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나를 부른다

by minus

지금은 6살이 된 내 아이가 생후 몇 개월도 안된 아기였을 때는 언제나 울면서 우리를 불렀다. 어떤 이유로 울다가 아내가 아이를 안고 아이를 바라보며 달래주면 아이는 조금씩 진정됐다. (서운하게도 내 얼굴은 잘 통하하는 법이 없었다.) 아이는 대부분 불편을 느끼거나 배가 고플 때 울음을 터트렸다. 말을 할 수 없어 울음으로 우리를 부른 것이다. 그렇게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면 우리는 마치 소방관처럼 재빠르게 움직여 신속하게 현장을 처리해 주었다. 우리가 몸을 부지런히 움직인 건 짜증이 가득 찬 아이를 위한 것과 동시에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했다. 일을 빨리 처리하지 않으면 아이 울음소리가 계속해서 우리 귀를 때려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울음이 새벽 도중 터졌을 때는 아이를 다시 재우고 얼른 눈을 붙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불편함이 사라진 아기는 울음을 그치고 잠시 무표정을 유지하다 이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아기의 사랑스러운 미소는 우리가 그 아이의 불편함을 잘 접수하고 만족스럽게 해결해 주었다는 의미로 내리는 상장과 같다. 새벽 한 밤 중에 일어나 우는 아이를 달래는 고단함에도 그 미소, 다시 새근거리는 숨소리와 함께 잠든 얼굴을 보면 아내와 나는 서로를 보며 웃을 수 있었다. 행복함과 하늘에 대한 감사함으로 피곤함을 씻어냈다. 꽤나 불공정해 보이는 거래처럼 보이지만 말 그대로 아이는 그 미소 하나만으로 우리에게 모든 보상을 내릴 수 있었다.


내 아이가 나를 아빠라고 처음으로 불렀을 때가 언제였을까.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말 의미 깊은 순간이었을 텐데. 아마도 아이의 발음이 정확하지 않아 나를 아빠라고 부른 건지 아닌 건지 확신이 서지 않다가 뒤늦게 조금씩 나를 아빠라고 부르는 거구나 알아차려서였을지도 모른다. 이제 6살이 된 내 아이는 울면서 나를 부르지 않고 정확하게 '아빠'라고 나를 부른다. 당연한 것이겠지만 나는 아이가 나를 부르는 게 좋다. 아이가 날 필요로 한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다. 그 부름이 나의 자존감을 높여준다. 내게 가장 소중한 존재가 나를 필요로 한다. 이제 아이는 그 미소를 보이지 않을 때에도, 때로는 무거운 책임감이 느껴지고 새삼스레 나를 뭉클하게 만드는 그 부름만으로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동시에 내 아이가 있는 이 세상에서, 나는 필요한 존재임을 느낌을 얻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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