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D 예산 삭감의 스노우볼이 팁스에도 굴러온다
지난 7월 18일 새벽, 한 언론의 단독 보도로 시작해 여러 기사들이 스타트업 업계에 큰 이슈를 일으켰습니다.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에서 초기 단계 스타트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인 팁스(TIPS)의 R&D 지원금이 중단되었다는 소식이었습니다.
‘살려달라’는 자극적인 제목으로 시작한 기사 내용에는 아무런 사전 예고 없이 올해 팁스 R&D 지원금이 중단되었으며, 2025년이 되어야 지급이 가능할 것이라는 중기부 관계자의 설명과 이번 이슈로 인해 스타트업들이 폐업을 고려할 만큼 유동성 위기에 처했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습니다.
민감한 주제인 만큼, 중기부는 당일 바로 해명 자료를 통해 ‘팁스 R&D 지원은 감액 없이 100% 지원되고 있으며, 2025년 예산도 정상적으로 협약에 따라 지원할 계획’이라고 밝혔습니다.
하지만 해명 자료의 내용과 기존에 언론 보도의 내용이 상반되고, 논란이 계속되자 추가 보도를 통해 정확한 사실관계 확인이 필요했습니다.
7월 24일, 한 언론은 사실관계 확인을 통해 올해 팁스 R&D 과제 지원금이 일부 기업들에게 80%만 지급되었고, 나머지 20%는 내년에 지급된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보도했습니다.
팁스는 선정된 기업에 2~3년 동안 총 5억 원의 R&D 자금을 나눠서 지급하는데, 올해는 이 금액의 일부가 지급되지 않은 것입니다. 정확히는 일부 지원금 지급이 내년으로 연기된 것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올해 받아야 할 지원금이 줄어든 것과 같습니다.
기업들은 지원금이 정상적으로 지급될 것을 예상하고 사업을 진행하기 때문에, 이런 상황은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특히 초기 단계의 기술 기반 스타트업들은 아직 시리즈 투자를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아 더욱 곤란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지원금 지급 지연이 경영에 치명적인 영향을 준다면, 그 또한 기업의 역량 부족을 드러내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이번 논란의 시작은 지난 해 8월, 33년 만에 정부에서 R&D 예산의 삭감을 발표하면서부터였습니다. 현재까지도 논란 중인 이 결정으로 인해 결국 정부 부처인 중기부 또한 약 4천억 원 가량의 R&D 예산이 삭감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중기부 프로그램인 팁스 또한 올해 초 지원금을 감액하기로 발표했다가 기업들의 격한 반발로 철회되었는데요. 그렇기에 이번 지원금 지급 지연 사태로 인해 그동안 스타트업들이 지나칠 정도로 팁스에만 의존해온 현실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동안 한국의 스타트업 육성 체계에서 팁스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습니다. 자본이 부족한 기업들은 팁스를 통해 자금을 확보하고 많은 혜택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정부 과제를 수행하고 자금 사용에 제약이 있는 등 단점도 명확했습니다.
얼마 전 업로드했던 글을 통해 최근 CES 혁신상 남발에 대한 회의적 시각을 이야기했던 것처럼, 지금의 팁스는 당장의 자금 확보를 위한 수단보다는 시리즈 투자 유치를 위한 일종의 트로피가 되어가는 것이 지금의 현실입니다. 또한 매년 팁스 선정 기업은 늘어나지만, 그 개별 기업들의 기술적 역량에 대한 의문도 같이 커지고 있습니다.
이제는 초기 스타트업들이 팁스에만 집중하기보다 다양한 글로벌 스타트업 프로그램이나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다양한 지원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살펴보고 참여하는 것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지난해 말, 한 스타트업 데이터 플랫폼의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신규 설립된 한국 스타트업 중 투자 유치 이력이 있는 기업이 총 95개였는데, 같은 해 투자 유치 후 폐업 신청을 한 기업이 146개에 달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글로벌 창업대국을 목표로 한 ‘스타트업 코리아 종합대책’을 발표한 지 채 1년도 되지 않았습니다.
이번 논란은 글로벌 유동성이 장기간 경색되면서 정부 지원금 외에는 유동성 공급 수단이 없는 스타트업들에게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에 금이 가는 이슈였습니다. 지원금 금액 규모를 떠나 정책의 신뢰도 측면에서 정부도 스타트업 지원 정책의 일관성과 안정성을 보여줘야 진정한 창업 대국으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