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받으며 산다는 것은
사람은 인생 내내 변하는 것 같다.
소극적이고 차분했던 나는 캐나다를 다녀온 후 깨 발랄한 밝은 교회 언니로 변신했고, 사회성이 부족하다는 말을 듣던 내가 어느샌가 사람들을 이끄는 리더를 맡기도 했다. 성격뿐 아니라 입맛도 그랬다. 상추쌈을 먹어보라는 엄마 말에 한쌈 크게 싸 앙 물어보았지만 대체 사람들은 이런 밋밋한 야채 쪼가리를 무슨 맛에 먹나 했다. 생선회야말로 최악이었지. 밍글 밍글 한 식감과 날것이라는 이미지가 거북스러워 도저히 씹어 삼킬 수가 없던 나는 그나마 친숙한 오징어회만 줄곧 먹곤 했다. 물론 지금은 광어와 우럭이면 됐지, 굳이 오징어를 찾아 먹지는 않는다. 고기류엔 상추쌈이 상큼하고 개운해지는 나이가 되었고, 초밥을 못 먹는다는 사람이 안쓰러울 만큼이나 날 생선 그대로를 질겅질겅 씹고 즐기고 맛보고 있다.
줄줄이 쓰자면 끝도 없을 나의 성장기지만, 최근 들어 가장 큰 변화는 바로 내 안에 점차 자리잡기 시작한 여유다. 평생의 숙제와도 같던 부녀 관계에서의 여유 말이다. 이 편안한 마음은 마치 큰 홍수 후 물이 다 빠져 발 디딜 수 있는 자그마한 뭍이 생겨난 것과 같다.
어후 얼굴이 커졌어!
지난 주일 성가대 찬양 영상을 부모님께 공유했다가 벼락처럼 내리친 아빠의 피드백이다. 이번 주 찬양이 좋아서 들어보라고 보낸 거지, 딸내미 얼굴 어떤지 평가해달라는 건 아니었는데.
그런데 얼굴이 커졌다는 아빠의 송곳 같은 말에도 어쩐지 아픈 곳이 하나도 없다. 푹 찔렀으니 어딘가 폭 들어갈 법도 한데, 어 뭐 들어왔나? 할 정도의 자극일 뿐.
응, 좀 커졌지. 그렇게 나왔더라.
살이 많이 쪘는데, 행복해서 그래~
사실 나도 이미 여러 차례 영상을 보며 얼굴이 유독 크게 나온 나를 유심히 봤더란다. 유난히 착 가라앉은 납작한 머리스타일이 얼굴을 더 동 그렇게 만들었다. 근데 그게 무슨 상관이람. 신랑이랑 매일을 축제처럼 먹었으니 살이 좀 찔 수도 있지. 다음에는 머리를 조금 더 신경 써서 말려야겠다, 하고 넘어간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있었다.
신랑에게 오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조잘대던 중 나는 아주 크게 놀랐다. 평생 아빠에게 상처받아 울고불고 난리를 치던 나였는데. 예전 같았으면 이런 말 한마디에 울분을 토하며 허공으로 발차기를 해대 고도 남지.
너는 가슴이 작아서 가슴을 붙잡고 기도해야 한다, 그래도 화장하면 꽤 봐줄 만하니 결혼 전까지는 쌩얼을 들키지 말아라, 밤길에 누가 따라오면 네 얼굴을 무기로 보여주라며 환하게 웃던 아빠. 세상에서 가장 멋진 우리 아빠가 웃으면서 하는 말이니 악의 없이 받아들이려, 우스갯소리인 단순한 농담이니 나도 까르르 웃어댔다. 하지만 별 뜻 없이 후드득 떨어진 말은 나를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아이로 만들었고, 못난이 자아상은 내게 한없이 괴로운 밤을 안겨주었다.
내가 예뻤다면 우리 아빠는 나를 더 사랑했겠지. 하는 마음은 어떻게 아빠인데 자식을 있는 그대로 사랑하지 않는 거야 하는 억울함과 분노로 변해갔고, 아빠는 날 많이 미워한다는 생각으로 번져갔다. 나 또한 이런 아빠를 참 많이 미워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그의 사랑과 인정이 필요했다. 아빠가 나를 사랑해야만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에게 인정받아야만 비로소 바깥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갈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나의 세상은 아빠의 다정스러운 손길 하나로 환하게 밝아졌다가, 비수 같은 말로 갈가리 찢기곤 했다.
그래서 나는 아빠에게 집착했다.
좋은 음식을 주면 맛있게 잘 드셔 주기를 바랐다. 멋진 곳을 예약하면 손뼉 치며 감동해주시길 원했다. 나의 하루가 담긴 사진을 보여주면 공감해주기를 요구했다.
나를 사랑해달라고, 나를 이렇게 사랑해달라고. 내게 꼭 맞는 방법으로 나를 채워달라고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늘 애원했다.
아빠는 완강했다. 내 입맛에 맞지 않다고, 내 반응을 강요하지 말라고, 사진은 더는 관심 없다고. 아빠는 다정한 아빠가 되지 않겠노라 굳게 다짐한 것 같았다.
내 방식대로, 내 마음에 꼭 맞게 나를 사랑해 줄 아빠는 이제는 세상에 없었다.
그러다 곧 예수님을 만났다.
다정한 아빠의 빈자리를 자신의 사랑으로 남김없이 채워주신 나의 진짜 아버지인 하나님을 만나 새로운 여유를 찾았다. 아빠의 날카로운 눈빛에도 끄덕 없는 단단한 마음은 예수님에게 받은 넘치는 사랑 덕분이었다. 넌 정말 특별해, 나는 너를 버릴 수 없어. 수없이 알려주신 하나님이 죽어가던 나를 살려주었다.
그리고 남편을 만났다.
비가 와 얼굴이 거무죽죽해도, 눈곱이 껴 꾀죄죄한 모습에도 언제 어디서나 공주님이라 불러주는 남편을 만난 후 나의 존재 자체로 아낌없는 사랑을 듬뿍 받았다. 남편은 나를 참 귀엽고 예쁜 사람으로 살게 했다.
내 얼굴이 커졌어도, 살이 쪄 몸이 어느 정도 불었을지라도, 사실 나는 정말 못생겼어도 더는 상관이 없더라. 아무렇지도 않았다. 내 모습에 관한 여러 가지 사실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목은 늘씬하고 갸늘지만 얼굴은 조금 큰. 코는 좀 낮지만 웃음이 매력적인. 나의 모습을 큰 불만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요즘, 전에 없던 나의 여유는 신기하기만 하다.
얼굴이 커졌다고? 타격감 제로.
커진 얼굴과 상관없이 나는 여전히 나로서 사랑스러운 걸 알고 있다. 그러니 잠깐 부은 나의 얼굴을 쿨하게 인정하는 것은 세상 별 일도 아니지.
타격감 없이 살자.
마음껏 그리고 맘 놓고 사랑받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