 초과인 것을 알면서도 콜라를 사 마셨다. 이게 다 힘듦을 나누어준 동기 덕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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