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에 가짜와 진짜가 어딨나
집과 학교, 그리고 아르바이트만을 반복하던 스무살의 어렸던 나는, 당시에 참 노래를 좋아했고 지금도 노래가 내 삶을 풍요롭게 만드는 취미 중 하나다. 하지만 남들 앞에서 뜨거운 시선과 관심을 받으며 주목받기를 원했던 관종도 아닌 그저 I 성향이 70%가 넘는 음악 좋아하는 대학생이었다.
가수만큼 노래를 잘하지 않았지만, 하지만 대학 시절을 이렇게 알바몬으로만 지낼 수 없다고 생각한 나는 전역 이후 복학생으로 밴드 오디션에 참여해 운좋게도 메인 보컬을 맡게 되었다.
금전적으로도 여유롭지 않았기 때문에 학원은 사치였다. 전공도 전혀 달랐다.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던 연습은 미련하게 많이 듣고, 많이 불러보고, 많이 녹음해서 다시 듣는 것을 반복하는 것에 불과했다.
대신 그 과정을 질리도록 반복하며 목에서 피맛이 수도없이 날 만큼 노력을 했다는거다.
나의 노력을 아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결과적으로 밴드 보컬이라고는 누구도 상상할 수 없던 외모였음에도 불구하고 졸업 이후에도 계속 공연을 하며 코로나 전까지 100회 가량의 크고 작은 공연들을 할 수 있었다.
그 중 한 프로듀서님의 소개로 참여하게 된 유명 밴드 보컬들의 합동 콘서트 오프닝 공연은 꽤 나의 인생에 영향을 주었던 경험이다. 원래 오려던 오프닝 팀이 펑크를 내며 급하게 우리가 땜빵으로 들어가게 된 것이다. 당연히 공연 포스터에도 우리의 이름은 없었고, 정식 소개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였다. 관객들도 들어오고 있는 어수선한 상황 속에서 조심스레 무대에 올라가 후딱 2곡의 무대를 해치우고 내려왔었다.
그렇게 공연을 마친 뒤 우리는 모든 공연을 지켜볼 수 있었다. 하지만 그 날 공연팀이 모두 무대로 올라오는 그 자리에 우리의 자리는 없었다. 정식으로 데뷔한 '진짜 밴드'도 아니고 그저 음악 좋아하는 '땜빵 대학생 밴드'였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 분들과 우리의 연륜과 실력차이는 어마어마했기에 하나도 아쉬움은 없었다.
모든 출연자들이 무대에 올라와 "오늘 출연한 밴드 4팀"이라고 이야기했지만 단 한 명, 박완규 씨는 우리 밴드를 콕 찝어서 "밴드 5팀의 오늘 공연이 여러분에게 인상깊게 남았으면 좋겠다."라고 언급해주었다. 그 짜릿하고 강렬한 기억은 아마 평생 잊지 못할지도 모를만큼 지금도 생생하게 나의 마음 속에 남아있다.
요즘 밴드 씬에서 가장 뜨거운 밴드를 하나 꼽자면 QWER일 것이다. 피지컬갤러리의 김계란이 아이디어를 내고 결성된 걸밴드 QWER은 지난 2일 '가짜 아이돌'이라는 제목으로 신곡을 발표했다. 비주얼 걸밴드라는 확실한 정체성과 함께 라이브 논란, 인터넷 방송 스트리머와 틱톡커 출신이라는 이른 바 '근본 논란'까지, 제목부터 이 논란을 정면돌파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QWER을 두고 누군가는 홍대병에 걸려 고일대로 고여버린 락밴드 시장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고 하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밴드 씬과 음악인들에 대한 모욕이라고도 한다. 그리고 이 논란과 함께 밴드를 바라보는 이들의 젠더 이슈까지 섞여버렸다. QWER과 관련한 논쟁들을 지켜보고 있자면 활화산처럼 끊임없이 폭발이 일어나는 듯 했다.
실제로 지난 5월 3일, 대표적인 락 축제인 펜타포트 락 페스티벌의 1차 라인업에 QWER이 포함된다는 소식이 발표되면서 그야말로 빠와 까가 모두 주목하는 밴드가 되어버렸다. 이들은 엄청난 악플과 비난을 감당해야했고, 결국 공연 당일 멤버별로 악기에 별도 캠을 달아 라이브 연주 인증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QWER에 대해 비판하는 의견들을 들어보면 공통적으로 들어가는 내용이 있다. QWER은 밴드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고 인기에 편승해서 인터넷 방송인(여캠)들이 하는 '가짜 밴드'라는 것이다.
물론 데뷔 초 QWER의 실력은 보컬과 드럼을 제외하면 명확하게 부족했던 것은 사실이다. 분명히 다른 인디밴드에 비해 기존의 인지도를 활용하여 조금 더 빠르게 계단을 오른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QWER이 끊임없는 노력과 성장을 통해 실력을 갈고 닦았고, 팬들과 대중들을 납득시킬만한 설득의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의 성과를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채널을 통해 성장의 전 과정을 담았고, 팬들(바위게)은 그 노력과 성장의 과정을 함께 지켜보며 그들의 서사와 함께하는 구성원이 되었다. 프로의 영역에서 노력과 성장 서사는 결국 아티스트 스스로가 아니라 팬들이 아티스트에게 부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QWER이 이번에 낸 신곡인 '가짜 아이돌'은 위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그들을 향한 논란에 정면으로 돌파하는 내용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를 가짜라고 놀려대도 기필코 너에게 진심을 전할게'라는 가사처럼 그들의 음악을 향한 진심은 순수하기 그지없다.
특히 QWER 멤버들 중 원래 아이돌이었던 보컬을 제외하면 밴드 활동 중에도 본업이었던 스트리머 활동과 QWER 모두 놓치지 않고 성공적으로 하고있다는 점이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전공자인지, 실력이 어느정도인지, 음악을 얼마나 해왔는지, 이전 직업이 무엇인지는 성과가 말해주듯 대중들에게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학창시절 프로들에게 인정받지 못했던 우리가 박완규 씨의 말 한마디로 인해 힘을 얻어 '가짜 밴드'에서 '진짜 밴드'처럼 실력을 갈고 닦아 졸업 이후에도 한동안 돈을 받고 공연을 지속 할 수 있었던 것처럼, QWER 또한 팬들과 대중들의 인정을 통해 결국 이제는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는 '진짜 밴드'가 되었다.
사람들은 살다보면 이런 저런 일들을 하면서도 여러 이유로 마음 속에 피지 못했던 꿈을 품고 산다. 20대의 도전은 사회적으로 존중받지만 30대 이후의 도전은 성공했다면 다행이지만, 실패하는 순간 오만이고 말 그대로 '실패' 취급을 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슬프지만 나의 이야기다.
QWER 멤버들의 초기 유튜브 영상을 보면, 각자가 도전에 실패했거나, 음악에 대한 순수한 꿈을 마음 속에 현실적인 이유로 소중히 담아두고 있었다. 우리는 쉽게 할 수 없었던 꿈들을 피어내는 QWER의 서사에 우리는 열광하고 응원을 보내는게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