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보다 괜찮네?
이불 밖은 위험해..! 극도의 MBTI 'I' 성향인 나는 약속 잡는 게 마냥 달갑지 않다. 사람이 싫은 건 아니다. 막상 만나면 예기치 못한 에너지를 얻기도 하고, 그 시간 자체가 도전의 계기가 되기도 한다. 물론 자주는 어렵지만. 생존신고 겸 어떻게 살아오고 있었는지 그 간의 이야기를 듣는 소모임은 선호하는 편이다.
사회초년생 시절 파티션 너머로 나누던 사담은 나에게 부담이었다. 남자친구가 있는지. 어디에 자취방을 얻었는지, 주말에 무엇을 하는지 계속된 질문 폭격에 머리가 어질 했다. 나도 궁금하진 않지만 똑같은 질문을 돌려줬다. “선생님은 어떠세요?” 슬그머니 모여든 이들에게 차례로 발언권을 주었다. 나름 ‘나 정말 궁금해요’ 하는 과장된 표정을 지어보았지만, 그들이 보는 난 참 어색했을 것이다. 노력하는구나 싶었겠지. 이제 와서 보면 ‘억지로 되물어보지 않아도 된다’며 냉소 섞인 말을 하지 않은 그들에게 새삼 감사하다.
사생활을 캐묻는 걸 선호하지 않지만, 어느 정도 위화감 없이 대답할 수 있게 되었다. 찌뿌둥한 몸상태에 일하기 싫은 월요일 아침이라던가, 구내식당 줄 뒤에 나란히 서 있을 때면 주말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물어올 것이다. 연휴나 휴가철 직전에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시간을 보낼지 질문한다. 기념일이나 크리스마스와 같은 행사 이슈가 있다면 질문의 범위는 조금 늘어난다. 처음에는 의야했던 질문들이 이제 좀 편해졌다. 아, 아니 익숙해졌다는 표현이 맞겠다. 어느 정도 미리 생각해 오면 갑작스러운 질문에 당황해하지 않으니까. 그들 모두가 진심으로 궁금해하거나 딱히 주의를 기울이며 듣는 건 아니니 어느 정도 구색만 맞추면 되었다.
비효율적인 사담은 어느새 가장 효율적인 도구가 되었다. 스몰웨딩의 최고봉은 공장형 결혼이라 하지 않나. 할 말이 없을 때 꺼내도 되고, 받아도 딱히 상처되지 않을 질문이 되었다. 감정이 빠진 호구조사는 오히려 적당한 거리감과 배려감을 느끼게 했다. 민감한 주제를 건들거나 나에 대해 판단하려 들면 또 다른 문제겠지만. 생각보다 무례한 사람들이 내 주변엔 많이 없었다. 어느 정도 모르니까 하는 말들은 있었지만 둥글게 생각해 줄 수 있었다. 내 상태에 따라 ‘힘내’라는 말이 ‘용기를 북돋는 말’로도 ‘빈정’으로도 들린다는 것쯤은 아니까 말이다.
딱 그 정도가 좋다. 적당한 선과 조심성은 내가 바라는 회사 동료의 미덕이다. 준비해 온 아이디어를 내고 기피하는 일을 맡는 데에서는 스스럼이 없다. 이메일 답신 끝자락에는 더위와 추위 속 건강을 걱정한다. 뒷담화를 하는 옆자리 팀원에게는 모르는 척 철판을 깔면 된다. 내 머리속에서도 없애버리면 되니까. 회식은 나가면 된다. 그저 몇 시간을 버리면 해결되니 딱히 분란을 만들며 내 말을 따르라 할 명목은 없다. MZ의 Z 맨 앞자리에 있는 나는 그저 내가 정한 선 안으로 들어오지만 않으면 무던한 편이다. 이것도 이 세대의 특징이라 하면 할 말 없지만. 사실 모두가 그렇지 않나. 부모욕을 하면 패드립이고, 남의 가난을 비난하면 못난 놈이 되듯 사회적으로 용납되지 않을 경계만 넘지 않으면 되는 것이다. 선을 넘는 상사나 동료에게는 더욱이 일 적으로만 다가간다. 그들 또한 내가 마음에 들지 않다고 해서 크게 반하는 행동은 하지 않는다. 직장 내 갑질이라던가 하는 의무교육들을 대강이라도 받아왔으니까. 뭐 그것도 아니라면 이직을 생각하자.
오래지 않은 직장생활은 나만의 상식을 만들었다. 내 마음속 회사생활 가이드라인은 매 순간 업데이트된다. 과도한 사생활 침해라고 생각했던 사담이 일상 속 효율을 만들기도 한다. 무섭고 날카로운 줄만 알았던 사람은 나의 미숙함으로 인해 본인의 일만 늘리지 않으면 그렇게 천사일 수가 없었고, 유한 성격으로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나에게 일을 떠넘기며 회사에서 취미를 즐기는 사람도 있었다. 상황도 사람도 다양하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변화하기를 반복한다.
어느 베스트셀러 작가는 아침 일찍 일어나 전날의 기억을 되짚어 보는 시간을 가진다고 한다. 속 시끄러운 나는 그게 좀 어렵다. 저녁식사를 하고 어둑히 밤이 내려앉으면 지체 없이 현실자각타임이 온다. 이불 킥하며 그때의 상황을 눈앞에 그린다. 좋은 일은 아니기에 자괴감에 빠지지만 그러다 한번 끊어내는 작업을 한다. ‘지금 할 수 있는 걸 하자’ 이후에는 그 상황과 사람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본다. 최대한 감정을 빼보려고 노력한다. 앞으로는 어떻게 행동할지 고민하고 다짐하고, 시뮬레이션한다.
나와 맞지 않는 곳에 적응하려 노력한 결과였다. 나는 언제고 정답일 수 없으며 누구에게는 상처가 될 수 있다. 이 점을 상기하며 잘못된 건 바로잡고 실수한 건 사과한다. 누구에게도 돌려받을 기대 없이 한 행동들이지만 삶에 발전을 만들었다. 종종 노고를 알아주는 사람들에게만 감사를 표하면 되었다. 그렇게 무던하게 하는 회사생활은 생각보다 할만했다.
아빠는 아니었다. 회사에서 쌓아온 감정을 집으로 가져온 건 나와 같았지만 푸는 방식이 달랐다. 본인 앞에 닥친 시련을 만든 근본 원인을 찾곤 했다. 밥벌이를 하게 된 원인. 더 나아가 끝이 보이지 않는 그 막막함에 파묻혀 살풀이를 대신해서 받아내줄 사람을 찾았다. 밖에서 구르고 온 본인과 대비되게 편하게 누워있는 자식들은 사회 악 그 자체였다. 스스로 만들어 낸 지옥이 괴로워 모든 방해물들을 리셋하고 싶기도 했겠다. 반겨주는 아이들에게 날카롭게 답했다. 괜한 타박거리를 만들어 호통치며 밖에서 억눌려온 좌절을 터트렸다. 부모는 자녀의 온 세상이라는 말이 있다. 아빠는 자녀의 세상을 무력으로 무너뜨렸다. 경제력에서 오는 가정 내 위상과 권력은 그에게 힘을 주었다. 밖에서는 얻기 힘들었던 모습을 마음대로 펼칠 수 있었다. 체벌을 할 때면 돈 얘기가 꼭 나왔다. 본인이 돈으로 일군 가장 큰 성취인 ‘집’ 안에 있을 수 있는 권리를 들먹였다.
부정적인 말과 행동은 스스로를 잠식한다. 잠깐의 쾌락은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제 살 깎아먹기인 셈이다. 하지만 그는 즉각적인 보상을 택했다. 그의 화풀이 공간에서 아이가 어찌 행복감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가 밖에서 느낀 감정들을 아이가 집 안에서 느끼고 있음을 그는 몰랐을 것이다. 그리고 안락한 집 밖의 상황을 장황하게 설명하며 부모의 지위를 높였기에, 나는 바짝 쫄은채로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니었다. 오히려 집 밖은 따듯했다. 남이기에 적당한 거리를 두는 사람들로 하여금 인류애를 느꼈다. 모든 게 이해 가지는 않더라도 자라온 환경이 다르니 그럴 수 있다는 ‘적당히 넘어가기’는 편안함을 주었다. 정확히 이가 맞아 들어가지 않는 건 내가 조금 조정하면 되니까.
“세상이 만만해?“
“집에서 오냐오냐 하면 밖에서 어떻게 버티냐”
“감사한 줄 알아라”
나를 단단히 만들어준다는 명목으로 내뱉는 말들은 내가 집으로 돌아갈 힘을 잃게 했고,
어둠만이 가득한 줄 알았던 곳에 주저앉은 나에게는 생각지도 못한 빛들이 나를 반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