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제가 글을 작성하고 있는 日 IT&비즈니스 뉴스레터 'KORIT'에 업로드 예정인 글입니다. 그로 인해 사례나 글의 내용이 일부 일본인 독자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내용이 있습니다. 큰 흐름은 읽는데 지장이 없지만 읽으시는데 참고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시작하며
지난 3월 29일,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님들은 다소 놀랄 만한 뉴스를 접했습니다. 대한소아청소년과의사회(이하 소아과의사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더 이상 소아•청소년 전문 진료를 보지 않겠다며 ‘폐과’를 선언했습니다.
이에 또 다른 소아청소년과 단체인 대한소아청소년과학회(이하 소아과학회)는, “아무리 어렵더라도, 소아청소년과 국민의 건강권 유지에 최선을 다할 것”임을 공식 입장문을 통해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대체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된 걸까요?
우선, 소아과의사회의 폐과 선언이 곧 진료를 중단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이들이 동네에 흔히 볼 수 있는 의원급(1차 의료기관) 의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반대로 소아과학회는 병원 급 이상의 의료기관(2,3차 의료기관) 의사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번 문제는 최근 세계 최저를 계속 갱신하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과 함께 미래세대를 위한 의료공백이 심각한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소아청소년과 문제 외에도 한국에서는 수도권과 지방 간의 의료 격차가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데요. 오늘 글에서는 현재 수도권과 지방 간의 의료 격차가 정말 심각한 문제인지 확인해보고, 해결책은 없을 지 저의 생각들을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왜 이런 문제가 생겨난 걸까?
소아청소년과 의사들이 이번에 폐과선언을 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소아청소년과의 전반적인 진료 환경 문제 때문일 것입니다. 소아청소년과는 현재 한국의 저출산 추세로 인해 잠재 고객 수가 지속적으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소아청소년과는 다른 진료과목에 비해 매우 낮은 의료 수가와 보호자에 대한 감정 노동 등 더 힘들지만 경제적 혜택은 낮은 진료과목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실제로 소아청소년과의 1인당 평균 진료비는 30년 간 17,000원으로 사실상 계속 수가가 동결되었습니다.
결국 지난 5년 간 동네 소아청소년과는 662곳이 폐업을 했고, 대다수의 종합병원을 비롯한 전국의 병원 대부분이 올해 뽑기로 한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모집 정원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소아과의 전공의(레지던트) 지원율은 2019년 80%에서 올 해 상반기 기준 15.9%로 하락했습니다. 이는 장기적으로 한국의 소아의료 시스템의 붕괴를 가속화할 것입니다.
사실, 이미 소아의료 시스템 붕괴는 현실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다양한 언론보도를 통해 보았듯이 제주도의 소아 중환자를 진료할 병원이 없어 수도권의 종합병원으로 이송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한편 같은 수도권의 대학병원에서는 의사 부족을 이유로 소아청소년과의 입원 진료를 중단하기도 했습니다. 수도권과 달리 지방의 국립대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는 진료를 할 의사도, 후학을 이을 제자도 부족해 야간 응급상황에 대응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는 수치로도 나타납니다. 한국의 소아청소년과 의사 1명이 담당해야 하는 소아 중환자의 수는 6.5명으로 일본의 1.7명과 비교하면 약 8배에 달합니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이런 소아 의료 시스템 공백 상황에 정부는 내년부터 의대 정원을 늘리고, 공공 영역에서의 24시간 소아 진료 시스템을 확충하고, 병원에서 소아환자들을 받을 때 여러가지 혜택들을 주기로 발표했지만 정작 현장의 반응은 시큰둥합니다.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다소 거리가 있는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근본적인 의료 수가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한국과 함께 대표적인 저출산 국가로 손꼽히고 있는 일본은 소아과의 가산 진료수가가 성인 진료의 5~10배에 달합니다. 이 수가 전액을 중앙정부에서 부담하고 있습니다. 특히 지역의 거점병원은 중앙정부와 지자체가 책임지고 1개 병원 당 약 200억 원의 운영비를 보조해주고 있습니다. 이와 비교한다면 이번 정부의 발표는 부족한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의사들이 소아과를 개원하거나 지방 소아과 개원 등 지방 근무의 메리트가 여전히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장에 있는 소아과 의사들은 열악한 생활 인프라와 환자가 적은 지방에서 굳이 개원을 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또한 일부 극성맞은 부모들의 '갑질', 성인에 비해 까다로운 검사와 진단, 경과가 급격하게 변화하는 소아 진료의 특수성으로 인해 소송 등 의료진들의 법적 보호가 제대로 되지 않는 등 소아과를 꿈꾸는 젊은 의사들도 등을 돌리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상대적으로 소아청소년과의 전문성을 인정해주지 않기 때문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한 기사에 따르면, 소아과 외에도 소아외과, 소아흉부외과, 소아신경외과, 소아응급의학, 소아혈액종양 등 9개 분과가 따로 있을 정도로 소아 진료는 사실 굉장히 세분화되어 있지만 전문성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기술로 해결할 수는 없을까?
지금 일어나고 있는 소아청소년과 의사 부족 사태는 한국의 심각한 사회문제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위에서 해결책으로 언급했던 진료 수가나 지방 근무의 메리트는 정치권에서 해결해야 할 영역입니다.
그러면 이러한 문제를 기술적으로 풀 수는 없을까요? 한국에서는 현재 관련 스타트업이나 관련 서비스가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현재까지 이러한 문제를 직접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서비스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간접적으로 해결하려는 노력을 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팬데믹으로 인해 기존에 불법이었던 원격의료가 한시적으로 허용되며 열린 비대면 진료가 그중 하나입니다.
비대면 진료 서비스들이 등장하면서 환자들의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조사기관에 따라 다르지만) 최소 70%, 최대 85%에 달했습니다. 실제로 소아과 진료에 적용 시 지방에 있는 환자들의 어려움을 일부 해결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다만, 올해 5월 중으로 코로나 위기 상황 종료를 선언할 것으로 예상되어 그동안 서비스되던 비대면 진료 또한 중단이 예상되는만큼 비대면 진료 서비스가 앞으로 지속될 수 있을 지에 대해 지켜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외에도 소아과 의사들의 진료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AI를 기반한 의료 솔루션을 활용하는 것입니다. AI를 활용해 환자의 증상과 검사결과를 분석하여 진단을 보조하거나, 적절한 처방을 추천하는 시스템이 예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닥터앤서 2.0
한국에서는 이미 2021년부터 ‘닥터 앤서 2.0’이라는 인공지능 정밀 의료 솔루션을 개발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정부의 지원으로 30개 병원, 18개 기업이 참여해 의료용 AI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다만 소아청소년과에 특화된 솔루션이 아니라 12가지 주요 질병에 대한 솔루션이기 때문에 소아과 의사 부족 사태를 즉시 해결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서비스가 고도화된다면 소아청소년에게도 적용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외에도 최근 소아과 전공을 희망하는 전공의가 부족한 상황을 고려한다면, 후학 양성을 위한 의사 교육과 관련한 솔루션을 만드는 것도 장기적으로 기술이 해결할 수 있는 대안 중 하나가 될 지 모릅니다.
지금처럼 소아과 전공의 지원율이 계속 낮아진다면,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소아 진료에 필요한 현장 지식과 전문 지식들이 다음 제자를 찾지 못하고 당대에 소멸될 지도 모릅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기술의 힘을 빌려 기록해두고, 그 기록을 기반으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진료를 연습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 소아 의료 전문지식을 전승시킬 수 있을 것입니다.
현재 소아 의료 시스템 관련 문제의 크기에 비해 시장에서 아직 관련 서비스들이 많지 않습니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할 솔루션이 시장성이 있는지를 이 글에서 지금 이야기하기엔 쉽지 않겠지만, 분명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큰 범주에서 이 상황을 바라본다면 잠재적 가능성은 크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미래세대를 위한 소아 의료 시스템 개혁
소아 의료 시스템 문제는 단일 문제로 바라볼 것이 아닙니다. 세계 최저를 갱신하고 있는 한국의 출산율과도 간접적으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낳기도 어렵고 키우기도 어려운 현재의 환경에서 아이가 아플 때 갈 병원 인프라조차 제대로 되어있지 않다면 출산율은 앞으로도 반등하기 쉽지 않을 지 모릅니다.
현재의 문제는 시스템 개혁과 함께 소아 의료 관련 서비스도 같이 출시하며 투 트랙 전략으로 해결방안을 모색해보는 것이 이상적인 해결책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소아 의료 시스템 개혁은 대통령의 의지도 강하고, 국민 대부분이 어느정도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에 진통은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다만 소아 진료 관련 서비스는 현재 대부분 소아과 예약과 간단한 질병에 대한 한시적 원격 진료 서비스에 제한되어 있는 것이 현재 한국의 현실입니다. 이런 부분에서도 과감하게 규제 개혁을 통한 혁신이 필요합니다.
소아 의료 관련 서비스를 출시하는 것은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미래세대를 포함한 인류의 건강 증진에 있어 긍정적인 영향을 주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건강하게 살고 싶은 본능이 있기 때문입니다. 관련 서비스를 통해 소아 질환을 조기에 발견하고 관리(치료)한다면 성인이 되어서도 건강한 삶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삶의 질이 좋아질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위에서 이야기했던 일부 극성맞은 부모들의 ‘갑질’ 문제 또한 관련 서비스들이 지속적으로 출시되고 신뢰도가 쌓이게 된다면, 의료 사고나 분쟁을 줄이고 궁극적으로는 의료 비용을 절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직 정치인이자 국내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면서 그녀의 저서가 ‘선천성 심장병의 교과서’로 불리는 박인숙 전 의원은 인터뷰를 통해, “황당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소아청소년과 자격을 취득하는 의사에게 축하금으로 1억원씩 지급하겠다는 정도로 혁신적이고 충격적인 대책이 나와야 한다. 혁명적인 발상이 필요하다.”고 밝혔습니다.
그녀는 “예비 의사인 의대생에게조차 소아청소년과를 전공하라고 권하기엔 현재 한국의 소아 의료 상황은 심각하다”며 지금의 절박함을 표현했습니다.
이 문제는 소아청소년과라는 특정 진료과목의 문제를 넘어 한국 사회의 의료 인프라에 대한 전반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디지털 헬스케어라는 산업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때도 이 문제가 어떻게 해결 될 지 앞으로 해당 이슈에 관심을 지속적으로 가져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