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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완이 Aug 27. 2023

381km를 뚫은 학구열

매거진의 시작이 되는 글

  시곗바늘이 세 시 정각에 가까워 오면 조급해진다. 흘깃거리며 시간을 살피다가, 58분이 되면 창문을 닫고 화분에 분무를 한다. 안쪽의 개인상담실에 홀로 켜진 선풍기를 끄고 소등한다. 마지막으로 빼먹은 것은 없는지 공간을 죽 훑는다. 인적이 느껴지지 않는 상담실을 뒤로하고 미리 시동을 걸어놓은 차에 몸을 던진다.

  김해공항을 목적지로 설정하고 아슬아슬하게 차를 몬다. 속도위반 단속이 없을 때는 슬쩍 액셀을 밟기도 한다. 깜빡이를 켜지 않고 훽 들어오는 차를 보며 욕을 곱씹는다. 금호지하차도에서 고가도로를 타면 공항까지는 금방이다. 브레이크를 깊게 밟아 주차를 마무리하고 뛴다. 입국심사 전 비행기 티켓을 끊고, 급하게 반을 접어 호주머니에 찔러 넣는다. 네 시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서둘러야 한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이렇게 서울에 간다. 대학원에 가기 위해서다. 이런 얘길 하면 백이면 백, 무슨 대학원을 간다고 서울과 부산을 종횡하느냐 묻는다. 나는 대답한다.

  그러게요.

  그건 나도 또렷하게 찾지 못한 답이다. 그리고 내가 찾아야 할 답이다. 다만 간명한 하나는, 내가 느끼는 부족함을 해소하기 위해 대학원에 간다는 점이다. 그것도 서울에 있는 곳에, 달에 백만 원이 넘는 교통비를 지불해 가면서. 새벽 두 시에 집에 도착하는 말도 안 되는 일정을 소화하면서.

  내 일기장에는 무수한 비행기 영수증이 붙어 있다. 요즘은 모바일로도 티켓이 잘 나오지만 일부러 끊지 않았다. 내가 대학원에 발로 뛰어서 가고 있음을 증명하기 위해선 무언가 필요했다. 그게 비행기 영수증이 된 셈이다.

  작년, 나는 부산의 한 학교에 발령받았다. 운이 좋았다. 부산에서 ‘전문상담’ 교과목을 가장 많이 뽑은 해였다. 하지만 순탄치 못했다. 내면에 가장 크고 선명하게 떠오르는 것은 부족함이었다. 육아에 대해 물어오는 학부모 앞에서, 학교에서 가장 어리고 결혼도 하지 않은 내가 감히 입을 대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아이가 왜 이럴까요 묻는 질문 앞에서는 공감밖에 하질 못했다. 그러니까요, 왜 그럴까요? 전화는 늘 침묵이 감돌았다.

  그 부족함은 배움이 필요하다는 깨달음으로 귀결되었다. 현재의 상황에서 배움을 실천할 수 있는 가장 명확한 방법은 대학원이었다.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서류를 준비했고 면접을 보며 입시를 준비했다. 내가 준비한 대학원은 여러 곳이었다. 부산에 위치한 교육대학원부터, 서울 및 광역시까지 다양했다. 가장 명망 있고 유서 깊은 곳은 C대학원이었다. 하지만 그곳은 무려 서울 서초구에 소재한 곳이었기 때문에 만약 붙는다고 해도 교통편이라는 큰 장애물을 넘고 갈 수 있을지 미지수였다. 하지만 면접을 봤고, 합격했다. 나는 망설임 없이 C대학원을 택했다. 내가 보다 성장할 수 있다면 어떤 것이라도 투자할 수 있다는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직장을 병행하며 대학원에 다니는 일은 쉽지 않았다. 세 시에 조퇴해서, 네 시 비행기를 타고 여섯 시 반에 강의실에 도착한다. 2교시의 강의를 듣고 SRT로 귀가하면 이미 다음날이 되어버린 후였다. 당연하게도 새벽은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고, 해는 정해진 시간에 밝아왔다. 수면이 부족하고 체력이 달려도 어김없이 하루를 열어야만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학원에 온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다이어리에 무수히 붙어 있는 비행기 티켓처럼, 쌓여있는 마일리지도 꽤나 쏠쏠하다. 대학원에서 만난 수많은 사람들도 내가 그곳에 가지 않았더라면 이어지지 않았을 인연이다. 무엇보다도 내가 배움의 과정에 있다는 충만함이 내면에 단단하게 자리 잡고 있다. 부족한 위치이고, 부족하더라도 그것을 채우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는 것은 내게 자부심을 가져다준다. 그렇기에, 381km를 뚫는 대학원행이 후회스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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