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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May 25. 2021

기형도- 엄마 걱정

시인 기형도는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지금의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상당한 수재로 중.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 방위로 군 복무를 하고 중앙일보 정치부와 문화부에 근무하던 중 1989년 3월 7일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새벽에 소주 한 병을 쥔 채 뇌졸중으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비운의 시인이다.

오늘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엄마 걱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엄마 걱정

                                                   -기형도


                    열무 삼십 단을 이고

                    시장에 간 우리 엄마

                    안 오시네, 해는 시든 지 오래

                    나는 찬밥처럼 방에 담겨

                    아무리 천천히 숙제를 해도

                    엄마 안 오시네, 배추잎 같은 발소리 타박타박

                    안 들리네, 어둡고 무서워

                    금 간 창 틈으로 고요히 빗소리

                    빈방에 혼자 엎드려 훌쩍거리던


                   아주 먼 옛날

                   지금도 내 눈시울을 뜨겁게 하는

                   그 시절, 내 유년의 윗목

                           

                      기형도 유고 시집 <입속의 검은 잎>, 1991년 中



기형도 시인의 아버지는 원래 황해도 출신인데 6.25 때 월남하여 인천에 자리 잡았고 기형도 시인이 유년시절 지금의 광명시로 이사했다고 한다. 부지런한 아버지 덕에 유복하였으나 그가 10살 때인 196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히려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가 되고 그 후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으며 그가 16세 때는 두 살 위의 누이가 사고로 요절했다고 한다.

시인 기형도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점을 염려하여 아버지처럼 어느 날 쓰러져 요절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하며 실제 그의 죽음은 그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그의 시의 기저에는 죽음의 공포에서 오는 불안과 유년 시절의 가난에 대한 기억 그리고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좌절 등으로 무척이나 어두운 색채를 지니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어린 기형도에게 기댈 수 있는 어른은 어머니뿐이었을 것이다.

북에 고향을 두고 내려와 몸 하나 의지하여 가족을 간수하였던 아버지 그러나 가족을 뒤로하고 시인이 10살 되던 해 저세상으로 홀연 떠나고 만다. 어린 기형도에게 남은 건 어머니인데 그런 어머니는 가족의 생계를 위해 열무 삼십 단을 머리에 이고 나갔는데 해가 저문 지 꾀나 되었음에도 돌아오는 인기척조차 없다.

어린 기형도는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어머니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만약 생긴다면 아직 어린 자신의 삶은 어떻게 되는 건가? 

해는 져서 어두워져 가는데 비는 내리고 불안한 어린 기형도는 이내 눈물이 흐른다.

시간이 지나 이제 어른이 된 자신이 생각해 봐도 그 시절의 자신은 측은하다 못해 뼈에 사무칠 듯한 안타까움에 서러워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흐른다.

생각해 보건대 자신의 무의식 깊은 곳의 주인은 불안감과 그에 길들어진 슬픔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만다.

사실 이 시에서 엄마 걱정이라고 하지만 늘 불안했던 자신의 삶을 자조하는 시이다.

대부분의 포유동물의 삶을 100으로 봤을 때 부모에 의존하는 삶은 길어야 10 정도라고 한다.

그런데 유독 인간은 기본적으로 30 이상이요 극단적으로는 평생을 누군가에 기대에 사는 이들도 부지기수이다. 10대 어린 시절 의존할 대상의 부재에 대한 불안은 어느 정도 모두가 느낄 감정이지만 시인 기형도는 남다른 감수성을 지닌 아이로서 더욱이 갑작스러운 아버지의 죽음을 경험한 그는 남들과 비교할 수 없는 큰 불안에 눈물 마를 날이 없었으며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그런 날들을 떠올리면 측은해지는 자신에 또 눈물을 흘린다.

그렇게 당시 명문 대학을 졸업하고 남부럽지 않은 직장인 중앙일보 기자였던 기형도는 그런 스펙과는 달리 무의식의 기저에 자리 잡은 불안과 슬픔 그리고 좌절에 휩싸여 우울한 날들을 보냈다.

이 시는 그런 그의 삶을 가장 잘 표현한 시로 여겨진다.

서글픈 불안과 슬픔이 깊게 스며있는 시(詩) 기형도 시인의 '엄마 걱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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