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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잡학지식

수제맥주는 왜
하이볼에게 밀렸을까?

소비자들은 더 이상 '재미있는 맥주'를 찾지 않는다

by Bennett

수제맥주 시장은 이제 끝난 걸까?


[사진 1] 편의점에 판매 중인 수제맥주_출처 연합뉴스.jpg 편의점에 판매 중인 수제맥주_출처 연합뉴스


지난 몇 년 간 한국 편의점의 주류 냉장고를 한동안 점령했던 수제맥주들이 어느새 조용히 사라졌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는 최근 젊은 세대들의 일본 문화의 관심도를 반영하듯 하이볼과 츄하이 등 RTD(Ready To Drink, 제조가 필요한 음료를 바로 마실 수 있도록 상품화한 제품) 제품이 편의점 냉장고를 채우고 있습니다.


편의점을 이용하다보면 한번쯤은 호기심에 구매해서 마셔봤던 다양한 브랜드의 수제맥주의 경험이 있을텐데요. 코로나 기간 중에 곰표맥주, 제주 위트 에일, 진라거 같은 다양한 맥주 브랜드들이 출시되었고, 편의점 매대를 도배하며 그야말로 수제맥주 열풍을 만들어냈습니다. 그 트렌드를 타고 국내의 소규모 양조장 수도 빠르게 증가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어떨까요?


[사진 2] 2021년 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맥주 스타트업 '제주맥주'_.jpg 2021년 특례상장으로 코스닥에 상장한 맥주 스타트업 '제주맥주'


수제 맥주 기업 처음으로 ‘맥주 스타트업’이라는 개념을 등장시키며 주식시장에 특례 상장을 통해 IPO를 화려하게 마쳤던 제주맥주는, 한때는 시가총액이 1600억원에 달했지만, 현재는 고작 400억원에 불과한 상황입니다.


한때 ‘취향 소비’를 대변하며 MZ세대의 소비 트렌드 중 하나로 떠올랐던 한국의 수제맥주 시장은 왜 이렇게 빠르게 식어버린 걸까요?



주세법 개정과 수제맥주의 시작


한국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은 2014년 주세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법 개정 이전, 한국의 주류 과세 방식은 종가세(가격 기준 과세) 방식이었습니다. 즉, 맥주 가격이 높을수록 세금도 높아지는 구조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원가가 높은 수제맥주는 대기업 맥주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았습니다. 소규모 양조장들은 대기업과 가격 경쟁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었고, 유통망 확보도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사진 3] 수제맥주 가격(중위값) 및 브랜드 수 변화추이_출처 biz.chosun.com(자료-공정거래위원회).JPG 수제맥주 가격(중위값) 및 브랜드 수 변화추이_출처 biz.chosun.com(자료-공정거래위원회)


한국 수제맥주 시장의 성장은 2014년 주세법 개정과 밀접한 관련이 있습니다. 이전에는 종가세(가격 기준 과세) 방식으로 인해 수제맥주가 대기업 맥주보다 높은 세율을 적용받아 가격 경쟁에서 불리했습니다. 그러나 2014년, 맥주와 막걸리에 대한 과세 체계가 종가세에서 종량세(양 기준 과세)로 변경되면서 수제맥주 양조장의 세금 부담이 대폭 줄어들었습니다.


이로 인해 소규모 브루어리 창업이 활발해졌으며, 다양한 수제맥주 브랜드가 시장에 진입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한국주류산업협회에 따르면, 2019년 국내 맥주 제조사 수는 33개였으나, 2023년에는 81개로 증가했습니다. 같은 기간 맥주 브랜드 수도 81개에서 318개로 4배 가까이 늘어났습니다.


[사진 4]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에서 제공된 세븐브로이의 수제맥주_출처 newsis.jpg 2017년 청와대에서 열린 주요 기업인과의 호프 미팅에서 제공된 세븐브로이의 수제맥주_출처 newsis


맥주 스타트업이라는 개념도 이 시기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습니다. 국내 맥주 3대장으로 불리는 KABREW, 세븐브로이(SEVENBRAU), 제주맥주(JEJU BEER COMPANY)는 물론, 소규모 양조장들이 독특한 콘셉트와 브랜드 스토리를 내세우며 시장에 도전장을 던졌고, 소비자들도 기존 대기업 맥주와는 차별화된 맛과 디자인을 가진 수제맥주에 열광하기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가 만든 수제맥주의 황금기


[사진 5] 곰표 맥주.jpg 곰표 맥주


수제맥주 시장은 2020년 이후 본격적인 황금기를 맞이했습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홈(Home)술·혼(혼자)술 문화가 확산되면서, 소비자들은 편의점에서 개성 있는 맥주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 시기 가장 성공한 사례가 세븐브로이가 국내 제분기업의 제품 브랜드인 ‘곰표’ IP를 활용해 만든 곰표맥주입니다. 대한제분의 밀가루 브랜드 ‘곰표’와 협업한 이 맥주는 출시 직후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으며, 출시 10일 만에 120만 캔을 판매하는 성과를 얻게 됩니다.


곰표맥주의 성공 이후, 업계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수제맥주를 출시하기 시작했습니다.


대기업들도 수제맥주 시장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 시작했습니다. 국내 주류 기업인 OB맥주는 2021년 수제맥주 협업 전문 브랜드인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KBC)'를 론칭하여 다양한 소규모 맥주 스타트업들과 협업을 시작했습니다. 이를 통해 소비자들에게 다양한 맛과 개성을 지닌 맥주를 제공하며 수제맥주 시장의 확대에 기여하기도 했습니다.



너무 많아진 브랜드, 그리고 소비자의 피로감


[사진 6] 가전제품, 껌, 안주, 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한 수제맥주 제품.png 가전제품, 껌, 안주, 커피 등 다양한 브랜드와 콜라보한 수제맥주 제품


하지만 수제맥주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소비자들은 점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초기에는 수제맥주가 ‘특별한 맥주’라는 인식이 강했지만, 브랜드가 난립하면서 차별화되지 않은 제품들이 쏟아졌습니다.


곰표맥주의 성공 이후, 업계는 다양한 브랜드와 협업한 수제맥주를 앞다투어 출시했습니다. 독특한 콘셉트의 맥주들이 쏟아졌지만, 대부분 단기적인 화제성을 노린 마케팅에 집중했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처음에는 흥미를 보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반복되는 ‘콜라보 마케팅’에 피로감을 느끼기 시작했습니다.


또한, 수제맥주 브랜드들은 빠르게 늘어나는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 기존 대기업 양조장에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으로 위탁 생산을 맡기기 시작했습니다. 이는 생산 비용을 낮추고 유통량을 늘리는 효과가 있었지만, 역설적으로 수제맥주의 ‘개성’과 ‘브랜드 정체성’을 희석시키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그 결과 소비자들은 점점 수제맥주와 대기업 맥주의 차이를 체감하지 못하게 되었고, 수제맥주에 대한 기대감도 낮아졌습니다. 즉, 수제맥주가 가진 ‘독창적인 맛과 철학’보다는 ‘콜라보 제품’으로 소비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본래의 가치가 점점 퇴색되었습니다.


[사진 7] 수제맥주 업체 영업이익_출처 hankyung.com.jpg 수제맥주 업체 영업이익_출처 hankyung.com


결국 2022년 수제맥주의 총 판매액은 1,107억 원을 기록하며 성장세를 유지하는 듯했으나, 2023년에는 752억 원으로 급감하며 32%의 매출 감소를 보였습니다. 시장 점유율도 하락세를 보였는데, 2022년 전체 맥주시장에서 2.6%를 차지했던 수제맥주는 2023년 1.8%로 줄어들며 다시 마이너스 성장 국면에 접어들었습니다.


맥주 소비가 줄어드는 동안, 소비자들은 하이볼과 같이 RTD 캔 음료를 더 많이 찾기 시작했습니다. 일본식 하이볼이 유행하면서, 편의점과 마트에서도 전용 코너가 생길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논알콜 및 에너지 드링크 같은 기능성 음료 시장도 급성장하며, 술을 포함한 주류를 소비하는 패턴 자체가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유행이 끝난 것이 아니다. 방향이 바뀌고 있을 뿐


[사진 8] OB맥주가 주최한 2024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_출처 OB맥주.png OB맥주가 주최한 2024 이노베이션 데이 행사_출처 OB맥주


수제맥주는 단순한 유행이 아니라, 한국 맥주시장에 새로운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흐름이었습니다. 다만, 시장이 과포화되면서 기존 방식이 한계를 맞이한 것일 뿐입니다. 이제는 대량생산을 통한 확장이 아니라, 충성 고객을 확보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


오비맥주는 2021년 이후 맥주 스타트업과의 협업을 확대하며 ‘코리아 브루어스 콜렉티브’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해 11월에도 ‘이노베이션 데이’를 통해 맥주 스타트업과의 상생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올해 이노베이션 데이에서 폐효모를 활용한 아이디어로 대상을 받아 화제가 된 비전바이오켐과의 협업은 맥주 산업이 지속가능성과 기술 혁신을 결합하는 새로운 방향성을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대기업이 주도하는 형태라도, 맥주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생존하기 위해서는 보다 명확한 차별화 전략과 품질 경쟁력을 갖춰야 합니다.


[사진 9]2024 오비맥주 스타트업 ‘데모데이(Demo Day)’에서 우승한 비전바이오켐_출처 OB맥주.png 2024 오비맥주 스타트업 ‘데모데이(Demo Day)’에서 우승한 비전바이오켐_출처 OB맥주


수제맥주 시장의 중심이 어디로 이동할지는 알 수 없지만, 확실한 것은 소비자는 항상 ‘좋은 맥주’를 원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답을 찾는 브랜드만이 살아남을 것입니다.


제2의 제주맥주가 탄생할 수 있을까요? 맥주 시장의 다음 변화를 주목해야 할 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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