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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의 하루 Aug 04. 2023

생사의 거리 1.5km

그 사이 어딘가

사람이 여럿 죽었습니다. 불과 1.5km 밖에서 일어난 일이었습니다.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던 지역이 사람들의 입방아에 올랐습니다. 제가 사는 곳. 오송이 말입니다.


그 간 골칫거리 지역으로만 불렸더랬습니다. 몇 년 전에야 이곳으로 이사한 외지 출신 현지인(?)인 제가 할 말이 뭐가 있었겠냐만, 우회한 ktx 덕에 전 국민의 교통 불만이 만연하다 지탄받는 곳. 그 외에 이렇다 할 곳은 아니었지만, 이번에 크게 떠올랐네요. 아쉽게도 불미스러운 사건으로요. 주소에 명시된 구역상으로는 청주시에 속하지만, 생활권을 기준으로 보자 하면 거리상 세종과 더 가까운. 참 애매한 곳입니다. 특화단지라며 청주시에 호재로 다가오기도, 청주-세종 쓰레기 처리장 선정지로서 여러 차례 발탁되며 계륵의 역할에 충실하기도 했습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곳. 그곳이 이곳 오송입니다. 이번일의 책임소재도 분분히 갈리는 걸 보니 보다 명확해졌네요. 적어도 뇌피셜은 아니었나 봅니다.


청주 변두리 오송에서 볼 일을 보기 위해 청주 도심지로 가기 위해선 버스로 최소 2-30분이 소요됩니다. 시외버스나 고속버스를 타기 위해 터미널에 가거나, 영화를 보고, 아웃렛에 가는 등의 최소한의 문화생활을 하기 위해 나름 번화한 지역에 가는 데에 걸리는 최소한의 시간입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0분가량의 시간이지만, 잦은 버스하차로 도착이 지체될 게 우려될 때면 급행버스를 주로 이용하죠. 500번, 502번, 그리고 747번 버스입니다.


지난 주말, 청주시내에서 오송으로 돌아오던 길에 탄 747번 버스 / 오송역에 놓여진 추모공간


빨강 747번 버스. 급행버스입니다. 청주 시내에 볼일이 있어 오갈 때면 다른 버스보다도 유독 반가운 버스입니다. 사실 오송 정반대에 위치한 공항이 아닌 청주 중심부만을 오갈 때면 크게 급행의 의미가 없어지긴 하지만, 단 한-두 번인가 정도밖에 덜 멈추는 빨강버스가 오길 바란 적이 많습니다. 유난히 선명한 색깔 덕에 눈에 쉽게 띄어서 일까요. 쾌적한 파랑 좌석버스나 집 앞으로 곧장 가는 연두색 마을버스보다도 선호하는 편입니다. 비슷한 시간 안에 도착한다고 하면 빨강버스를 타기 위해 굳이 횡단보도 너머에 있는 다른 버스정류장으로 향하곤 했으니까요.


산발적으로 울리는 구급차 소리의 공포

의식적으로 클릭하지 않은 뉴스들

꾸준히 늘고 있는 희생자 수의 업데이트

가족과 지인들의 안부 연락


하루 내내 겪은 마음의 요동과 처했던 상황입니다. 늦장 부리다 뒤늦게 일어난 토요일 정오. 심란한 마음으로 연락을 취해온 가족과 지인들의 연락이 먼저였습니다. 무슨 일인가 상황파악이 채 되지 않을 무렵, 점심때가 다 되어 휴대폰에 쌓인 재난 문자를 확인했습니다.


일단은 실종이었습니다.


쏟아지는 기사들이 역했어요. 판에 찍어내듯 비슷한 내용에 언론사 이름만 다른 기사들 페이지를 가득 채웠고, 그 중 사진이 함께 첨부되어 있는 기사를 하나 택했습니다. 상대 진영에 책임을 묻는 정치인이라던가, 선출직 또는 일선 공무원이 말하고 있는 듯한 사진이 화면 속 리스트에 걸쳤지만 스크롤만 내리게 되더라고요. 속히말해 한때까리하는 양반들의 판이된 것 같아 옳다구나 하며 뜯어무는 이들에 정이 가지 않았습니다.


그들을 피해 누른 기사에는 물속에 잠겨있는 빨강버스, 747번 버스가 있었습니다. 기사문은 사건의 경위와 책임소재, 현 희생자 수를 빠르게 옮긴 글이었어요. 당최 무슨 일이 난 것인가 확인하려 속히 기사를 눌렀지만, 사진을 보고 이내 시선을 멈추게 되었습니다. 내용을 보자 싶었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이웃 주민의 참사에 마저 읽어 내려가기 버거워 헛구역질이 날 정도였습니다. 사실 글의 내용 자체는 굉장히 드라이했습니다. 어떠한 감정적인 미사여구도 없었지만, 그리고 확실한 외부인의 눈으로 본 사건의 ‘경위’였지만, 글쓴이의 의도대로 그리 읽히지 않았어요. 가장 맨 아랫단에 적힌 희생자수라던가, 사진 속에 선명한 빨강버스만 뇌리에 박혔습니다. 지갑 안에서 신분증의 역할만 하고 있는 장롱면허 덕분에 직접 운전하며 오 가 보지 못했던 탓일까. 사고지역이 어디인지조차 모르겠더라고요. 궁평 1리, 2리 따위의 설명문은 보이지 않았고, 그저 지하차도구나 싶었습니다. 대략 의심 가는 구간이 있었지만 설마 싶었습니다. 그리고 아니길 바랐습니다.


오송 미호천교 위 버스 안 풍경

가장 가까운 지하차도는 집에서 불과 500미터쯤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오송역에서 곧장 집 쪽으로 올 때면 꼭 들려야 하는 필수코스인데요. 그곳 말고 다른 지하차도가 하나 더 있었네요. 직선거리로 딱 1.5km 떨어져 있는, 한 번쯤은 무심결에 눈에 담아보았던 곳이었습니다. 지날 무렵이면 집까지 10분은 더 가야 했기에 휴대폰을 보거나, 잠을 자거나, 혹은 얻어 탄 차주인과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가 대부분이라 창문 너머 풍경을 눈에 담을 기회가 적었어요. 그래서 기억 속에 아주 흐릿하게 남아있습니다. ‘그런 곳이 있었나?’하고 찾다 보면 ‘아. 거기?’ 하고 내 기억이 맞는지 기억 속을 헤집어볼 만한 곳. 그런 곳이 바로 이번 참사의 주인공이었습니다.

네이버 지도로 떨어진 거리를 알아보는 와중에 나중에 꼭 가봐야지 하며 즐겨찾기 해놓은 식당들이 눈에 띄었습니다. 그저 지역 맛집 옆 옆 차도라는 흔하디 흔한 집 근처 지하차도 였습니다. 그간 나다니는 차도의 이름을 알 생각도, 알 필요도 없었기에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 명의 목숨으로요.




참사는 제 곁에 항상 있었습니다. 이번 일이 제게 유난히 크게 다가와서 그렇지. 사실 그간 하루가 멀다 하고 겪어왔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모두가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테지요. 어쩌면 지금은 모를 미래 참사의 주인공이 ‘나’ 일지도 모릅니다. 사고의 결론을 아는 이가 나의 삶을 옅본다면 그리 열심히 살지 말라 할 수도 있겠습니다. 앞선 줄거리가 무색하게 허망한 결말을 볼 바에야 베드엔딩에 마음 쓰지 않을 정도로만 사는 무기력한 주인공이 낫다고 생각하면서요. 결론이 어찌 됐건 주인공의 삶 끝에 다가서기까지의 파편일 텐데 말입니다. 하나의 삶을 퍼즐 맞춰가며 절망으로 향해가더라도 그 조그만 삶의 조각이 의미 없다 말하고 싶진 않네요.

하지만 모두가 알다시피, 비참하게도 현실에는 배드엔딩 속 주인공을 탓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살아남았으며, 먼발치에서 바라보는 조연으로 남았다는 데에 우월감을 느끼는 이들이 있습니다. 이번 당첨자가 너라며 익살스레 비웃거나, 안도하며 속을 쓸어내리고 이내 동정의 눈빛으로 내려다 볼지도요. 어쩌면 비껴갈 수 있는 선택지를 고르지 않은 당첨자인 나를 힐난할지도 모릅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면서 말이죠. 선택지에 따라 결말과 과정이 달라지는 선택형 게임에서 정답은 없습니다만, 그리고 모두가 바라는 최적의 루트로 한 번에 갈 수 있는 게이머란 얼마나 있겠습니다만. 더구나 다시 리트라이 해볼 수 없는 현실 속 삶에서 이미 모든 선택지를 보기라도 한 듯, 무수한 ‘택 1’의 삶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한 이들에게 야유를 쏟는다는 게 얼마나 시간낭비일지 모릅니다.


어쩌면 저 또한 그들 중에 한 명이었습니다. 무관심으로 일관하며 괜한 감정 이입에 속 시끄러울 바에야 감정을 닫고 참사를 바라보는 편이었습니다. 3인칭 전지적 시점으로 그저 몇 명이 죽었다더라, 늘었다더라 숫자놀음을 하는 편이었어요. 오히려 즐기고 있었을지도요. 무료한 일상 속 신박한 이벤트라도 되는냥 ‘-카더라’며 사건 그 자체를 가볍게 입방아에 올렸습니다. 가족의 슬픔과 생명의 종료가 어떤 의미인지 내게 대입하지 못한 채로 지나갔어요. 형식적인 말이 아닌, 정말로 내 삶이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 될 가능성이 컸던, 어쩌면 최종 오디션 발탁자가 될 수 있었던 이야기가 제 주위에 바로 다가오자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습니다. 발표날은 매일 매 순간 찾아오며 아쉽게도 매번 탈락한 무명의 배우였던 내가 나도 모르게 주연으로 우뚝 설 수 있다는 걸요.


매 사건마다 깊이 집중하며 침통한 나날들만 이어가진 않더라도, 적어도 더 이상의 판단이나 경우의 수를 세는 과오는 저지르지 않아야겠습니다. 피폐한 삶으로 공감이 결여된 세상 속에서 나와 다른 날의 주인공이 된 그들을 위한 위로의 말을 속으로 나지막이나마 건네는 편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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