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gry 가 주는 부담감
이틀을 연달아 쉬고 출근한 목요일은 마치 월요일처럼 몸이 천근만근이다. 주말을 코앞에 둔 금요일도 또다시 월요일인 듯 느껴지는 이유는 아마 꿈같은 환상의 시간에서 현실로의 적응이 더뎠기 때문일 거다.
마지막 수업을 들어가니 교실이 휑하다. 연휴를 낀 주에 여기저기 여행을 가느라 결석이 평소보다 많은 탓이었다. 와야 할 아이도 안보이니 일단 기다려봐야겠다.
수업 종이 울리고 스펠링 테스트를 시작했다. 단어를 세 개쯤 불렀을 무렵에 원장님께서 Lisa를 데리고 들어오셨는데, 날 보며 두 눈을 비비는 제스처를 취하셨다. 내 눈에 뭐가 묻었나 했는데 알고 보니 아이가 원에 울면서 들어왔다는 뜻이었다. 눈이 벌게진 아이가 훌쩍이며 숙제 노트를 들이밀었다.
씩씩하기만 하던 아이가 울며 들어오니 이게 무슨 일인가 싶어 안아주고 토닥이며 괜찮냐 물었더니 슬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무슨 일이냐는 질문을 들은 아이는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며 말했다.
My mom is angry because of me.
간단한 문장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서러움과 불안함이 내 마음을 아프게 했다. 단어 테스트 준비를 못한 아이와 엄마 사이에 뭔가 실랑이가 있었던 모양이었다. 아이의 말로만 들어 정확한 상황은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게 느껴졌다.
Your mom is not angry at you.
엄마가 나 때문에 화가 났다는 아이의 말은 어른들의 생각만큼 당연하고 가벼운 말이 아니다. 아이에게 엄마의 화는 단순한 감정 그 이상이다. 여기서 아이의 angry라는 말은 엄마가 나를 미워해요 를 의미하고, 엄마가 나를 미워하는 건 내가 잘못했기 때문이에요 라는 게 my mom is angry because of me라는 문장이 함축하는 바다.
엄마는 네게 화나지 않았어. 단어 테스트 준비 못하는 날도 있을 수 있고, 다음에 열심히 준비하면 되는 거야. 선생님도 오늘 네가 시험을 못 본다고 해서 혼내는 일은 없을 거야, 걱정 말아하고 아이를 안아주고 다독였다.
진정된 아이는 자리로 돌아가 나머지 단어들을 열심히 적어냈다. 물론 실수는 많았으나 아이는 의연하게 결과를 받아들였다.
단어 시험을 치르는 그 짧은 순간에 내 귓가에 No one is angry at you라는 말이 맴돌았다. Lisa가 꼭 알았으면 해서 여러 번 이야기해 준 말이었다.
누구도 네게 화나지 않았어.
이 세상에서 내게 가장 잘해주는 나의 엄마. 무뚝뚝하고 버릇없는 딸내미 말투와 태도에도 그저 참으며 그러려니 해주던 우리 엄마. 그동안 아무 말이 없길래 나는 내가 엄마에게 틱틱대는 줄도, 내 말이 엄마에게 상처가 되는 줄도 몰랐다.
교사 세미나 발표 1등을 해서 상품권을 받았다고 자랑했더니 동생 5만 원을 줘서 옷을 사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엄마에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빠져 내가 알아서 할게, 끊어 했다. 소개로 만난 남자랑은 어떻게 되어가냐고 자꾸 물어볼 때마다 어딘가 불편해 그런 말 할 거면 끊어! 하고 툭 전화를 끊어댔다.
엄마는 굳이 그렇게 끊자는 말로 톡톡 쏘아야겠냐며 내가 네 아빠한테도 그런 말로 상처를 받았는데 딸인 너한테까지도 상처를 받아야겠니 했다.
엄마 속상했으면 미안해, 내가 이러이러해서 그랬어 다음부터는 조심할게. 하고 엄마를 꼭 안아주고 자취방으로 올라왔지만 마음이 계속 아린 건 시간이 지나도 도통 나아지지를 않았다.
결국 하나님에게 투덜댔다.
하나님.
저는 원래 이런 사람인데요.
저는 말도 다정하게 할 줄 모르고, 마음에 뭐가 불편해서 그런 말이 툭툭 튀어나오는지도 잘 모르는데요. 그런데 제 주변 사람들은 자꾸 제 말 때문에 아프대요. 말을 가려서 잘 좀 해 달래요. 저도 일부러 상처 주려고 그런 말 하는 건 아닌데요. 그게 제 모습인데 이걸 어떡해요. 하나님은 정말 제 모습 이대로 사랑하시는 게 맞아요? 이런 나를 다 아시고도 먼저 사랑하신 게 정말 맞아요? 하나님 시선 저한테 주세요. 그 눈으로 나도 나를 보고 남도 보고 싶어요!
남들에게 상처 줄 수밖에 없는 내가 싫었다. 다정할 수 없는 내가 정말 밉더라. 이런 사람이 나라는 게 화가 났다. 답답하기만 한 마음 하나님께 모두 털어놓고 그 후로는 생각하지 않았다. 믿음인지 회피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기도로 주님께 토스했으니 믿음의 회피라고 해두자.
억울함과 속상함이 가라앉자 보이지 않던 수많은 이유들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
내게 상품권 양보를 권유한 엄마에게 화가 난 건 내가 정당하게 노력해서 얻은 나의 소유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무조건 양보, 무조건 배려. 나의 것을 남의 부탁으로 내어주어야 한다는 압박과 그것을 거절했을 때 내가 오롯이 감당해야 할 “이기적인 욕심쟁이”라는 타이틀이 나를 불편하게 했던 거다.
새로 만나는 사람과 잘 되어가고 있냐고 키득대며 웃는 엄마의 말이 싫었던 건 자꾸 이야기하면 할수록 내가 이 관계에 온전히 집중할 수 없을 거라는, 그래서 이번에도 관계를 그르칠 거라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최대한 덤덤하게 아무 일 없는 듯이 지냈으면 좋겠는데 웃겨 죽겠다는 듯이 넌지시 떠보는 엄마의 질문이 거슬렸다.
그래서 그랬구나 내가.
이런 이유들로 내가 그렇게 행동했구나.
표현을 바르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그 감정까지 온전히 다스리고 잘 관리해 예쁜 말로 상대에게 전달해야 하는 건 내 몫이 맞으니까.
하지만 상대가 이러한 이유에서 그랬을 거라는, 상대의 감정을 인정하려는 노력이 없는 분노는 이 사람은 나를 이대로는 사랑하지 않는구나, 라는 절망을 심어줄 여지가 충분하다. 나는 잘해야 사랑받는구나 라고 느낄 수밖에 없다. 나는 잘못된 사람이구나, 낮은 자존감과 함께.
내가 가장 듣고 싶은 말. 동시에 요즘 우리 아이들에게 가장 많이 해주는 말이다.
Lisa 도 그랬을 거다. 단어는 잘 쓰고 싶은데 여행을 다녀와 따로 공부할 시간은 부족했고. 엄마가 운전하는 차 안에서라도 보려고 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 당장 내려 원으로 올라가야 하는 게 속상했겠지. 마음은 조급한데 엄마는 그 마음 몰라주고 괜찮으니 그냥 다녀오라고 하니 그 불같은 속상함이 버릇없는 말투로 표현되었던 거다.
어머님과 통화를 해보니 뒤늦게 아이가 그런 이유로 그랬겠거니 이해하시며 아무리 그래도 그런 태도를 엄마한테 보이니 남들한테도 저러면 안 될 텐데, 걱정되셔서 화를 내셨다고 하더라.
아이는 엄마에게 이해받기 원한다. 본능적으로 엄마만은 내 마음을 알아주기를 바란다. 나도 모르는 내 속상함을 엄마는 알아봐 주겠지, 기대하니 엄마는 버거울지 모르겠다. 엄마라고 다 아는 게 아니고 엄마라도 여전히 딸에게 상처는 받는다.
그래도 노력은 해야 한다. 어른이 기꺼이 아이를 위해 정성을 들여야 하고, 그게 아니라면 먼저 안 사람이 배운 대로 해 주어야 한다.
그래야 angry의 죄책감에서 자유 할 수 있다. 내가 당신을 화나게 했다는 죄책감. 나 때문에 당신이 분노했다는 갚지 못할 빚으로부터.
때마침 흘러나오는 잔잔한 찬양의 가사가 마음을 먹먹하게 한다. 엄마 아빠의 화난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의 눈을 묵상하게 하는.
하나님 사랑의 눈으로
너를 어느 때나 바라보시고
하나님 인자한 귀로써 언제나
너에게 기울이시니
어두움에 밝은 빛을 비춰주시고
너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시니
너는 어느 곳에 있든지
주를 향하고 주만 바라볼지라
결국 하나님뿐이다.
말은 이렇게 번지르르 해도 뒤돌아서면 당신보다는 내가 더 중요해지는 나는 그저 그런 인간이기에.
하나님은 당신에게 화나지 않으셨다.
당신의 정제되지 않은 말과 행동의 근원을 모두
훤히 꿰뚫어 알고 계시는 분은, 무자비한 분노를 아무렇게나 쏟아낼 필요가 없으니까.
무엇보다 그의 진노는 예수의 십자가 위에 퍼부어졌으니. Angry의 굴레로부터 자유하라. 당신은 더 이상 진노의 자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