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2019년 3월에 처음 프리를 선언하고(누구에게?) 나는 현재 4년 차 프리랜서로 살아가고 있다. 4년 동안 프리로 살아온 만큼 일반 직장인들보다 여러 프로젝트, 혹은 많은 회사들과 일을 해왔는데 이 말은 곧 프로젝트가 끝나고 새로운 일거리를 찾을 때마다 수시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야 했다는 말이다.
처음에는 우리 모두가 사용하고 있는 PDF 파일로 제작했다. 디자이너마다 포토샵, 인디자인, 일러스트레이터 등 사용하는 툴은 다를지언정 결과물은 PDF로 동일하게 제작된다. 하지만 PDF는 치명적인 단점이 꽤(?) 많다. 용량 문제라던가 수정, 업데이트 등이 용이하지 않다는 것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다음으로 도전한 것은 바로 블로그이다. 네이버 블로그로 만들었는데 PC로 보면 꽤 그럴싸하다. 하지만 문제는 모바일이었다.
간단한 일거리 같은 경우는 모바일로 포트폴리오를 보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카톡이나 문자로 보냈을 경우 상대방이 핸드폰에서 그대로 클릭해서 보는 상황이 연출됐을걸 생각하면 네이버 블로그는 아주 최악이다. 무조건 시간순으로 나열이 되기 때문에 단순 스크랩 게시글이 상단으로 가게 되면 매력 없는 포트폴리오가 된다. 그럼에도 보완하지 않았던 것은 그동안 일이 휘몰아쳤기 때문. 이제는 해오던 프로젝트들이 끝나 평온기(?)에 접어들어 포트폴리오를 업데이트하기로 마음먹었다. (작업물도 많이 늘어났고.)
아임웹을 이용해 만들 작정이었지만, 그보다 앞서 노션으로 만들어보고 싶었다. 일단 노션의 장점부터 말하자면
노션으로 만들면서 느꼈던 평화로움(?)은 바로 이것들 때문인 것 같다. 물론 아직 제작 중이라 만들다 보면 더 좋은 점이 나올 거라고 생각한다.
위에서 말했든 대부분의 디자이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 때 PDF로 제작하거나 전문 웹사이트로 많이 제작한다. 디자이너의 노션 포트폴리오는 찾아보기도 쉽지 않다. “정보”를 전달하거나 수집하거나 소통을 주목적으로 하는 노션의 특성상 포트폴리오도 하나의 디자인 작업물로 승부해야 하는 디자이너에게는 매력도가 떨어져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디자이너로서 노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보기로 결정했다.
이유는 심플하다. 대부분의 타 직무 사람들이 노션으로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이유와 같다. 디자이너라고 해서 정보전달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말란 법은 없으니까. 시도해 보기로 했다.
최종적으로 웹사이트를 구축하려고 하지만, 노션을 선택한 이유 중 큰 이유는 ‘부담이 없다’는 것에 있다.(상대적으로 말이다.) 글을 많이 적어도 페이지 링크로 설정하면 메인 화면에는 간략한 제목만 남길 수 있다. 그렇다고 페이지를 수정하고 이미지를 추가하는데 엄청난 수고가 들어가는 것도 아니다. 블로그와 웹사이트의 중간쯤이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웹사이트에는 ‘가볍게’ 넣기 힘든(그러나 나를 어필하기에 충분한 콘텐츠)들을 노션에서는 과감하게 올릴 수 있다. 설정하기 나름이지만 보통 노션을 사용할 때 댓글을 달고 내용을 추가할 수 있는 기능을 많이 활용해서인지 웹사이트가 '쇼윈도'의 느낌이라면 노션은 '쌍방향'의 사이트를 구축하는 느낌도 든다.
또 다른 이유로는 위에서 언급했듯 웹사이트를 만들기 전 베타 버전의 내용 설계하기 위해서다. 단순히 내 메모장, 아이패드, 종이 어딘가에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흐른 뒤 정리 자료를 수정하기도 어렵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면 종국에는 내가 설계한 내용이라도 알아보기에 쉽지 않을 때가 많다. 하지만 노션은 내용을 잘 기억하지 못하는 1년 후, 3년 후, 5년 후에 다시 보더라도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거란 판단이 들었다.
마지막으로 디자이너의 업무 방식이 아니라 마케터, 기획자의 업무방식으로 작업해보고 싶었다. (노션은 모두의 것이지만...!) 과거 강연 회사에 기획팀 인턴으로 근무했을 당시, 백지상태로 입사했던 터라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획에 관련된 책을 사서 읽었던 적이 있다. 이전에는 디자인 전공 서적만 읽었었고 다른 분야의 책은 관심도, 필요하단 생각도 없었다. 한데 그 책을 읽고 나니 ‘이건 디자이너에게 필요한 책이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후로 다양한 분야를 접해볼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여러 방면으로 시도해 봤다. 이 노션 포트폴리오도 마찬가지이다. 노션은 마케터나 기획자들이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수많은 회사에서도 커뮤니케이션 도구나 업무에 활용하는 하나의 툴로 사용한다. 디자이너 또한 이 흐름 속에서 직접 경험하고 타 직무의 사람들이 일하는 방식대로 일해볼 필요가 있다. 생각의 폭이 넓어지고 업무의 스킬이 향상되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향상될 것이다. 디자이너가 주로 사용하는 뇌가 아닌 사용하지 않던 뇌를 훈련시키다 보면 다양한 프로젝트를 매끄럽게 진행할 수 있는 힘이 될 것이다.
처음에는 PC용으로만 제작하려고 했다. PC 화면에서 차근차근(?) 페이지를 만들어가는 도중 갈등이 되기 시작했다. 커버 이미지 없이 깔끔하게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진행했는데 모바일로 보니 첫 번째로 배치되어 있는 내 사진이 나오는 게 꽤나 흉측... 하면서도 굉장히 아마추어스러웠다. 메인 커버 이미지를 만들고 모바일로 전달했을 때도 첫 이미지가 정돈되어 보이게 제작했다.
커버 이미지뿐 아니라 UI도 모바일을 고려해 여러 번 재배치해가며 섹션을 구성해갔다.
포트폴리오를 보면 프로젝트 기간이나 사용 툴, 기여도 등을 기재하라는 곳이 많고 디자이너들도 이제는 으레 그런 정보들을 자연스럽게 첨가해 포트폴리오를 만든다. 노션의 좋은 점은 기존에 있는 툴을 활용해 부담 없이 이런 정보들을 전달해 줄 수 있다는 것이다.
PDF는 용량이나 작품 갯수에 눈치가 보이기 마련이다. 10개 이하의 작품을 보여달라는 곳도 있고, 일정 용량을 넘지 않는 포트폴리오를 보내달라는 곳도 있다. 회사마다 클라이언트마다 다르기 때문에 하나하나 조건에 맞춰 제작하는 게 버거울 때도 있다. 그렇기에 넣고 싶은 정보를 거르고 걸러 핵심의 핵심만 넣다 보니 프로젝트를 설명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부분이 많다. 특히나 기획 단계에서부터 했던 프로젝트라면 말이다.
하지만 노션에서는 그런 부담 없이 프로젝트 페이지를 개설하고 기획의도나 디자인 방향성, 작업 과정까지 보여줄 수 있다. (내가 이렇게 사용하려고 의도한 거지만 노션이기에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메인 페이지 상단 부분에 내 프로필을 아주 심플하게 넣었다. 최대한 간결하게, 그러나 나의 장점들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문장을 구성하고 키워드로 나타냈다. 홈페이지로 치면 랜딩페이지 정도의 주목성을 가지기 때문에 노션의 주특기인 주요'정보(라 쓰고 공지라고 읽는다)'를 전달해주면서 내 소개 부분을 침범하지 않도록 소개와 정보를 색상으로 차이를 두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시점에도 아직은 제작 중이다. 진행 정도로 따지만 35-40% 정도로 볼 수 있겠다. 많은 정보를 담을 수 있는 만큼 과거 작업들을 회상하며 그 정보를 취합하고 잘 전달될 수 있도록 정돈하는 작업이 만만치 않다. 그럼에도 노션으로 만들기로 결정한 것은 굿 쵸이스였다. 절반도 진행하지 않은 시점에서 글을 쓰는건, 역시나 나의 성장통을 기록을 통해 남겨두고 싶기 때문이다.
노션은 디자이너에게도 참 매력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