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제의 글을 쓰기로 생각하게 된 건 우연히 구글링을 하다 발견한 한 영상 콘텐츠 스타트업의 CEO 인터뷰 내용에서 조금은 모순적인 부분을 발견했기 때문이었습니다.
평범함이 더 빛난다며 일상 속에서의 아카이브(저장소)를 표방한다면서, 인터뷰 기사를 다 읽고 보니 그들의 지향점은 숏폼 마케팅 플랫폼이었습니다. 이용자들 중 일부를 인플루언서 그룹으로 선정해 별도의 혜택을 제공하면서도 자사 서비스가 인플루언서 마케팅 플랫폼이 될 수 있어 인플루언서의 수를 관리하고 있다는 인터뷰 내용은 많은 의문을 자아냈습니다.
숏폼 마케팅은 주로 인플루언서들과 협업하여 브랜디드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는 것이 정석입니다. 그들의 인지도를 이용한 바이럴을 통해 챌린지, 제품 홍보 등을 진행합니다. 이처럼 앞뒤가 맞지 않는 눈가리고 아웅식의 인터뷰는 조금 곤란합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인터뷰를 한 이 기업은 2년 전 프리 시리즈A 투자로만 50억 원을 유치하는 등 총 70억 원의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이었습니다.
스티브 잡스가 아이폰을 처음 세상에 내놓았을 때나 ChatGPT가 세상에 등장해서 사회 전 분야의 생산성의 증가를 가져왔을 때 우리는 ‘혁신’이라는 추상적인 개념을 조금이나마 피부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스타트업들이 이야기하는 혁신은 진짜 세상에 변화를 가져오겠다는 신념보다는 그저 스타트업을 수식하는 하나의 형용사처럼 사용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올 해 초 미국 라스베가스에서 진행되었던 세계 최대 가전박람회인 CES에서 올 해 한국 스타트업은 116개의 혁신상, 7개의 최고혁신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습니다. 하지만 한달 뒤 바르셀로나에서 진행된 MWC(Moblie World Congress)와 6월에 개최된 유럽 최대 스타트업 행사인 비바테크(Viva Tech)에서는 스타트업 중에서는 1곳을 제외하고는 수상을 하지 못하며 CES에 비해 대조적인 결과를 보여줬습니다.
수많은 기업들이 매년 CES 혁신상을 수상하지만, 정작 그들 중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조원 이상의 비상장 신생 스타트업)으로 발돋움하는 기업은 한 곳도 없습니다. 현재 유니콘 기업들도 CES 혁신상을 받지 않고 지금의 가치를 만들 수 있었습니다. 왜 이런 결과를 얻게 된걸까요.
현재 CES 혁신상에 대해 일부 언론은 VC 투자를 받거나 정부 지원 프로그램인 TIPS에 선정되어 투자를 받기 위한 목적으로 전락했다는 비판을 합니다. 글로벌 기술 트렌드에 따라 해당 분야의 스타트업을 창업하여 CES 참가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고, 다양한 스타트업 지원 프로그램을 통해 CES 수상만을 위한 준비를 한다는 것이죠. 과거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인 레드닷 어워즈(Red dot Awards)나 IF 디자인 어워즈 등을 둘러싼 ‘상 퍼주기’ 논란과 비슷한 논란입니다.
실제로 CES 혁신상을 수상한 기업들이 이후에 투자를 유치한 뒤 사무실을 늘리고 직원을 채용하며 사업을 키웠지만 사업성을 검증하지 못해 얼마 지나지 않아 폐업을 하는 사례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2019년 CES에서 세계 최초 스마트 생리컵으로 혁신상을 수상하고 TIPS에도 선정되었던 룬랩(LoonLab)이 결국 폐업을 진행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기존 시장에서의 문제점을 혁신’한다며 니치마켓에서 PMF(Product Market Fit)를 찾기 위해 노력합니다. 니치마켓을 찾아 수요를 찾는 방식은 자본이 부족하고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는 스타트업들이 창업을 시도할 때 접근하는 일반적인 방법론 중 하나였습니다.
하지만 2024년 현재 니치마켓을 공략하는 전략이 여전히 유효한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있습니다. 많은 스타트업들이 너도나도 니치마켓을 공략하다보니 틈새시장의 틈이 더 좁아지며 PMF를 찾았음에도 BEP(손익분기점)를 맞추지 못하거나, 이로 인해 추가 투자를 받지 못하는 등 요즘 같은 혹한기에 사업 지속가능성에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스타트업들이 비교적 쉽게 접근하는 앱 서비스로 예를 들어보면, 우리가 일상에서 사용하고 있는 앱 중에 매일 꾸준히 사용하는 앱과 1주일에 1번 이상 사용하는 앱의 개수를 세보아도 대부분 20개 이하, 아무리 많아도 30개가 채 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앱은 지금도 출시하고 있습니다. 다만 기존 제품의 문제점을 혁신하기는 커녕 기존 제품의 UI나 기능 일부를 개선하여 출시하거나 참신함 또는 신기함 이상의 가치를 주지 못하고 시장에서 외면받는 경우가 대부분인 것 같습니다.
지금은 이미 기존 시장에 충분히 경쟁력을 가진 스타트업들이 자리잡고 있는 상황 속에서 여전히 유사한 제품과 서비스가 시장에 출시되고 있다보니, 스타트업의 성공 가능성은 과거에 비해 더 낮아졌다고도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2024년 지금 이 시점에 혁신성을 갖고 스타트업을 성공하려면 어떤 부분을 시장에 어필해야 할까요?
첫째로 본인만의 강점이 매우 뚜렷한 서비스여야 합니다. 여행 앱인 트리플(Triple)을 예로 들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해외여행 시 그 나라의 인근 관광지 및 리뷰들을 한눈에 보고 동선이 겹치지 않게 일정을 짤 수 있어 여행 계획을 짤 때 젊은 사람들에게 필수 앱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당시 대부분의 여행 스타트업은 항공권이나 숙박 등 여행 과정 중에 필요한 상품을 판매하는 데 집중했다면, 트리플은 ‘여행을 계획하는 번거로움’에 집중했습니다.
여행 지역을 선택하면 숙소, 관광지, 맛집 등 현지 리뷰와 현지 날씨 및 가이드, 현재 그 지역에 있는 여행객 중 앱을 사용하는 이용자들과 빠르게 소통할 수 있는 라운지 기능 등 여행 계획을 짜는데 이것보다 편리한 앱이 없다고 할 정도로 평가는 올라갔습니다. 그 결과 젊은 여행객들의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내며 2020년 300억 원에 이커머스 기업인 인터파크(Interpark)에 인수되었고 현재는 업계 1위 숙박 앱 기업인 야놀자(Yanolja)에 합병되어 상장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기술 트렌드에 따라가기보다는 보다 큰 마켓을 찾아야 합니다. 저는 이전에 작성했던 글을 통해 기존의 PMF가 아닌 인구통계학적 문제나 사회구조적 문제에서 발생된 시장을 선점하는 DMF(Demographic Market Fit)이라는 개념을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환경보호, 보육, 장애 극복, 저출산, 고령화, 교육격차 해소 등 공익적 가치를 해결하기 위해 스타트업들이 찾아야 할 목표점입니다.
최근 AI를 기반한 딥테크 스타트업들이 트렌드를 선도하고 있지만, 몇 년 전 메타버스와 NFT, 대체육 등 세상을 바꿀 것만 같았던 스타트업들이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것을 지켜봤던 만큼 지금의 입지를 10년 뒤에도 가질 수 있을 것이란 미래는 장담하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보다 우리 삶에 밀접하게 있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전해보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의 대표적인 VC인 카카오벤처스의 신임 대표인 김기준 대표는 올 4월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를 통해 스타트업들이 ‘사회 전반적인 현상에서 만들어지는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아야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이왕 투자받기 어렵고 사업하기 힘든 시기에 창업을 한다면, 꼭 풀어야만 하는 커다란 문제를 가지고 와서 근본적으로 세상을 바꾸려는 시도를 지지한다’고도 밝혔습니다.
구조적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니치마켓에서 빈 영역을 찾는 것보다 시장의 규모도 훨씬 크고 모두가 문제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명분과 시장성을 확보한다면 그 어떤 시장보다 확실한 임팩트와 혁신을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