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택근무로 인한 집의 변화, 이제는 주거 경험(HX)이 중요한 시대
# 이 글은, 코로나가 터지고 2020년 연말에 네이버 블로그에 적었던 글을 브런치로 옮긴 것입니다.
# 이제 막 글을 쓰기 시작한 시점에 적었던 글이라 조금은 부끄럽습니다.
# 시간이 조금 지난만큼, 현재의 상황과 글의 내용이 다소 다를 수 있습니다.
세상은 참 빨리 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는 때때로 우리들의 인식에도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만들고 있습니다.
현대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기술과 혁신, 그리고 세계화라는 단어가 널리 사용되면서, 우리의 삶은 정말 혁명적으로 변화 해왔습니다. 또한 그중에 일어난 예상치 못한 사건들도 우리 생활 속의 영향을 미쳤는데요.
작년 말부터 창궐한 COVID-19로 인해, 6.25 이후 70년간 앞만 보고 달려왔던 한국사회는 잠시 숨 고르기에 들어갔습니다. 학생들은 온라인 수업을 듣고, 기업들은 재택근무를 시작했습니다. 또한 다양한 산업의 비대면 서비스가 도입되는 등, 이른바 「코로나와 함께하는 삶」을 조금씩 준비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그동안 당연시 여기던 것들을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게 된 것이죠.
실제로 지난 5월, 롯데그룹에서는 ‘코로나 19 전과 후(BC and AC)’라는 사내 임직원 교육용 서적을 제작, 배포했습니다. 대기업에서도 코로나 이후에 많은 부분에서 이루어질 변화들을 대응하기 위한 매뉴얼을 제작해 노력하고 있는 것입니다. 약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을 거치며 영국이 몰락하고 미국이 새로운 강자로 떠올랐던 것처럼 당연하다 여겼던 모든 것들이 새로운 변화가 예상됩니다. 이를 '뉴 노멀(New-normal)'이라 합니다.
이러한 뉴 노멀은 우리의 의식주에서부터 조금씩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데요.
특히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 등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아짐으로 인해 ‘집’이라는 공간에 대한 인식이 조금씩 변화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말 중앙일보에서는, “30평대 아파트에 방 5개… 판교 2000대 1 낳은 '알파룸' 부활”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올라왔습니다. ‘30평대 아파트=방 3개’라는 공식을 과감히 깨버리고 알파룸, 베타 룸 등 주거 공간을 더욱 세분화해 ‘집’에 많은 청약률을 기록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높은 청약률을 기록했던 표면적인 이유는 코로나로 인해 잦아진 재택근무나 온라인 수업 때문일 것입니다.
공간을 나눠서 각자의 역할을 해야 하기 때문이죠. 당연한 말입니다.
하지만 오늘은 조금 다른 시선으로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최소 몇 년간 살아야 하는 집의 구조가 단순히 코로나로 인해 공간이 필요해서 변화하게 된 것일까요?
아니면 또 다른 숨겨진 이유는 없을까요?
그동안 우리에게 ‘집’은 곧 휴식의 공간이었습니다.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자연스레 ‘집’은 또 하나의 생산성을 요구받는 공간이 되었습니다. 외부에서 하던 직장생활이나 학교생활, 그 외의 활동들을 집에서 해야만 했습니다.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생산성을 발휘해야 하는 행위를 집에서 하게 된 것이죠. 그로 인해 휴식을 취해야 하는 집에서 모든 것을 해야 하다 보니, 최소한의 방어기제로서 공간을 분리하고자 하는 욕구가 나오게 된 것입니다.
잠깐 다른 이야기를 해보면, 사람들은 대부분 ‘집’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역할이 다릅니다. 역할이 다르기 때문이죠. 그리고 그 역할은 시간과 공간에 따라 다르게 발휘됩니다. 그 상황마다 맞는 모습으로 변화하여 가장 효율적인 모습으로 보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역할'을 보통 '페르소나'라고 합니다. 쉽게 말하면, 나의 다른 모습들이 각각의 '페르소나'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볼까요?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들도 집에서의 모습과 직장에서의 모습, 그리고 지인들과의 모습이 다 다를 것입니다. 그 개별적인 모습들이 다 '페르소나'인 것이죠.
이 역할을 잘하기 위해서는 꼭 휴식이 필요해서, 가면을 벗고 본래의 내 모습으로 있어야 할 시간과 공간도 필요합니다. 그래야 각각의 '페르소나'가 제대로 작동을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집 안에서 온전한 휴식을 할 시간도, 공간도 존중받지 못하고 있습니다.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쌓여가는 스트레스는 어쩔 수가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코로나 19 초기에는, '뜻하지 않게' 같은 공간에 오래 있게 된 젊은 부부들을 중심으로 '코로나 베이비 붐'이 일어날 것이라 기대했지만, 실상은 코로나로 인해 가정불화와 이혼율이 올라갔다는 소식뿐이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페르소나'의 충돌을 피하고, 나의 온전한 휴식공간을 존중받고 싶어 하지만, 그 당연한 욕구가 지금은 전 세계적 전염병으로 인해 해소되기 어려운 상황인 것입니다.
여행도, 문화생활도, 레저도 모든 휴식을 위한 행동들이 강제로 제한되어 있는 지금의 시대입니다.
그러다 보니 '페르소나' 뒤에 숨어있는 나의 본모습을 존중받기 위한 욕구가 이제는 주거 공간을 쪼개는 것으로 표출되기 시작한 것입니다. 어찌 보면 주택의 형태 중에 가장 개성을 존중받지 못하는 아파트에서 말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이 그렇게 규격화되고 균일화 되어 사는 것이 옳다 여기며 살아왔지만, 최근 MZ세대를 중심으로 기존의 틀을 거부하고 본인만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지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런 욕구들을 가장 사적 공간인 집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니즈가 있었고, 아파트 시공사는 그것을 충족시키기 위해 조금씩 변화된 구조의 아파트를 건설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집 안에서 이제는 업무에 필요한 요소였던 ‘효율성’과, 가족 구성원의 휴식과 취미생활이 보장되는 ‘개별성’이 집 안에 동시에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이 중에 주택의 개별성을 강화하기 위한 기업의 시도는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맥주는 사서 마시는 것이라는 인식에서 벗어나, 직접 맥주를 만들어 마시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홈 브루잉(Home Brewing)'을 내세우며 LG에서는 수제 맥주 제조기를 출시하기도 했죠.
하지만, 이는 취미나 생활의 영역에 국한됐었습니다. 어디까지나 체험의 측면이었습니다. 그러나 코로나로 인해 세상이 느리고 또 다르게 변화하고 있는 지금, 사람들은 ‘집’의 역할을 극적으로 확장 켜야만 했습니다. 기존에 집에서 하던 역할이 아닌 또 다른 역할들을 집에서 할 수 있도록 만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주거 가치관의 파괴’가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2021년 현재, 한국에서는 IT기업을 필두로 재택근무가 불가능하다 여겼던 많은 산업군들이 코로나 19를 계기로 재택근무가 가능한 환경이 조성되었습니다. 업무효율이 떨어질 것이라는 기존 우려와는 달리, 업무효율이 증가했다는 고용노동부의 조사 결과는 이를 반증합니다.
또한 모든 산업에서의 비대면 서비스 강화로 인해, 집에서의 UX(사용자 경험)와 CX(소비자 경험) 강화를 위한 다양한 서비스와 설루션이 마련됐습니다. 코로나 이전에는 쉽게 시도할 수 없었던 것을 사회와 기업에서 시도하고 있고, 이제는 우리의 삶 속에서도 조금씩 정착하고 있습니다.
반강제적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새롭게 경험 한 ‘집’에서의 경험으로 인해 이제는 더 이상 집을 휴식의 공간만으로 생각하지 않을 것입니다. 다양한 경험과 욕구를 채워 줄 일종의 ‘종합공간’으로 변화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집의 인식 변화는, 이른바 HX(주택 경험)을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점점 더 다양한 구조의 주택이 만들어지게 될 것입니다. 위에서 이미 언급했다시피, 다양한 개성과 경험을 존중하고 인정하는 사회 인식의 변화에 따라, 앞으로 주거환경에도 혁신적인 변화들을 요구하는 다양한 형태의 주택 형태들이 등장할 것으로 기대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