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중이 아닌 플레이어로
요즘 들어 부쩍 좁고 복잡해진 관계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관계의 영어 단어인 Relation의 어원을 찾아보니 ‘서로 참조하다’는 의미의 라틴어인 [re latum]이었다. ‘서로’ 주고받는다는 말이다. 한자의 뜻을 보니 빗장 관(關)에 이을 계(係)로 관계를 열쇠로 비유했다. ‘열쇠로 잠그면 관계도 닫히고 열쇠로 열면 관계도 열린다’는 뜻을 품고 있다.
그동안 나는 관계의 열쇠를 타인에서 넘겨줬다. 딱히 노력하지도 않고 열의를 갖지도 않으며 크게 중요성을 느끼지 않았다. 그런데 한해 한해 나이가 들어가면서 관계라는 것을 새롭게 보기 시작했다. 타인과의 관계는 나이가 들면서 중요해진다. 진짜 관계를 맺는 것, 진짜 내 것이 될 관계를 알아보는 것. 사회적 동물인 인간의 본능은 좋든 싫든 우리를 관계 속에 속하게 한다. 우리는 관계를 통해 발전한다.
어느 날, 틀어진 관계를 들여다보다 ‘이 관계의 열쇠는 나에게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이었다. 그 사람과의 관계가 유독 내 안중에 오래 머물러있어서 이런 생각이 들었는지 아니면 나에게 다른 변화가 생겼는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게 된 것이다. 관중에서 플레이어로 변화하려 하는 것이다.
단순히 아는 사람이 아니라 어느 관계에서의 내 역할이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이 든다. 꼭 무언가 책임을 지기 위해 관계라는 것이 형성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은 우리에게 각자의 자리에서, 그 관계를 통해서 필연 적으로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다. 이 역할을 감당해 내는 것이 내가 가진 열쇠가 되겠지.
열쇠를 지고 있다는 건 더 골치 아픈 일이었다. 내 선택에 따라 누군가와 관계를 이어갈 수도 끊어낼 수도 있다. 그리고 그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열쇠를 사용한 값을 지불해야 한다는 거다.
관계를 열었을 때 어떤 상처를 받을지, 어떤 손해를 볼 지 알 수 없다. 반대로 어떤 행복이 찾아올지도 알 수 없다. 게다가 상대방이 같이 뛰어놀 의지가 있는 플레이어 인지도 알 수 없다 열쇠를 지고 있지만 적극적으로 플레이 하기에는 아직 나는 겁쟁이인 것이다.
관계.
나는 이 열쇠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까.
문을 열고 나아갔을 때 그 길의 끝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열쇠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 나에게 과제가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