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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ennett Nov 20. 2022

32살 유부남의 조금 늦은 '프로덕트 매니저' 도전기

결혼 5년차 유부남은 왜 이제서야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었을까

처음은 지인의 추천이었다.

현직 파이썬 개발자인 대학교 동창 2명은 올 추석 전 집 근처까지 찾아와

공백기가 길어지고 있던 나에게, "하고 싶은 게 뭐냐?"라고 찾아와 물었다.


학창시절 그들보다 더 뜨겁게 활동하고 생활하던 나는

직장생활 약 3년을 마치고, 공백기가 2년 반이 된 

30대 우리집 경비인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문득 생각을 했다. 나는 뭘 하고 싶었는가..

20대 시절 건설사에서도 인사/총무 업무를 했었고, NGO에서 꿈에 가까운 일을 해보았다. 


NGO에서는 팀원 2명과 함께 원했던 직무로 일을 해보았지만

결과적으로 그 길이 나의 길이 아니었음을 깨달았을 때의 상실감은 이루 말로 할 수 없었다.


코로나 시작과 동시에 그만두게 된 나는 강제적인 공백기가 생기게 되었다.

사람들은 나에게 2년 이상의 공백기를 우려하며 걱정을 표했지만

나는 그동안 새로운 도전를 하기 위한 다양한 공부, 청년 인턴들, 각종 아르바이트를 했다.


생활을 위한 경제활동도 있었고, 공부하다 포기한 것도 있었다.

또한 많은 도전 끝에 결국 실패하거나 포기하게 되어 결과가 남지 못한 것도 많았다.


나는 실패에서 얻은 피드백을 바탕으로 내가 잘하는 것을 조금씩 찾아 나왔다.

그렇기에 나는 사실 지금의 기간을 공백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순탄한 20대를 보냈던 나는 남들은 자리를 잡아가는 30대에 들어와서야

다양한 경험들을 통해 과거의 나의 업무 스타일과 현재의 나에 대한 탐구의 과정을 거쳤다.


무엇을 잘 하고, 무엇을 잘 못하는 지. 그리고 나의 강점과 약점, 업무 스타일 등... 모든 것 말이다.


하지만, 세상에서 바라는 건 실패가 아니라 성공적인 경험과 완벽을 추구하는 전문성과 스펙이다.

사회와 영원히 격리되어 살 것이 아니라면 나 또한 그 기준에 발맞출 필요는 있다 생각했다.


이쯤 되니 다시 나의 생각 속에서 빠져나와 친구의 질문에 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이쯤 되니 뭘 하고 싶은 건진 모르겠어. 하지만 내가 너무 아쉬운 게 하나 있어."


친구는 물었다. 

"뭔데?"


"사회에서 일을 할 때, 나의 역량과는 별개로 노력하면 될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어. 하지만 면접을 수십 번 보고 떨어지고를 반복하면서 가장 괴로웠던 점은 「나한테는 더 이상 기회가 찾아오지 않을 수 있다」는 공포가 자꾸 나를 괴롭혀. 한번만 더 기회를 얻을 수 있다면 정말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으니 점점 자존감이 떨어져서 그게 좀 힘들어. 굳이 내가 새로운 직무를 골라야 한다면, 나는 반복되는 것 보다는 새로운 걸 만들거나 이미 있는 것들을 개선하는 일을 하고 싶어. 내가 NGO에서 했던 일들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는 업무였으니까. 나무도 중요하지만 이왕이면 숲을 그릴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어. 누군가에게 이로움을 가져다 일이면 좋을 것 같아."


5초 가량의 침묵이 우리 사이를 사로잡았고 침묵을 깬 건 나랑 가장 친했던 친구녀석이었다.

"너, IT 쪽에서 기획 한번 해 보는 거 어때?"

평소에 다양한 분야에 대해 잡학다식하다며 칭찬을 달고 살던 친구녀석의 조언이었다. 


누군가의 이로움을 위해 그들의 시각에서 무언가를 기획하고, 

그 기획안을 보고에 올려 설득하는 과정을 통해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 있어서 많은 프로세스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고 

구성원들과 커뮤니케이션 과정을 통해 더 나은 결과, 원활한 프로젝트 진행을 돕는다.


생각해보면 이미 내가 NGO에서 해왔던 익숙한 방식이다.

다만, 나에게 부족한 건 IT 지식, 그리고 자신감이었다.


"친구야. 내가 코딩 공부하다가 포기 한 걸 알면서 이야기하는거야?"


"너가 포기한 건 파이썬 공부를 했어야 하는데 자바 공부한다고 까불다가 공부를 못따라가서 그랬던거고, 약간의 IT 도메인 지식 있으면 너 해왔던 거나 성격이나 평소 너를 생각하면 충분히 가능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내가 아는 너는 할 놈인거 아니까 추천하지 미친놈아. IT 지식이랑 기획자 공부만 좀 하자. 이제 그만 동굴에서 나올 때가 됐어. 한번 해 보자." 


개발자 친구 두 녀석은 나에게 용기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사실 두려웠다.

새로운 것을 뒤늦게 배우고 도전한다는 것이.

그리고 긴 실패에서 기인한 패배감이 자꾸만 나를 짓눌렀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보고, 저녁에 연락할게."

그 말을 듣는 순간에는 이 말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친구들은 돌아가고, 집에 돌아와 다시 생각에 잠긴 나는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경찰 일을 하시다가 33살에 그만두시고 전혀 새로운 분야에 도전하셨던 나의 아버지.

칠순이 넘은 아버지임에도 여전히 정규직으로 일을 하고 계시는 나의 아버지.

32살의 나는 새삼 '아빠 아들 맞네..ㅎㅎ' 라는 쓴 웃음을 지었지만 

그와 함께 내 마음 속엔 용기가 피어올랐다.


어차피 더 이상 떨어질 곳도 없고, 

정말 여의치 않으면 계속 글쓰는 일을 병행하면서 원래 좋아하던 요식업쪽에서 일을 해도 늦지 않다는 나름의 생각.


그리고 와이프가 내년 초까지는 경제적으로 견뎌볼 수 있다고 이야기 한 믿음의 말씀(?).

그리고 친구들의 확신어린 이야기.


그리고 위에 이야기 했듯 아버지 또한 불확실성에 따른 두려움을 이겨내고

칠순이 넘은 지금의 나이까지 일을 하고 계시는 것을 봤을 때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오히려 아버지보다 주변에서 도와주려는 사람들이 많기에 할 수 있다는 마음이 생겼다.

여전히 불확실성은 나를 사로잡지만, 어찌하겠나. 어떤 일이든 리스크가 있는 법인데... 

나는 그 리스크가 다른 사람들보다 좀 더 클 뿐이라고 생각하며 친구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친구야, 나 한번 해볼란다. 진짜 무섭고 두렵거든? 근데 어차피 이대로 가면 백수밖에 안될 거 같아. 손 내밀어줘서 고맙다." 


진심어린 표현이었다.


"야. 너도 나 대학생때 삽질하고 있을 때 와서 팩폭하고 갔잖아. 그때 나도 상처받았었는데 그 말 듣고 정신차리고 지금까지 온거니까 너도 하면 될거다." 라는 친구의 말에 괜히 코끝이 찡했다.


그래서 32살의 9월, 늦다면 늦고 빠르다면 빠른 지금 시작하게 된 것이다.

서비스 기획자를 준비하는 것을, 길게 보면 PM으로 나아가고 싶은 꿈이 뒤늦게 생겨버렸다.

내가 NGO에서 다문화가정 학생들의 꿈을 응원했던 것처럼, 지금은 나의 꿈을 나와 내 주변에서 응원해주고 있다.


두렵지만 조금씩 해보려 한다.

2년 만에 해야 해서 하는 일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마지막에 성공으로 끝맺음을 지을 지, 쓴 웃음을 짓게 될 지는 모르지만

늦은 시작인 만큼, 더 침착하게 준비하려고 한다.



나는 할 수 있겠지.

아니다. 할 수 있다.



9월 29일의 어느 날 저녁.

전업남편의 다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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