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 스타트업
지난 7월 1일, 모바일 게임 '킹스레이드(King`s Raid)'를 만든 한국 개발사 '베스파'가 전 직원에게 권고사직을 통보하고 사실상 폐업절차에 들어갔습니다.
베스파는 코스닥 상장사이고, 2018~19년 일본 구글 플레이스토어에서 인기순위 1위와 함께 매출순위도 Top 10에 들었던 게임을 개발했던 회사였던만큼 시장의 충격은 컸습니다. 베스파 임직원들의 연봉을 1,200만원 인상하겠다고 언론에 밝힌 게 불과 작년 3월입니다.
뿐만 아니라 이번 달 초에는 시리즈B 단계의 투자를 받았던 회 당일배송 플랫폼 '오늘회'가 전 직원 권고사직을 통보했습니다. 9월 21일 현재 서비스는 재개됐지만, 판매 품목은 3개 뿐이고 당일배송이 아닌 일반배송을 하고 있습니다.
고객센터는 연락이 되지 않고 여전히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시리즈 B단계의 스타트업, 누적투자금 170억원의 '오늘회'는 결국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소위 '망해야 할 기업이 망하지 않는' 스타트업의 대호황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올 해 들어 많은 스타트업들이 자금난을 호소하며 파산을 하거나 경영규모를 축소하는 등 비상경영체제에 들어갔습니다.
스타트업을 투자하는 벤처캐피탈(VC) 또한 과거와 달리 시장을 관망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업계에서는 '스타트업의 겨울이 왔다'고 하기도 합니다. 왜 이런 상황이 일어나게 된 것일까요?
이러한 상황이 발생한 가장 큰 이유는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때문입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인한 경제위기를 유동성 공급을 통해 극복해 나왔지만, 시장에 너무 많은 돈이 풀리게 되면서 현재 전세계적인 인플레이션과 경기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시장에 풀린 돈을 회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로 인해 현금보유량이 충분하지 않거나 이익이 나지 않아 투자로 버티고 있던 스타트업은 점점 경쟁에서 아웃되고 있습니다.
금리인상은 스타트업에만 영향을 준 것이 아닙니다. 스타트업에 투자를 하는 벤처캐피탈(VC) 또한 이전보다 신중하게 투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VC는 펀드를 통해 투자를 하게 되는데, 투자자들에게 있어 미국 금리가 오른다는 것은 은행 대출을 통한 자금 조달이 부담스러워진다는 것입니다. 또한 미국의 기준금리가 인상이 되면 미국 국채 수익률도 올라가기 때문에 더 안전하게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으로 자본이 옮겨가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이전에 비해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매력도가 낮아졌습니다. 결국 신규 투자를 진행하는 VC는 이전보다 신중하게 투자를 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실제로 한국 스타트업 투자유치 규모가 2021년 7월에는 3조 659억원인데 반해, 올 해 7월에는 8,369억원으로 약 70% 가량 투자금이 감소했습니다. 또한 정부에서 민간 투자 활성화 재원이었던 '모태펀드' 또한 내년 예산을 올해(5,200억원)에 비해 40% 감소한 3,135억원으로 편성했습니다.
현재 한국 스타트업들은 이른 바 '옥석 가리기'에 들어갔습니다.
신규 투자를 받기 어려워진 요즘, 스타트업들도 겨울을 이겨내기 위한 준비에 나섰습니다. 구조조정과 사업개편을 통해 고정 지출을 줄이고 신규 투자와 마케팅 비용, 그리고 채용까지도 줄이면서 저마다의 겨울맞이를 하고 있습니다.
원래 계획보다 투자유치 시기를 앞당겨서 VC의 투자를 받으려는 시도들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당장 가치를 낮게 평가받더라도 투자유치에 실패하는 최악의 상황은 면하겠다는 스타트업들의 고육지책이기도 합니다.
투자 유치에 실패한 기업들은 M&A를 진행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국내 OTT 서비스 '왓챠(Watcha)'는 올해 상반기 1,000억원 규모의 Pre-IPO(상장 전 투자유치)가 실패하면서 자금난을 해결하지 못하고 M&A 시장에 나왔습니다.
한편 국내 스타트업 투자 분위기가 가라앉자, 스타트업들은 투자가 활발한 미국으로 시선을 돌리기 시작했습니다. 정부에서도 이러한 스타트업들을 지원하기 위해 미국 뉴욕에서 '한-미 스타트업 서밋(KOREA-U.S. START UP SUMMIT)'을 진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통해 한국 스타트업들의 성장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한국은 최근 글로벌 자본으로부터 '스타트업 생태계의 새로운 아시아 허브'로 각광받고 있습니다. 그에 발맞춰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와 아마존에서도 한국 스타트업을 위한 맞춤형 지원프로그램을 출범했습니다.
또한 구글은 스타트업 업무공간인 '구글 스타트업 캠퍼스'를 2015년에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 열기도 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국 IT 대기업 알리바바에서도 한국 등 아시아·태평양 지역 스타트업 육성에 10억 달러를 투자한다고 발표했습니다.
이외에도 미국 현지에서 한국인이 창업한 스타트업만을 위해 한국 자본 VC가 만들어지기도 했습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은 자가 강한 것이다."라는 한국의 격언이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금리인상기에 기업들은 살아남아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일어난 유동성 공급 파티는 이제 끝이 났습니다. 기업 또한 미래의 비전보다는 당장의 현금흐름과 탄탄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는 기업들을 중심으로 투자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는 기술이나 사업성이 뛰어난 '강한 기업'이라도 한번의 실수로 기업경영이 어려워 질 수 있는 시기인 만큼, '뭘 할지' 고민하기보다는 '뭘 하지 말아야 할지'를 고민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2000년대 초 미국에서 일어난 '닷컴 버블' 당시 언론에서 가장 먼저 망할 것이라고 했던 기업은 바로 현재 세계 5위 기업 '아마존(Amazon)'이었습니다. 실제로 그 당시 아마존의 주가는 2년만에 95%가 폭락했습니다.
그 당시 아마존은 투자 철수, 경비 절약, 구조조정을 진행했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아니었지만, 다른 기업과 아마존의 차이는 바로 '빠른 실행'이었습니다. 한국의 스타트업도 '완벽한 플랜'보다는 '살아남기 위한 빠른 실행'이 스타트업의 옥석을 가리는 지금 시대를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