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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하루 Jun 16. 2023

장점과 단점을 말한다면요?

주체할 수 없음


 q) 장점과 단점을 말한다면요?


 a) 주체할 수 없는 생각과 입이요.


이제와 고백하지만 저는 제 장단점을 속여왔습니다. 기억나지도 않는 학창 시절부터 말이죠. 꼼꼼함과 꼼꼼함에서 나오는 시간분배의 어려움을 말했습니다. 아님 경청이라던지요. 학기 초에 각자의 장단점을 쓰라는 유인물을 받으면, 우선 단점부터 썼습니다. 이것저것 많이 썼어요. 오히려 칸이 모자랄 지경이었습니다. 다만 장점란은 휑했습니다. 옆 친구를 베껴 참고하려 했습니다만, 아무리 생각해도 나랑은 맞지않았습니다. 양심의 가책이려나요. 모두 채우지 않아도 된다지만, 최소한 2개 이상은 써야 할 것 같은 빈칸 여럿이 나를 무안하게 했습니다. 뭐라 거짓이라도 적을라쳐도 멈칫하게 되는 이 상황을 다른 이들도 겪어봤을까요. 창피함에 우스갯소리로라도 물어볼 엄두조차 못 내었습니다. 어쩌면 이 매거진의 취지와 가장 적합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네요.


나를 좋은 쪽으로 바라보기 위해 부단히도 노력하는 지금에 와서는 아주 조금 보입니다. 저는 어렸을 적에 종이에 적어낸 대로 경청하거나 세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이 되었으면 했지 나는 아니었습니다. 덤벙거리고 걸핏하면 휴대폰을 찾습니다. 그리고 머리와 몸은 따로 놀아요. 머리에서는 피한 구조물을 미처 피하지 못한 다리에는 피가 납니다. 덕분에 여름에도 깊이 파인 상처가 보일까 봐 치마를 입지 못합니다. 이상향을 좇되 현실은 녹녹지 않는 거짓뿐인 장점이었네요.


이제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제 가장 큰 장점은 추진력이었습니다. 누군가는 충동이라 하겠지만, 갑작스런 전개에 심장이 뛰며 성공의 앞날을 상상합니다. 어떠한 언질도 없이 갑작스레 바꾼 진로에 당혹스러워하는 가족과 지인을 외면한 채 한 번 크게 지른 시도는, 역설적이게도 실패한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히려 결심이 쉽사리 서지 않아 반복된 고사에 혼자 질려버려 포기한 일들이 실패에 가까웠네요. 실패에 가깝다지만 성공에 가깝고, 성공에 가깝다지만 실패에 멀어지는 운명의 장난을 진즉 알았으면 좋았겠어요. 끝없이 실패할 마음가짐으로 시도해서 덕 보지 않은 일이 없으니 말이에요.


하지만, 예외는 있었습니다. 굉장히 편향적으로 작용한 제 추진력은 내 마음이 움직이는 일에만 해당되는 일이었습니다. 시키거나 강요당한 일은 이내 시늉만 하게 되었거든요. 다만, 사회적인 분위기상 행해야 하는 일에도 선택할 기회는 있었고, 좋다더라 하는 카더라 이야기에 혹해서가 아니라 내 마음에 동해 시작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열정적이었습니다. 대외활동에서 필요한 카드뉴스 제작에는 하루가 멀다하고 밤을 꼬박 지새웠지만, 이유없이 택한 대학교 전공 수업에서는 도통 흥미가 스지 않았습니다. 누군가 대학 학점이 성실함의 지표가 된다며 중요성을 짚어줄 때마다 귀를 막았습니다. 손이 안 가는 걸 어떡해요. 따라갈 엄두조차 안나는 능력자가 나타났을 때에는 타올랐던 흥미가 팍삭 식기도 하지만, 그간의 노력과 결과물들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했기에 이제와 후회되진 않습니다. 음 그럼 이렇게 말할 수 있겠네요. 추진력이라는 감투를 쓴 제 장점은, 삶을 뒤흔들 도전에 대범하며, 혹여 그 시도가 멈추거나 뒤처짐에도 불구하고 후회하지 않는 마음입니다.


이어 수많은 단점 중 가장 내 마음대로 안 되는 나의 단점은 부족한 말재주입니다. 적재적소에 원하는 말을 하며, 떠올리는 그림 속 분위기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단점을 ‘내 의지대로 어찌하지 못하는, 내 마음에 안 드는 점’이라고 설명한다면 유인물 속 단점들 중 가장 적합한 단점인 것 같네요. 한 번의 실수와 특정 상황에서 쓰는 단적인 단점보다 매일을 맛보는 단점이야말로, 단점들을 대표할 수 있다고 할 수 있을 테니까요. 소심함이라 일컫기도 하는 말재주는 저뿐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고질병입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머리가 아프고, 울렁거리는 상황은 다름 아닌 많은 이들 앞에서 말로써 이목을 끄는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두려움을 갖듯 대중 앞에 나서서 발표를 하는 상황은 극도의 스트레스를 줍니다. 불특정다수에게 이목이 집중되어 머리가 하얘지고 입방정을 떠는 건 그 당시나, 그 시간이 지난 이후에나 큰 고통을 줍니다.


그렇담 발표를 안 하는 환경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문제는 작은 인원과 대화할 때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는 점입니다. 면박 주거나 눈치 주지 않았고, ‘아직’ 창피당하지 않았지만 어린애처럼 뚝딱거리는 모습에 자괴감이 들거든요. 새로 들어간 회사에서 적응하려 부단히 애쓰며 있는 힘껏 내 안의 쾌활함을 끌어낼 때 문제가 극대화됩니다. 몸과 마음에 익숙지 않은 저는 또다시 버벅거리며 내 의견을 잘 들었는지, 혹여 무시하진 않을지 염려하며 재차 말합니다. 정말 말 그대로 내가 했던 대사를 똑같이 여러 번 말합니다. 이미 하얘진 지 오래인 머릿속에서는 떨리는 입술을 붙잡아 줄 여력이 없습니다. 이내 주체할 수 없는 더듬거림과 반복적이며 빠른 대사가 이어지는 거죠. 이런 상황이 장기간 반복되면, 그 단체에서 모지리 취급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다른 분야에 있어서 두각을 나타내지 못한다면 말이죠. 말에 무게가 사라지고, 눈치 보며 생각에도 없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는 사람이요. 언제쯤 나와 내 입술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일까요?


바꾸려고 가면도 써 봤지만, 비웃기라도 하는 듯 주체 없이 나오는 나의 말솜씨에 대안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나름 적응하려 살아보려 나도 모르게 방법을 모색하며 살아왔더군요. 성공도 망신도 있었지만, 그중에 가장 효과적인 건 침묵이었습니다. 머리에서 나오는 가벼운 생각을 입 밖으로 우선 내보내기보단, 한-두 차례 체에 걸러 표현을 정제합니다. 극복할 수 있다면 단점이라 할 수 없죠. 이따금씩 입에서 맴돌다 이내 터져 나오곤 후회하는 날도 있습니다. 그렇게 계속 참아보려다 터지고, 후회하는 일상을 반복하다 보면 그 빈도가 점차 줄어들어갑니다. 극복할 수 있다며 호언장담하고 대차게 깨지며, 좌절하는 것보단 낫습니다. 같이 가지 않으려 했으나 어쩔 수 없다는 걸 통달하고, 함께 가리라 수용한 덕분이겠죠.


제 작은 독자분들은 어떤 장점과 단점이 있으신가요? 다시 찾아오는 단점에 어떻게 대항하며 맞서고 있으신가요?


조그맣게 줄여가다 보면 그렇게 커 보이던 단점도 모래알만해지리라 믿습니다. 툭툭 던지는 모래알에 따갑고 아릴 순 있지만 홀가분하게 털고 지나갈 날을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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