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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Sep 21. 2022

블루망고에서 만난 예수님

눈을 감고 조용히, 쉿

 휴가의 장점은 일상으로부터 멀리 떠날 수 있다는 것이다. 멀리서 봐야 이 땅의 인생 사실 별 것 없다는 걸 깨달을 수 있으니 휴가는 중요한 시간이다.


 여수에서 오랜만에 만난 친구와 근황 토크를 하다 보니 일상을 이곳까지 끌고 왔다는 뒤늦은 후회가 몰려들었다. 좋은 이야기는 제쳐두고 왜 나쁜 마음만 쏟아놓고 왔을까. 어지러운 마음으로 그 좋은 풀빌라에 와서도 뒤척였다. 포근하고 새하얀 이불에서 뒹굴며 맘 편히 두 발 뻗으면 좋으련만. 몇 번이고 등을 이쪽저쪽 돌려댔지만 역시 잠들기는 글렀다.


기도를 해야겠다.


벌떡 일어나 테라스로 향했다.

쨍한 날씨는 아니었지만 비가 들이치는 것도 아니니 큐티하기 참 적절한 아침. 매번 사용하는 성경 어플을 켜놓고 말씀을 읽고 기도했다.


평소와 다름없이 툴툴대기. 불안한 마음을 토로하며 주저리주저리 하는 것은 좋은 기도라고 생각한다. 피난처 되시는 하나님 앞에 다 쏟아놓으라 하셨다.


하나님, 나는 왜 휴가까지 와서 그런 속상함을 끌어안고 있는 거예요. 나는 왜 더 좋은 사람일 수 없을까요?  그 사람은 제쳐두고 저라도 조금 마음이 넓으면 되는 거잖아요. 성숙한 크리스천 일 수가 없는 게 정말 짜증 난다고요.


소리는 내지 못해 꾹 앙 다문 입과 잔뜩 찌푸린 미간 사이는 심통난 아이와 비련한 여인 사이 그 어디쯤으로 보였을 테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가만히 들어보라던 한 목사님의 유튜브 영상이 떠올랐다.


그래요. 하나님 저 이제 다 말했으니까 하나님이 이야기해주세요.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나는 왁자지껄 우습게 떠드는 사람이지 조용히 가만히 들을 줄 모르는 사람이다. 더군다가 눈에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는 하나님의 말씀을 조용히 기다린다니.

의심의 물결은 차오르고 단 몇 초의 시간은 몇 만 배로 늘어난 영원 같았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경험과 습관이 몸에 베지 않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반응이겠지. 그래도 일단 귀를 열고 들어 보자. 입이 아니라 귀를 쓰는 거야. 그간 주변에게 세차게 강조했던 Listening Ears.


처음에는 저 멀리 지저귀는 새소리가 이따금씩 들려왔다. 숙소 앞바다가 찰싹 거리는 소리도 얕게 퍼지더라.

가만히 숨을 고르는 나의 쌔근거림이 느껴진다.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집중 할 때쯤 나도 모르게 잠잠해졌던 것 같다.


그러다 어느 순간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인자하고 온화한 미소가 있었다.

두 손으로 멋지게 자신의 턱을 괴고 바로 내 앞에 앉아계시는 예수님이 보였다. 조금의 미동이 없는 자세로, 자신은 틀리지 않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며 웃고 계셨다.


 눈을 감고 있는데도 너무나 선명하게 보이는 예수님의 모습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예수님은 아무 말씀이 없으셨다.

하지만 아무런 말이 없어도 알았다.


그는 나를 너무도 사랑한다는 것을.

온몸으로 느껴지는 그의 사랑에 나는 무력화되었다.


저는 죄인인데요, 예수님.

꺼이꺼이 어깨를 들썩이며 울었다.

저는 참 죄가 많은 사람인데요.


하나님을 막상 앞에 대면하게 되면 나는 망하게 되었다는 이사야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된다. 그 앞에 까불거리며 무엇인가를 따질 수도, 깨발랄하게 사랑을 고백할 수도 없다.


단지 예수님 앞에 훤히 드러난 나의 죄로 울부짖을 수밖에. 그럼에도 결국 부끄럽거나 두렵지 않은 것은,

더러운 죄 가운데서도 나를 향한 틀림이 없는 예수님의 확신 때문이다.


그러니 그것으로 감사했다.

그로 인해 나는 평안함을 되찾았다.


 나의 들보는 보지 못하고 타인의 티클만을 끊임없이 판단하느라 지쳐버린 나를 아시고, 나에게는 구원이 필요함을 선명하게 드러내 보여주신 예수님.


 코람데오의 삶은 이렇게 시작하는 걸까.


하나님 앞에서 삶을 산다는 것은 보이지 않아도 예수님은 언제나 그 자리에 계심을 믿는 것이다. 바로 내 앞에 사랑스러운 미소를 가득 짓고 계신 예수님은 어쩌면 매일 눈에 보이는 장면이 아니더라도. 새벽빛이 어김없이 밝아오듯 그의 나타나심은 어김이 없으니, 그가 내 앞에, 내가 그 앞에 있음을 늘 믿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그의 나타나심은 새벽빛 같이 어김없나니 비와 같이, 땅을 적시는 늦은 비와 같이 우리에게 임하시리라 하니라_호세아 6:3


이번 휴가를 참 잘 보냈다.


나의 삶의 전체를 지배하던 직장으로부터,

나를 못 잡아먹어 안달 난 마귀의 간교함으로부터

한 발자국 멀리 떨어져 바라볼 수 있는 힘을 얻었다.


코람데오는 세상으로부터 나를 멀리 떨어뜨린다.

나는 그 힘의 풍성함을 맛보았다.





여기 바로 이 자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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