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난주간을 지나 부활하신 예수님의 생을 묵상하며 고백하는 신앙
29년을 신앙생활을 하면서 고난주간을 특별하게 여긴 적이 없다. 지금 와 생각해보면 부끄러운 이야기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의 시간을 내가 함께 할 수 있는 영광된 시간이었는데 그것을 모르고 살았던 것이다.
올해 고난주간은 특별히 삶 속에서 더 묵상을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이 고난의 길과 부활의 십자가 앞에 무엇을 묵상해야 할까.
코로나로 인하여 무너진 예배와 기도의 자리에서 개인의 삶 속에서 더 말씀 묵상에 힘써야 함을 느끼며 한 주가 시작되었다. 다른 때와 별다른 것 없이 특별하지 않은 하루들이었다. 다만 고난주간 새벽예배를 나가고 말씀묵상을 매일같이 하자며 마음을 다잡을 뿐이었다. 이렇게나마 행함으로써 내가 더 주님께 가까이 가길 원했다.
물론 나의 행함은 한 주가 끝날 때 즈음 무너졌다. 목요일부터는 말씀묵상을 하지 않았고 금요일에는 새벽예배에 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염치없는 내 모습을 이끌고라도 하나님 앞으로 나아갔다. 주님의 마음을 달라고 간구했고 무너진 삶 속에서 일깨워 주신 답은 역시나 이것이었다. 하나님의 사랑
예수님의 행적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하고자 한 주동안 마태복음을 완독 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던 나는 대체 예수님의 인생은 어땠던 것일까 궁금했다. 그것을 내가 알아야 이 부활의 의미를 더 깊게 받아들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렇게 읽어 내려간 성경은 내 가슴을 먹먹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너희 생각은 어떠하냐 대답하여 이르되 그는 사형에 해당하니라 하고 이에 예수의 얼굴에 침 뱉으며 주먹으로 치고 어떤 사람은 손바닥으로 때리며 (마 26:66-67)
예수님의 얼굴에 침을 뱉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쳤다. 나중에는 가시 면류관을 머리에 씌우고 갈대를 오른손에 들려 유대인의 왕이라며 조롱했다. 예수님은 이런 그들을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 그리고 오늘날의 나를 위해 못 박히셨다. 이 말씀을 묵상하며 퍼뜩 깨달아졌다. 예수님께 침을 뱉고 주먹질한 유대인들이 바로 내 모습이라는 것을.
살아온 지난 시간 동안 나는 예수님을 묵인했고 그 영광을 가리는 삶을 살았다. 내가 마셨던 술과 쾌락은 주님의 얼굴에 뱉는 침이었고, 주님을 모욕하는 세상의 시선에 슬그머니 동참했던 시간들은 주님께 휘두르는 주먹이었다. 주님을 욕하며 십자가에 끌고 갔던 손이 바로 내 양 손이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그 능력으로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지 않으셨다. 묵묵히 십자가에 달리셨다.
부활주일에 설교하셨던 말씀은 베드로의 이야기였다. 닭이 울기 전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통곡한 베드로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갈릴리 호수에서 다시 만나는 순간 배에서 뛰어내려 곧장 예수님께 달려갔다. 예수님은 베드로와 제자들에게 떡과 물고기를 떼어주고 같이 식사하신 후에 베드로에게 물어보셨다.
그들이 조반 먹은 후에 예수께서 시몬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시니 이르되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르시되 내 어린양을 먹이라 하시고 (요 21:15)
이 말씀에서 목사님은 예수님의 질문 이면을 묵상하시고 설교하셨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나는 여전히 너를 사랑하니라"
예수님은 사랑하셨다. 자신을 조롱하고 침 뱉은 어리석은 백성들도, 저주하며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베드로도 그리고 오늘날 예수님을 외면하며 살았던 나도 사랑하셨다. 주님은 그의 곁을 떠났던 내가 다시 돌아올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셨고 따스하게 맞아주셨다. 베드로에게 떡을 떼어주셨던 것처럼 나에게도 사랑을 떼어주신 것이다.
부활주일을 보내며, 그리고 한 주간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하며 깨달은 하나님의 사랑이 이제 내 삶을 바꿔놓길 소망한다. 주님이 내게 주신 사랑을 알았고 이제는 삶 속에서 진정한 주님의 자녀 된 삶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이 되길. 베드로를 사도 되게 하시고 사울을 바울 되게 하신 주님의 능력으로 그 안에서 내 삶을 깨뜨리고 주님께 내 삶을 온전히 드리는 삶이 되길 기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