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릭터 뒤에 사람 있어요!
지난 4월 13일과 14일 양일 간 버추얼 아이돌 ‘플레이브(PLAVE)’가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남성 버추얼 아이돌 최초로 단독 콘서트를 개최했습니다. 비록 버추얼 아이돌이지만 음원이나 음반 성적은 유명 기획사의 보이그룹 못지 않았습니다.
작년 3월에 발표한 첫번째 미니앨범 ‘ASTERUM’은 초동만 20만 장이 판매되기도 했고, 이번에 진행한 단독 콘서트 역시 선예매 기간 티켓팅을 위한 동시 접속자가 무려 7만 명, 그리고 공연장 전석 매진을 기록하며 그 인기를 증명했죠.
물론 플레이브 이전에 여성 버추얼 아이돌인 ‘이세계아이돌(ISEGYE-IDOLL)’이 세계관 내의 타 버추얼 유튜버와 오프라인 가수들과 함께 지난 해 연합 페스티벌을 개최한 적은 있었지만 버추얼 아이돌만의 단독 콘서트는 이번이 처음이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시장에서의 버추얼 아이돌의 단독 공연 성공으로 그들의 시장성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언론의 많은 주목을 받았습니다.
한편 4월 콘서트에 앞서 3월에는 데뷔 1주년을 맞아 한국의 대표 복합문화쇼핑몰인 ‘The Hyundai Seoul’에서 플레이브의 팝업스토어(짧은 기간만 운영하는 임시 매장)가 열려 2주간 일 평균 5천 명에 달하는 방문객이 찾아 문전성시를 이뤘습니다. 쇼핑몰 관계자는 언론보도를 통해 플레이브, 이세계아이돌, 스텔라이브 팝업 기간동안 70억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고 밝히기도 했죠.
물론 매출에 비해 아직 많은 한국 대중들에게는 버추얼 아이돌의 인식은 마이너한 문화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특히 게임이나 애니메이션 캐릭터의 한 종류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최근 들어 언론 노출과 음악 스트리밍 Top 100에 등장하며 조금씩 가수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플레이브에 대한 인기는 개인의 취향을 넘어 기존 아이돌의 인기를 뛰어넘었습니다. 지난 5일 트렌드 조사기관인 ‘랭키파이(rankify)’가 발표한 4월 1주차 4세대 보이그룹 순위차트에 따르면, 플레이브는 세븐틴(SEVENTEEN)과 방탄소년단(BTS)에 이어 3위를 기록했습니다.
일본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아이돌인 스트레이키즈(Stray Kids)가 4위인 것을 생각하면 한국에서의 플레이브에 대한 인기는 생각보다 뜨겁습니다. 실제로 플레이브는 다른 보통의 아이돌처럼 콘서트 외에도 유튜브 라이브, 라디오 생방송을 비롯한 다양한 활동들을 하고 있습니다. 특히 그 인기의 중심에는 10대부터 30대의 젊은 여성들이 있습니다.
이들 중 상당수는 릴스나 쇼츠, 틱톡 등 우연히 영상에서 플레이브를 접하고 입문하게 되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어릴 적부터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젊은 세대들은 게임 캐릭터나 SNS 계정처럼 캐릭터 뒤의 가수를 궁금해 하기보다 캐릭터 또한 그 가수의 일부로 인식하고 소비하고 향유하는 문화가 자리잡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돌로서의 성장 서사, 비교적 자유로운 사생활 논란, 여성들에게 익숙한 웹툰풍의 캐릭터 등은 이들이 더 몰입하고 새로운 소비자를 유입하는데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그 결과 데뷔 초기 수백 명에 불과했던 라이브 방송 시청자가 지금은 수만 명에 이르고 있습니다.
잘 짜여진 플레이브의 설정과 세계관도 그들의 성공 요인 중 하나이겠지만, 그에 앞서 버추얼 아이돌이 실제 아이돌처럼 온·오프라인에서 활동하기 위한 여러 기술들의 혁신이 반드시 필요했습니다. 특히 캐릭터와 가수의 신체 비율 차이로 인한 간섭 문제, 실시간 모션캡쳐의 동기화 문제는 버추얼 관련 산업에서 공통적으로 겪고 있는 기술적 한계였습니다. 그동안 이런 문제점은 가수의 신체 움직임을 제한하거나, 퀄리티 저하를 감수하고 진행해왔던 부분이었습니다.
플레이브의 소속사이자 MBC의 사내벤처 1기로 출발한 버추얼 캐릭터 스타트업 ‘블래스트(VLAST)’는 영상 및 VFX 전문가와 게임 전문가들을 영입하여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이들은 특히 게임 개발에 주로 사용하는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을 기반으로 시네마틱 배경의 실시간 영상과 버추얼 라이브 영상을 동시에 제작할 수 있는 솔루션을 만들게 됩니다.
작년 10월 서울에서 진행한 ‘Unreal Fest 2023 Seoul’에서 이현우 블래스트 CTO의 발표에 따르면 모션 캡쳐의 고질적인 문제점과 실시간 라이브 환경에서의 문제점들을 극복하기 위해 캐릭터가 움직일 때 신체(오브젝트)의 충돌 회피 솔루션 자체 개발을 통해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두번째로 모션 캡쳐 과정에서 신체의 요소를 개별 마커(Marker)로 표시하는 과정에서 실제 가수는 정자세로 서 있어도 캐릭터는 오차값으로 인해 자세가 불안정하게 되는 문제를 별도의 모션 조정 기술(Reference-pose Calibration)을 개발하여 솔루션에 적용했습니다.
이외에도 가수가 버추얼 환경에서 오브젝트와 상호작용을 하는 경우에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구현하기 위한 실시간 렌더링 보정 기술 개발, 가수와 캐릭터 간 골반 너비 차이로 인해 생기는 다리와 발 부분의 동기화 오류, 간섭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정 기술 개발을 진행했습니다.
또한 격한 춤을 추는 과정에서 지면과 캐릭터의 신발 부분에서 생기는 동기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개별 신발의 밑창과 두께를 측정하고 보정하는 솔루션을 개발하기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러한 기술 혁신의 결과로 캐릭터 뒤의 플레이브 멤버들은 그동안의 버추얼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을 해결하여 어떠한 제약도 없이 온전하게 노래와 퍼포먼스에 집중하여 자신의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였습니다.
물론 모션 캡쳐의 고질적인 문제로 인해 캐릭터가 뒤틀리는 등의 문제들을 완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드웨어나 네트워크 전송 기술의 요인도 있기 때문에 당장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닙니다. 팬들 또한 캐릭터가 뒤틀리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것을 하나의 재미 요소로 인식하여 팬들이 즐기고 있다보니 그 모든 것들이 플레이브의 성공 요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플레이브의 성공은 기술 혁신도 있지만, 마케팅 또한 중요한 성공 요인 중 하나입니다. 플레이브가 기획되던 초기에는 메타버스 열풍으로 인해 너도나도 실제 사람과 비슷한 가상 환경을 만드는데 혈안이었습니다. 하지만 블래스트는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이현우 CTO의 발표의 따르면, “플레이브가 실제 사람과 닮은 버추얼 휴먼으로 만들어지게 된다면 그 타깃은 BTS, New Jeans, Stray Kids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이 경우에는 버추얼 아이돌이 BTS, New Jeans, Stray Kids와 같거나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주어야만 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들은 이미 실제 사람을 좋아하고 있기 때문에 실제 사람과 비슷한 형태의 버추얼 휴먼은 이분들에게는 이미 좋아하던 것이 오히려 더 안좋아지는 결과가 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블래스트는 오히려 불쾌한 골짜기를 기술로 극복하여 가치를 증대시키는 것보다 만화 풍의 버추얼 캐릭터를 통해 만화, 애니메이션, 웹소설과 같은 2차원의 콘텐츠가 주는 한계를 버추얼 캐릭터로 역동성을 부여해 오히려 더 많은 가치를 타깃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했고 이는 정확하게 적중했습니다.
일본의 홀로라이브나 니지산지처럼 애니메이션 풍의 캐릭터가 아닌, 한국 대중들이 더 많이 즐기는 웹툰 스타일의 그림체의 플레이브는 웹소설과 웹툰의 주요 소비계층인 10대부터 30대 여성들의 관심 끌었고, 그들이 기존에 좋아하던 콘텐츠와 결이 같은 플레이브라는 버추얼 아이돌을 시장에 안착시키는데 성공했습니다.
기획 단계에서 뿐만 아니라 마케팅 단계에서도 고민이 많았다고 CEO는 인터뷰를 통해 밝혔습니다. “부족한 마케팅 역량과 스타트업 특성 상 마케팅 예산이 제한적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에 IP 및 영상, 이미지 콘텐츠 전문 마케터 2인에게 아웃소싱을 진행했고, 이들은 최적의 마케팅 채널을 통한 광고 집행과 SEO(검색엔진 최적화) 기반 콘텐츠 제작을 통해 효율적인 마케팅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잘할 수 있는 것은 직접 하고, 못하는 것은 과감하게 아웃소싱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코어 팬들은 콘텐츠를 능동적으로 소비하고 생산한다는 점을 고려하여 과감하게 코어 팬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인 X(Twitter)에 대한 마케팅 비중을 낮추고, 틱톡과 인스타그램, 유튜브를 적극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결과 정식으로 해외진출을 하지 않았음에도 중국 웨이보에서 가상 아이돌 부문 1위에 선정되었습니다.
또한 기존 아이돌 그룹이 말 그대로 하늘에 떠 있는 ‘스타’처럼 우상과 같은 역할을 했다면, 플레이브는 오히려 친근함을 기반으로 팬들에게 접근했습니다. 평균 2시간 이상의 주 2회 라이브 방송을 통해 대중과 접할 채널이 적다는 단점을 오히려 시공간의 제약에서 벗어나 손쉽게 팬들과 소통하여 강점으로 승화시켰습니다. 이 과정에서 팬들과 아이돌 간의 유대감이 더 커지는 것은 현재 플레이브 팬덤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4월 콘서트 이후, 소속사인 블래스트 대표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콘서트는 성공적이었지만, 정산을 해보니 적자”라고 밝혔습니다. 장소 대관비는 물론 원격 라이브로 진행이 되었던 콘서트는 수십개의 오디오 채널과 실시간 모션캡쳐는 물론 사고 방지를 위한 방송망 백업 시스템 등 아직 버추얼 아이돌의 수익성은 성공 가능성에 비해 부족합니다.
이는 일본과의 버추얼 시장 규모 차이와 비즈니스 모델의 차이에서 기인합니다. 기존 버추얼 유튜버들의 경우, 캐릭터 일러스트와 웹캠만 있으면 방송이 가능한 만큼 다수의 IP를 통해 기존의 MCN(Multi Channel Network)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 갈 수 있지만, 블래스트는 높은 기술력이 오히려 MCN과 같은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는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난 22일, 블래스트는 기존 엔터계 기업인 하이브(HIVE)와 YG플러스(YG PLUS)의 투자를 유치하는데 성공했습니다. 기존의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플레이브의 행보를 주목하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입니다.
전문가들은 한국의 버추얼 아이돌 시장은 이제 막 시작 단계에 접어들었다고들 이야기합니다. 이 시장의 대표격인 그룹 중 하나인 이세계아이돌(ISEGYE-IDOLL)이 서브컬쳐 장르와 스트리머라는 정체성이 더 강하다면, 플레이브는 K-POP 장르와 가수라는 정체성이 강하기에 두 그룹이 지향하는 목표점은 전혀 다릅니다.
그래서 더욱 앞으로의 플레이브가 차원을 넘어 대중들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받을 수 있을 지, 그리고 버추얼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시장이 얼마나 더 커지게 될지 앞으로의 행보를 저도 기대하게 됩니다.
* 이 글은 일본 뉴스레터에 업로드 예정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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