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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가적일상추구 May 18. 2021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시인 기형도는 1960년 2월 16일 경기도 옹진군 연평리 지금의 인천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상당한 수재로 중. 고교를 수석으로 졸업하고 연세대학교에 입학 방위로 군 복무를 하고 중앙일보 정치부와 문화부에 근무하던 중 1989년 3월 7일 종로의 파고다 극장에서 새벽에 소주 한 병을 쥔 채 뇌졸중으로 사망한 상태로 발견된 비운의 시인이다.

오늘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인  '질투는 나의 힘'을 살펴보고자 한다.


                                         질투는 나의 힘

                                                                   -기형도


                             아주 오랜 세월이 흐른 뒤에

                        힘없는 책갈피는 이 종이를 떨어뜨리리

                      그때 내 마음은 너무나 많은 공장을 세웠으니

                      어리석게도 그토록 기록할 것이 많았구나

                            구름 밑을 천천히 쏘다니는 개처럼

                          지칠 줄 모르고 공중에서 머뭇거렸구나

                                   나 가진 것 탄식밖에 없어

                      저녁거리마다 물끄러미 청춘을 세워두고

                           살아온 날들을 신기하게 세어보았으니

                             그 누구도 나를 두려워하지 않았으니

                               내 희망의 내용은 질투뿐이었구나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마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유고 시집 <입속의 검은 잎>, 1991년 中


기형도 시인의 아버지는 원래 황해도 출신인데 6.25 때 월남하여 인천에 자리 잡았고 기형도 시인이 유년시절 지금의 광명시로 이사했다고 한다. 부지런한 아버지 덕에 유복하였으나 그가 10살 때인 1969년 뇌졸중으로 쓰러져 오히려 가족의 보살핌을 받는 처지가 되고 그 후 어머니가 가족을 부양하며 가세가 기울기 시작했으며 그가 16세 때는 두 살 위의 누이가 사고로 요절했다고 한다.

시인 기형도는 자신의 건강이 좋지 않았던 점을 염려하여 아버지처럼 어느 날 쓰러져 요절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다고 하며 실제 그의 죽음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연유로 그의 시의 기저에는 죽음 공포에서 오는 불안과 가난 그리고 암울한 시대적 상황에서 오는 좌절 등으로 무척이나 어두운 색채를 가지고 있어 난해함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이 시 '질투는 나의 힘'도 기본적으로 어둡다.

어두운 정도가 아니라 이 정도면 염세주의적이라는 표현이 맞을 듯싶다.

다분히 염세주의적이며 허무주의적인 관점에서 젊은 날을 바라보는 그 관점 그것이 기형도 시인이 청년 문학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남게 된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만 서른을 못 넘긴 나이, 극장에서 소주 한 병을 쥔 채 맞이한 죽음, 불안과 공포가 서린 시, 신춘문예 당선 후 단 한 번도 출간하지 못한 이력 등등이 지금도 기형도 시인하면 진정한 어른이 되기 전에 거쳐야 하는 청춘의 통과의례의 이미지로 남아있다. 마치 왕가위 감독의 영화에 나오는 쓸쓸한 모습의 양조위처럼 우리에게 각인되어 있는 하나의 표상이 된 사람이 기형도 시인이다.

지금도 어둠이 내린 홍콩 거리 어딘가에 치진 모습으로 기형도 시인이 자리 잡고 창작의 고뇌를 느끼고 있을 것 같다.

시는 미래의 어느 시점에서 바라본 젊은 날이 나의 희망이나 꿈을 위해 산 것이 아니라 타인의 욕망 속에서 개처럼 쏘다니는 꼴이었다고 자책을 하는 시이다.

이쯤 되면 두 가지가 생각나는데 하나는 노자(老子)의 도덕경(道德經) 제12장에 나오는 거피취차(去彼取此)라 하여 '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한다'라는 명언과 다른 한 가지는 칼 융이 분석심리학에서 주장한 페르소나 이론으로 자아 그 자체가 아니라 타인이 생각하는 나의 개념인 사회적 자아- 페르소나 이론이 생각난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 호모 사피엔스 쪽은 무리를 지어 살아간다. 그것이 연약한 우리 인간이 지구의 지배자가 된 가장 큰 이유라고 한다. 모여사는 우리에겐 동물 무리에 우두머리가 되고 싶어 하는 수컷처럼 그 무리에서 뛰어난 무엇이기를 갈망한다. 인간이면 거의 모두가 본성적으로 주어진 특성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칼 융이 지적한 대로 자기 자신인 자아보다 사회적 자아인 페르소나에 신경을 쓰며 가면을 쓰고 살아가며 상처 받는다.- 그러기에 우리는 남들보다 뛰어난 무엇이기를 간절히 원한다.


'질투는 나의 힘'의 화자 역시 너무나 많은 공장을 지우며 타인들이 자신을 두려워할 무언가를 위해 지칠 줄 모르고 헤매었으나 그 진실은 그러한 마음이 변질된 나만의 질투였음을 깨닫는다.

그렇게 유한한 시간을 끝나면 죽음에 임박하면 누구나 후회하게 된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이것을 위해 살아야 했음에도 타인의 욕망인 저것만을 위해 모든 시간을 허비했음을 통탄하게 될 것이다.


한마디로 프랑스 철학자 자크 라캉이 이야기했듯이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다' 허무하게 끝나버린 삶이었다는 것을 뼈저리게 후회하게 된다는 것이다.

1980년대 암울한 시대상에 기대어 암울한 젊은 날의 초상화를 그린 기형도 시인.

현대인의 정서를 누구보다 정확하게 파헤친 시 '질투는 나의 힘'.

오늘 이 시를 읽으며 먼 후일 타인에 대한 질투가 아닌 나의 자아와 삶을 위해 아낌없이 살아갈 나를 생각해 보며 다시금 기형도 시인의 말들을 헤아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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