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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링 Jul 01. 2022

남편이 낯설다.

자주 보고 또 마주 봐야 해요

남편이 낯설다.


교회 수련회로 고작 월요일 화요일 이틀 밤을 떨어져 지냈을 뿐인데, 꼬리를 흔들며 여보 반가워-하는 남편 앞에서 뻣뻣하게 돌처럼 굳어져버렸다.


여보 나 낯가리나 봐.


어색해하는 마누라를 앞에 두고 그저 귀여워하는 남편. 이틀 떨어져 있었으니 앞으로 하루만 더 기다리면 괜찮아지는 거냐고 웃으며 너스레를 떤다.


낯가림은 어릴 적 진즉 수료한 과목이었는데, 어째 유효기간이 지나버린 토익 시험이 되어 날 찾아왔다.


그새 정이 떨어졌나?

오빠가 질려버린 건가?

이제는 남자로 사랑하지 않는 건가?


평소처럼 오가는 카톡 메시지에도 별 감흥이 없어 불현듯 든 생각들이다. 신혼 초기에도 남편에게 무감각해진 어느 날이 떠올랐다. 한평생 살아야 할 이 남자가 벌써 싫어지다니 세상에 큰일이네, 했건만 알고 보니 그저 컨디션이 안 좋아 텐션이 떨어진 것뿐이었다. 31년을 살고 있지만 아직도 나는 나를 모른다.


오빠, 이유가 뭘까.

나는 어떤 이유로 낯을 가릴까?

그래도 어제보다는 조금 편해졌어.


어떻게 남편한테 낯을 가릴 수 있지 한참을 궁금해하다가 어느새 어보 어보, 애기 짓을 하며 혀를 반쯤 말아둔 나를 발견했다. 그리고 드디어 알아챘다. 이 낯섦의 출처를!


나는 내가 낯설었다.


오빠 앞에서 애교쟁이가 되는 내 말투가,

피곤한 일정을 소화한 남편을 우쭈쭈 하는 내 손길이,

배시시 웃는 남편과 함께 피식피식 웃는 내 입꼬리가.


남편이 없는 지난 이틀 친정엄마와 이모와 맛있는 걸 먹고 수다를 떨며 외롭지 않은 밤을 보냈는데, 그때의 아링이는 무엇이든 척척해내는 믿음직스러운 큰 딸, 새댁의 라이프를 조잘조잘 풀어내는 유쾌한 조카였다.


29년 동안 엄마 아빠 밑에서 자라났던 나의 당연하고 익숙한 굳센 장녀 캐릭터랄까. 사랑은 필요하지만 부모님은 살갑게 채워주지 않았으니 그딴 애정 따위는 필요 없다는 듯 무던한 척해야 하는 나의 본캐였던 부캐.


이틀 밤을 지내고 새벽녘 집으로 돌아가는 엄마는 현관문 앞에서 내 볼을 툭 치며 더 자, 하고 떠났다. 수다만 떨었을 뿐 애정은 나누지 않았는데 마지막 엄마의 볼터치가 내 마음을 울려버렸다. 무심한 엄마지만 가끔은 서비스가 좋다. 사랑스러운 딸을 흐뭇하게 바라봐주는 특유의 눈빛은 이번이 두 번째.


그때 어렴풋이 알았다. 이틀 동안 나는 사랑이 필요했다는 걸. 엄마는 존재만으로 날 편안하게 하지만 나는 여전히 사랑의 표현에 목이 말랐었다. 퇴근하면 지친 나를 그러안아 고생했네 토닥토닥해주는 다정함. 아이고 예뻐 따뜻한 눈빛. 얼굴을 묻고 한 숨 후 몰아쉬어 긴장을 풀어낼 너른 품.


사랑을 이따 만큼씩 한아름 퍼주는 남편이 돌아오니 넙죽넙죽 잘도 받아먹는 애기 마누리로 곧장 바뀌어야 했는데 그 사이에 오류가 나버리다니.


남편 앞에서 조신하게 앉아있는 내가 우습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았으니 마음은 한결 편안하다. 어쨌든 남편이 싫어진 게 아니야. 나의 사랑은 변함없어.

하루만 더 있으면 전처럼 뜬금없는 똘끼는 돌아올 거야.



하나님이 낯설다.


한평생 하나님을 믿었지만 이따금씩 하나님이 낯설게느껴지면 어딘가 하나님께 죄송하고, 은혜를 잊은 죄인이 되어 나를 나무라기도 했다.


분명 나는 하나님과 뜨겁게 사랑했던 사이인데 오늘은 그가 누구인지 도통 잘 모르겠는 그 특유의 황당스러움은 바로 부재에 있었다.


보고 만지어 느낄 수 있는 남편과도 겨우 48시간이면 나는 본래 가장 익숙하던 자아로 돌아간다. 사랑받기를 원하지만 채워지지 못한 나로. 어딘가 불만족스러운 불완전한 캐릭터로.


하물며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는 하나님과 며칠을 몇 주를 떨어져 있으면 나는 과연 어떤 모습으로 되돌아갈까.


 성경을 읽어도 잡생각이 장대비처럼 들이쳐 말씀이 보이지 않는다. 기도를 해도 오로지 내 감정만 쏟아놓기에 바쁜 입술이다. 하나님이 그립다고 울고부는 마음임에도 그의 얼굴은 잘 그려지지 않는다.


그래도 나는 이 낯섦을 견뎌내고 싶다.

잘은 모르겠지만 떨어져 있지는 않은 상태로.

괜찮아질까 싶지만 어느 순간 경계가 허물어지기를 기다리며, 하나님이 어색해도 자꾸 그와 시간을 보내련다. 떨어져 있었던 만큼 다시 친해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는  정말 당연한 이치인 것을 남편과의 관계를 통해 배웠으니까. 하나님과의 관계가 요술을 부리듯 짠-하고 완성되거나 요지부동 변함없이 완벽해야한다고 생각한 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나의 오해가 깨지니 하나님의 선하심이 보인다.


  낯설어서 뒤에 숨어있는 날 보고 하나님은 그저 웃어주신다. 아링아, 정말 반가워 해주시며. 낯섦과 다시 친해지고 주님께로 쭈뼛쭈뼛 한걸음씩 걸어나와 얼굴을 비비고 칭얼대는 친숙함이 굳이 이 악물고 노력하지 않아도 넘치듯 흘러나올 때까지, 하나님은 내 곁에서 잔잔한 미소로 고요하게 기다려주신다. 남편이 날 귀여워하듯, 하나님은 나를 참 많이 사랑하시고 귀히 여기시니까.


볼 대기.


남편과 나는 말없이 서로를 부둥켜안고 두 볼을 맞댄 채 숨을 고른다. 우리의 사랑이 각자에게 잔잔히 흘러가는 멋지고 행복한 순간이다.


하나님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자주 보고 또 마주보는 연습을 하고싶다. 하나님과의 볼대기가 자연스럽고 당연한 인생은 그야말로 나의 숨은 본캐를 되찾아 풍성하게 살게하는 시간일테니.













사진출처 _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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